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방송] 영국 노동당정부-미디어황제 머독

영국정부와 미디어황제로 불리는 루퍼트 머독이 공동으로 공영방송인 BBC 흔들기에 나서 관심을 끌고 있다.

지난해 머독의 지원에 힙입어 정권을 잡게 된 토니 블레어 영국 노동당정부가 정권획득 1주년을 맞이하면서 현재의 공영체제를 민영화하는 방안을 포함해 BBC의 근본적인 개혁에 관한 논의를 하고 있고, 머독 역시 BBC에 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는 등 양측이 서서히 공동전선의 실체를 드러내고 있어 영국 방송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특히 양측의 이같은 공조는 영국정부가 BBC에 대해 전통적인 공영방송보호주의 노선에서 벗어난 탈규제정책의 연장선에 있다는 점과 함께 머독의 시장개방 주장은 무한대의 기업확장을 노리는 미디어기업의 시각을 극렬하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나머지 유럽국가들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BBC의 개혁문제를 본격 거론하고 나선 시기는 양측이 비슷하나 먼저 포문을 연 것은 머독이다. 머독은 최근 버밍엄에서 열린 유럽미디어회의에 참석해 영국의 지배계층, 특히 정치인들은 공영방송주의에 빠져 BBC에 대한 지나친 보호에만 치중함으로써 전세계적인 흐름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영국의 지배계층과 BBC가 「연고주의」에 빠져 자신의 회사인 뉴스인터내셔널의 영향력에 대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고 있고, BBC도 정부의 규제와 정치인들의 지원에 힘입어 모든 영향력을 집중하는 건전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중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정보를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 대해 정부나 규제권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의 전통적인 미디어정책이라고 할 수 있는 보호주의를 철폐하고 세상의 흐름에 따라 미디어정책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술 더떠 그는 유럽의 국영방송연합인 EBU에도 방송분야의 경쟁을 왜곡하고 있다고 비난의 화살을 보내고 있다. EBU가 지난 수년동안 카르텔을 형성해 스포츠프로그램의 구입에 거의 독점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다고 힐난했다.

머독이 BBC에 신랄한 비난을 퍼부어대던 시기에 토니 블레어 총리를 중심으로 한 영국정부도 BBC개혁안에 맞장구를 치고 나왔다.

크리스 스미스 문화미디어스포츠장관은 최근 『BBC의 구조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것이며 특히 수신료에 의존하는 현재의 재원조달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겠다』고 밝혔다. BBC가 개혁해야 하는 이유로 공공에 서비스해야 하는 BBC 본래의 사명에 더욱 충실하고 멀티채널시대에 고품질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그는 덧붙였다.

이를위해 2002년에 갱신되는 BBC의 수신료수입체계를 바꾸기로 하고 현재 구체적인 방안에 관한 의견을 수렴중이며 민영화하는 방안까지도 개혁내용에 포함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민영화와 관련, 공민영 이중구조가 논의되고 있으며 현재 정부가 BBC에 매년 2억5천만파운드의 재정을 지원하는 대신 시청자들에게 경영참여의 댓가로 돈을 거둬들이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다. BBC에 대한 정부지출을 절감하기 위해 노동당정부가 BBC의 구조를 이중화하겠다는 속셈이 담겨져있는 셈이다.

결국 영국정부의 미디어정책이나 머독의 주장은 시장을 개방하고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점에서 서로 일치해 BBC를 도마위에 올려놓고 있다는 게 미디어평론가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영국정부의 이같은 정책은 문화주권을 위해 국내 미디어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유럽 전체 국가들의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돼 이들 국가들로부터 비난을 받고 있다.

사실 영국이 다른 유럽국가들로부터 미디어정책에 관해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미 영국은 지난 89년 대처수상 당시부터 유럽국가들의 공동노선에서 벗어나면서부터 항상 「비유럽적」이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 당시에도 문제는 머독이었다. 유럽국가들이 「각국의 TV는 적어도 51%이상은 유럽산 프로그램으로 채워야 한다」는 내용을 담은 「국경없는 TV」강령을 채택했을 때 대처수상은 막 출범한 스카이TV를 보호하기 위해 이를 거부했었다.

이때문에 영국에서는 미국 프로그램이 판을 치게 됐으며 한때 미디어상품의 대미수출 역조가 4천만파운드에서 2억2천만파운드로 껑충 뛰게 됐다는 게 유럽국가들의 지적이다. 주범은 역시 머독의 스카이TV가 마구잡이식 수입을 한 탓이라는 것이다. 그나마 상황이 더 악화되지 않은 것은 영국내 프로그램산업의 하부구조를 튼튼히 떠받치고 있는 BBC 덕분이라고 유럽국가들은 보고 있다.

현재 노동당 정부와 머독이 입방아를 찧고 있는 BBC의 개혁에 관해 유럽국가들이 현 공영방송체제를 지지하면서 양측을 역공격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관심을 끌고 있다.

<자료제공=동향과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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