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record)은 단순 기록매체의 영역을 벗어나는 독립된 기계예술 분야로 여겨지고 있다.
음반의 사전적 의미는 단순히 염화비닐 재질의 원판에 촘촘한 음구(音溝)를 소용돌이 모양으로 만들어 그 곳에 음을 기록하는 매체다. 그러나 음반에 음을 고착하기 시작한 이래 산업적,예술적인 의미가 추가돼 왔다. 음반이 단순한 「음 저장매체」가 아닌 또 하나의 예술상품으로 취급되면서 수집 및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음을 일정한 매체에 처음으로 고착시킨 사람은 토머스 에디슨. 그는 1877년 8월 원통에 붙인 석박(錫箔)에다 축음된 음파를 녹음했다. 진동판과 바늘을 상하로 움직여 음구를 파고 들게 한 포노그래프(Phonograph)를 탄생시킨 것이다. 같은 해 12월에는 약 2백 단어를 취입할 수 있도록 포노그래프를 개량했다. 그러나 석박레코드는 원통에서 떼어내면 재발성이 불가능했다.
이후 1886년 5월 전화를 발명한 벨이 에디슨의 포노그래프를 개량한 그래퍼폰(Grapherphone)을 선보였다. 벨은 에디슨이 사용했던 석박의 원통 대신 두터운 마분지 원통에 왁스를 칠한 납(蠟)관을 만들었는데,이를 그래퍼폰으로 명명하고 특허를 받았다.
당시 녹음방식은 상하 움직임(종파)으로 소리 홈을 팠고,음역은 약 1옥타브(4사이클)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무렵의 음반들은 대량복제가 불가능했고 다만 소리보전이 목적이었다.
1887년에는 전화 송화기를 발명한 에밀 베를리너가 종파 녹음방식을 좌우로 움직이는 횡파방식으로 바꾼 그래머폰(Gramophone)을 발명했다. 그래머폰은 현재와 같은 원판형 음반의 기원이 됐다. 이 방식은 소리가 고르지 못한 결점이 있긴 했으나 원판형이기 때문에 복제가 용이하고 대량생산이 가능해져 상업적으로 성공했다. 그는 지름 17㎝짜리 원판형 음반을 상품화했다. 베를리너는 상업적 성공에 힘입어 미국의 빅터,영국과 독일의 그래머폰사를 합작 설립했다.
이에 뒤질세라 에디슨은 1888년5월 포노그래프를 개량해 반복사용이 가능한 납 원통형 레코드를 고안해 특허를 받았다. 그는 같은 해 7월 「북아메리카 축음기회사」를 설립하고 지방대리점들을 통해 개량된 포노그래프를 사무용 서류기록기구로 대출하는 한편 행진곡 등의 음악레코드로 상품화했다. 이후로도 그는 1896년 「내셔널축음기회사」를 창설하고 2.54㎝당 1백개의 홈을 가진 음악레코드와 축음기를 시판했다. 이 때에는 금(金)성형방식을 이용해 표준 레코드가 약간 굳은 납판으로 바뀌었고,2분(1분에 1백60회전)간 연주됐다. 에디슨은 소리의 홈을 2배 늘리기 위해 보다 굳은 납을 사용해 4분간 재생하게끔 개량했고,레코드의 마모를 적게하기 위해 셀룰로이드판 레코드를 만들어 생산했다.
1900년대 직전은 음반의 상품화 및 대량생산을 위한 기반을 다진 시기였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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