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의 제작재원을 다양화하고 풍성하게 만들기 위한 정부와 업계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한국영화의 수익구조를 살펴보니 「우물안 개구리」라는 결론이 나오고,이같은 상태가 계속될 경우 영화의 수익률 하락은 물론 대중문화의 입맛까지 할리우드(외국)에 내주게 될 것이라는 민, 관 공통의 위기의식이 「제작 활성화를 통한 한국영화 살리기,영화의 산업화 기반마련」이라는 당면과제를 이끌어 낸 것이다.
굳이 영화 「쥬라기공원」이 국내 자동차업계의 연간 수출액에 맞먹는 수익을 올렸다든지,월트 디즈니의 만화캐릭터들이 반세기에 걸쳐 수익을 창출한다든지,영화 「타이타닉」이 10억달러 이상의 천문학적인 수익을 거뒀다는 등의 실례를 들지 않더라도 영화는 하나의 산업으로 정착된 지 오래다. 영화 자체의 흥행에 따른 1차 수익 뿐만 아니라 캐릭터산업,테마관광 및 오락산업,부수적인 일자리 창출 등 잘 만들어진 영화 한 편으로 다양한 부가가치가 양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국영화는 주먹구구식 아이디어로 국내에서만 승부하는 도박성 사업이었고,발전보다는 「수성」에 급급했다. 그러나 최근들어 정부의 정책적 지원하에 제작재원 마련을 위한 다양한 시도가 잇따르고,영화를 바라보는 시각도 「예술」에서 「상품」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지난 17일 문화관광부의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에서 오지철 문화산업국장은 『가장 중요한 재원확보를 위해 영화진흥기금을 5년 안에 5백억원으로 확대하고 영상부문 관련조합을 조성해 3백억원의 기금을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외국자본을 유치해 제작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하고,영상전문인력을 양성하며,영화, 애니메이션 영상 벤처센터를 유치하겠다고도 했다. 이같은 업무보고가 다소 포괄적이고 추상적이긴 하지만 영화진흥을 위한 정부의 의지가 확고함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 관계자들의 기대치를 높여놓고 있다.
정부와 새정치 국민회의의 영화지원정책중 이른 시일내에 실현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영화전문투자조합」설립을 통한 2백억∼4백억원의 긴급지원계획. 이는 영상산업진흥기금 5백억원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조합을 설립해 IMF경제위기로 인해 자금난에 처한 한국영화계에 긴급 수혈을 하겠다는 의도로 산업은행, 한국기술금융 등의 기관투자자들을 끌어모아 영화 제작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최근 영화진흥공사(사장 박규채)가 10편의 영화에 영화판권을 담보로 3억원씩 융자지원하는 「영화판권융자사업」도 영화계의 숨통을 얼마간 틔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원작품 선정과정에 대한 공정성시비,후반작업에 대한 옵션 등으로 다소간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영화진흥기금의 올바른 사용처를 찾으려 노력했다는 점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정」(배창호프로덕션), 「게릴라」(고려영화), 「인간의 향기」(KJK필름), 「진실게임」(고씨영화사), 「우순경」(신승수프로덕션), 「그 것에 대하여」(율가필름), 「애국시민 노기찬」(동아수출공사), 「벗어버리기」(정지영필름), 「파란대문」(부귀영화), 「가족시네마」(박철수필름)등이 혜택을 누리게 됐다.
대기업들이 영화제작 투자를 확대하기로 방향을 바꾼 것도 영화계의 기대를 낳고 있다. 90년대초 대기업 및 창업투자사들의 영화에 대한 투자는 동시대 한국영화를 지탱하게끔 한 기둥이었다. 그러나 이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흥행실패 및 투자수익 환수의 어려움으로 속속 영화투자를 중단했고 11월들어 IMF한파까지 겹치면서 영화제작투자를 축소할 것으로 발표했었다. 그러던 이들 기업이 최근 한국영화 제작사업에 대한 투자를 다시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비치고 있는 것이다.
삼성영상사업단은 한국영화 제작을 위해 올해 총 1백80억원의 제작비를 투자,전액제작 5편을 포함해 총 20편의 우리영화를 제작키로 했다. 현대방송도 올해 30억∼40억원의 예산을 확보하고 총 5편의 한국영화 제작에 투자하기로 했다. (주)대우도 축소키로 했던 한국영화 제작편수를 예년수준인 5편 정도로 유지할 방침이다.
일반 시민들을 대상으로 소액공모주로 재원을 마련한 태흥영화사(대표 이태원)의 영화 「세븐틴」(감독 정병각)도 눈길을 끄는 시도다. 1인당 1계좌 1백만원씩 약 2억∼3억원(총제작비의 20%)정도를 일반인들로부터 모집하는 이 방식은 국민들을 단순한 영화관객으로서가 아닌 한국영화 진흥의 주체로 이끌어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번 공모주 모집은 그 재원마련의 특수성 때문에 앞으로 영화제작에서 배급에 이르기까지 자금운용 및 수익의 실체가 투자자들과 일반에 공개될 예정이다. 이는 영화제작인(태흥영화사)이 스스로 자금사용내역 및 수익내역의 투명화를 천명함으로써 보다 많은 영화재원 마련을 유도할 수 있다는 상징적 의미로도 해석되고 있다.
영화제작업계의 한 관계자는 『한국영화 진흥의 당위성에 대해 민, 관 공통의 인식을 형성한 지금이 한국영화 도약의 최대 승부처』라며 영화인들의 분발을 촉구하면서 한편으로 『산업화,즉 상업적인 이득에 치중한 나머지 영화의 질을 떨어뜨리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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