<시리즈> 아시아 IT시장을 가다 (상)

국제통화기금(IMF)체제 이후 국내 정보기술(IT)산업이 급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구조조정이란 화두 아래 체질개선을 강요당하면서 자본유치 및 기술제휴를 통한 해외업체와의 협력강화는 물론 적극적인 해외시장 진출이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극심한 내수시장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 IT업체들에 해외시장 개척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생존전략으로 인식되고 있다. 본지는 삼성SDS와 공동으로 아시아 주력시장인 중국, 일본, 베트남 등의 시장을 탐방, 해외시장 진출시 문제점과 이에 대응한 개선방안을 현지의 유력 관련기관 및 업계 전문가들의 조언 등을 통해 3회에 걸쳐 살펴본다.

<편집자>

중국편-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한다

중국은 분명 변하고 있다. 지난해 9월에 열린 제15차 전국인민대표자회의를 계기로 사회 전반에 자본주의 물결이 한층 거세졌다. 일본을 비롯한 대다수의 아시아경제 주도 국가의 금융위기에도 불구하고 중국화폐(RMB)의 강세를 지키며 세계경제에서 자국의 주도적 역할을 천명한 데서 엿볼 수 있듯이 이제 중국은 더 이상 개발도상국이 아니다.

중국의 IT시장규모는 97년 기준으로 74억달러로 추정되고 올해에는 이보다 30% 정도 늘어난 97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현지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또 99년 1백23억달러, 2000년 1백52억달러 등 해마다 20%가 훨씬 넘는 고성장을 구가할 것으로 예상한다. 물론 아직 하드웨어의 비중이 절대적이다. 중국 최대 시스템통합(SI)업체인 聯想그룹의 쉬취엔 수석부사장은 중국의 IT산업은 하드웨어 71%, 소프트웨어 18%, 서비스 11% 정도의 구조을 보이고 있으며 분야별 시장은 금융 28%, 통신 20%, 공공 11%, 제조 8% 등의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쉬치엔 부사장은 또 중국의 IT산업 수준을 묻는 질문에 『이제 중국은 돈을 필요로 하는 시기는 지났다. 돈은 충분히 있다. 문제는 부가가치가 있는 기술력 확보』라고 자신있게 대답한다. 이 말의 행간을 자세히 읽노라면 국내업체들의 중국진출 실마리를 찾게 된다.

IT산업 초기라 할 수 있는 80년대만 해도 중국은 자본투자를 전제로 한 투자유치 전략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미국과 유럽의 유력 IT업체들이 대거 합작형태로 대륙에 진출, 시장선점을 노렸다. 이후 중국투자는 전세계에 자연스런 흐름이 됐고 최근 아시아 금융위기가 두드러지면서 환율강세를 지키는 중국시장으로 해외차관을 비롯한 뭉칫돈이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중국에 성공적으로 진출한 해외업체 현황을 보면 IBM, HP, 유니시스, 텐덤, 지멘스 등 미국과 유럽 업체 일색이다. 이들 업체는 수백개의 로컬 소프트웨어업체를 하청업체로 두고 기반을 넓혀나가고 있다. 반면 비슷한 시기에 진출한 일본업체들은 고전하고 있는 편이다. 중국을 단순 생산 하청기지로 삼아온 일본업체들의 지명도는 대학연구소를 중심으로 장기전략을 편 IBM, HP 등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이다.

최근 중국정부가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 바로 기술력부문이다. 자본은 어느 정도 확보했는데 막상 기술력 확보에는 상당한 벽을 느끼는 눈치다. 이는 해외업체들이 자본투자와는 달리 기술이전에 인색하기 때문이다. 설사 이전한다 해도 선진기술을 받아들일 만한 기술인력도 준비돼 있지 못한 상태다.

중국이 한국 IT업체에 최근 서서히 문을 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 일본 업체에 비해 기술이전의 벽이 낮고 기술수준이나 정서 등이 비슷하다는 공감대를 갖고 있다. 이에 따라 삼성SDS, LG­EDS시스템, 대우정보시스템, 현대정보기술 등이 우선 계열사의 시스템 구축을 시작으로 공공시장 진출을 엿보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 IT기업들의 중국진출이 결코 용이한 상황은 아니다. 중국에서의 한국 IT업체들의 이미지는 아직 TV, 냉장고 등을 연상시키는 가전업체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시스템과 네트워크 솔루션을 갖춘 IT업체로서의 이미지는 거의 전무하다는 얘기다. 이는 일본업체들의 중국시장 진입이 미국 브랜드 이미지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전례에 비추어 볼 때 분명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그나마 이미 진출한 한국업체들의 인식도 만족할 만한 상태가 아니다. 지난해 국내 S전자가 구축한 重慶 우전관리국시스템 총책임자인 소전엽 국장은 『한국 시스템은 미국제품에 비해 가격대비 성능이 낮고 기술지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소 국장은 또 한국기업과 일하면 어렵다라는 통념을 불식시키고 중국내 공공 프로젝트를 원활하게 수주하기 위해서는 기술력과 프로젝트 관리능력을 갖춘 프로젝트매니저(PM)를 파견해 「현지완결형」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줘야 할 것이라고 조언한다.

중국NCR의 서버부문 대표인 사이먼 양 총경리는 『중국식 협상방식과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않은 채 단지 시장잠재력인 큰 나라라는 막연한 단선적인 사고를 갖고 중국에 접근하다가는 백전백패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실제로 중국에 진출한 외국기업들이 한결같은 애로사항으로 꼽는 것은 중국어로 「콴시」다. 흔히 커넥션 내지 인맥으로 통용되는 이 콴시에 대한 정확한 이해없이는 중국 비즈니스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중국은 아직까지 국영기업이 대다수이고 관료는 정책결정자이며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큰 프로젝트의 결정은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국익을 우선으로 하되 이에 상응한 대가를 바란다. 그리고 그 대가의 성격이 언더머니 등만으로 구축할 수 있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라는 데 어려움이 있다』(중국내 미국기업인 I사의 한 임원)

특히 중국이 전반적으로 기술이 떨어지고 저가품이 환영받는 나라라는 통념도 IT시장에서만큼은 예외라는 점도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은 신규 구축하는 정보화시스템은 「싸게」하려 할 뿐이지 결코 「뒤떨어지게」 구축할 생각은 없다. 기술수준도 전반적인 전문기술인력의 질이 아직 낮을 뿐이지 특수분야의 경우 상당한 수준을 갖춘 인력이 많다. 특히 북경대학과 청화대학이 배경이 돼 설립한 벤처기업의 경우 우수한 기술인력을 바탕으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이다.

「레젠드」라는 PC브랜드로 유명한 연상그룹만 봐도 연산PC 생산대수가 50만대에 달하고 주력기종 역시 펜티엄Ⅱ급의 최첨단 제품들이다. 연상의 쉬치엔 부사장은 『고객의 요구를 잘 이해하는 파트너라면 언제든지 손잡고 일할 준비가 돼있다』고 전제하며 특히 선진 경영방식을 갖추고 언어와 정서가 로컬화된 업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NCR 양 총경리는 중국시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장조사가 필요하다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중국 IT시장은 13억 인구를 가진 무한한 잠재력을 갖고 있지만 돈이 투자되는 곳이 한정된 나라다. 현재는 금융분야와 국방, 기타 공공분야에 국한돼 있다. 따라서 정확한 정보와 지역별로 차별화된 로컬 방법론을 갖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중국은 더 이상 단순한 하청 생산기지가 아니다. IT시장의 광맥을 보유한 나라다. 중국 정서에 맞는 「윈-윈 전략」을 갖고 접근한다면 광맥을 찾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미국이나 일본 선진업체보다 먼저 캘 수도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중국 북경=김경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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