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본 한국과 대만의 미디어 정책

민주화 과정에서 똑같이 다매체 다채널 정책을 기치로 내걸었던 한국과 대만이 현재에 와선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역민방이나 케이블TV등 매체 정책이 전반적으로 실패한 반면 대만은 케이블TV와 민영TV정책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렇다면 동일한 다매채 다채널 정책의 기치를 내걸었던 한국과 대만이 성패의 갈림길에 선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일본의 방송분야 전문가인 하시모토 히데까즈(橋本秀一)씨는 NHK계열의 미디어 전문저널인 「미디어정보」 최신호에 기고한 「아시아 경제위기와 한국, 대만의 TV」라는 조사보고서를 통해 한국과 대만이 각각 케이블TV중심의 다매체 다채널 정책을 펴 왔지만 미디어의 기본속성인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라는 측면에선 현격한 차이를 보였다는 흥미로운 분석 결과를 내놓았다. 방송정책 측면에서 한국 정부가 여전히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을 제한했던데 비해 대만은 민간의 에너지가 분출,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그의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93년 김영삼 대통령의 취임 후 한국정부는 「국민의 정보선택의 폭을 확대한다」는 정책기조하에 다채널의 핵심매체인 케이블TV의 전국적인 도입,지역민방의 허가,무궁화위성을 활용한 위성방송의 본격적인 실시등을 방송분야의 주요 정책으로 내놓았다. 특히 케이블TV는 다채널 정책의 핵심으로 정부가 각종 우대정책을 펼친 일종의 국가프로젝트였고 이같은 정부차원의 사업 추진에 힘입어 97년말 현재 전체 TV보유세대의 9.3%인 81만 세대가 케이블TV에 가입하는 성과를 거뒀고 전국 8개 지역에 민방이 허가됐다. 일단 외형적으로는 성공한듯 했다. 다만 한국 최초의 통신, 방송복합위성인 무궁화위성을 통한 디지털위성방송은 통합방송법의 국회 통과 지연으로 제대로 시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실상을 들여다보면 한국의 방송정책은 감독관청인 공보처가 막강한 권한을 휘둘러왔으며 방송위원회나 종합유선방송위원회가 실시하고 있는 프로그램심의 업무도 사실상의 검열에 해당한다는게 하시모토씨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케이블TV도 정부의 계획하에 이뤄졌기 때문에 경제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대만 역시 이등휘 총통의 취임후 미디어정책이 크게 바뀌었다. 새정부는 그동안 자생적으로 존재했던 케이블TV사업자를 합법화되고 국민당계 이외의 지상파TV 개국 및 국민당계의 3개 지상파TV의 민영화 정책을 발표했다.

그러나 하시모토씨는 정부의 정책보다는 민간의 에너지 분출에 보다 비중을 둬 대만의 성공을 분석하고 있다. 대만의 케이블TV는 지난 88년 열린 서울올림픽을 NHK위성방송을 통해 재수신하면서 보급률이 높아졌다. 특히 90년대부터 국민당계의 지상파TV 3개 채널에 대항하는 케이블TV사들이 「민주대」라는 이름으로 야당의 주장이나 정책을 적극적으로 소개하기 시작하면서 그동안 외국위성방송을 재송신하는 「해적방송」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시작했다. 대만 역시 케이블TV의 보급 과정에서 위법을 이유로 전신주에 설치된 케이블TV선을 절단하는 사태가 많이 발생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외국의 위성방송사들이 저작권위반등을 내세워 압력을 가해오자 대만 정부는 「저작권법」과 「유선TV법」등의 제, 개정을 통해 96년8월 전국적으로 1백38개국에 달하는 케이블TV방송사를 정식으로 허가했다. 불법사업자라는 오명을 벗은 것이다. 이후 케이블TV의 보급이 지속적으로 확대돼 97년10월 현재 대만의 케이블TV 세대보급율은 75% 정도에 달하고 있다고 하시모토씨는 추정했다.

대만은 위성방송의 도입 경로도 매우 특이하다. 대만은 UN의 정식 가맹국이 아니기 때문에 ITU로부터 위성궤도를 정식으로 할당받지 못했고, 자국위성도 없다. 이같은 상황에서 프로그램 공급사들은 「팬암샛2」 「APSTAR2」 「수퍼버드B」등 외국의 위성을 이용해 케이블TV 프로그램등을 송출해왔다. 이 때문에 대만의 프로그램은 위성을 통해 아시아 각국에 송신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민방도 한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지난 97년6월에야 대만 방송역사상 처음으로 비국민당계의 민영 지상파TV인 「FTV」가 방송 전파를 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이등휘 총통은 기존 국민당계열의 3개 채널의 편성방식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기도 했다고 하시모토씨는 지적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하시모토씨는 최근 10년간 매체의 비지니스 측면에선 한국과 대만이 모두 크게 발전했으나 정보의 자유로운 유통이란 측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고 분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케이블TV가 97년까지 뉴스의 취재 보도가 허용되지 않았으나 대만은 야당과 민진당을 지지하는 「민주대」가 하나의 세력을 형성,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장길수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