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군겸용기술 전문 개발업체인 M사는 지난 2년여 동안 사운을 걸고 「군 작전용 휴대형PC」를 개발했다. 그러나 애써 개발한 이 기술은 제대로 선보이지도 못한 채 사장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 회사는 지난 96년 K창업투자회사에 「악천후속에서도 작동하는 PC개발 제안서」를 제출, 개발에 성공하면 양산에 필요한 자금을 투자하겠다는 확약을 받고 사장을 비롯, 개발팀 5명이 사재까지 털어가며 올해초 제품개발을 완료했다.
시제품을 들고 창투사로 찾아간 이 회사 사장은 청천벽력과 같은 얘기를 듣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창투사가 태도를 바꿔 『IMF한파 이후 경기불안으로 단 한 건도 투자를 못했으며 경기가 호전되기 전에는 어떠한 투자도 하지 않겠다』는 투자불가 선언을 했기 때문.
최근 IMF한파 이후 창투사들이 개점휴업 상태에 들어가면서 이들의 투자약속만을 믿고 과감히 기술투자를 해온 벤처기업들이 심각한 경영위기를 맞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국민회의와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지난달 세계은행(IBRD) 차관자금 2천억원을 특별히 벤처회사에 배정하겠다고 약속하는 등 벤처기업 부양정책을 발표, 이들은 이제 숨통이 어느정도 트일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당정간 또는 관련부처간 충분한 사전조율없이 마구잡이식으로 발표된 벤처육성정책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존 기업들보다는 오히려 창업쪽으로 방향을 선회하면서 무모한 창업만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난마저 일고 있다. 즉 정부가 「2만개 벤처기업 육성」이라는 명분에만 집착한 나머지 첨단기술을 개발해 놓고도 운용자금 부족으로 생산을 하지 못하는 벤처기업보다는 시장 검증도 되지 않은 아이디어성 창업쪽으로만 치우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한국종합기술금융(KTB) 관계자는 『정부의 벤처정책 담당 관료들의 경우 정부 정책자금을 지원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수혜대상의 숫자』라며 『질보다는 양을 따지는 전시행정이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꼬집고 있다.
그는 양적인 지원은 경쟁력없는 기업에까지 혜택성 자금이 돌아가게 하고 이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시키기보다는 한정된 국가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결과만을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정부의 전시행정은 정책자금 지원에 그치지 않는다. 벤처기업 육성차원에서 정부가 제정한 법률조차 일선 행정기관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H사는 민간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벤처빌딩을 신축, 법률에 제정돼 있는 혜택을 받을까 기대했었다. 이 회사는 올 1월 시행에 들어간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따라 벤처빌딩으로 지정을 받으면 취득세 등을 면제해준다는 규정을 믿고 구청의 담당직원을 찾아갔는데 놀라고 돌아왔다고 한다. 구청의 담당직원이 『아직 서울시로부터 이에 대해 어떤 지시도 받은 바 없다』며 『더 자세하게 알아보고 다시 찾아오라』고 했기 때문.
국민의 정부가 지난 2월 출범할 때까지만 해도 벤처기업들의 기대는 남달랐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정확하게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들의 기대는 이미 상당부분 절망으로 바뀌었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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