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와 "상호인증 협정" 왜 서두르나

한국과 유럽연합(EU) 사이에 전기, 전자, 정보, 통신기기, 자동차, 의료기기, 의약품, 화학제품 등의 상호 교역을 위해 수반되는 자체 품질적합성평가 절차와 시험성적서를 서로 인정해주는 이른바 「상호인증협정(MRA:Mutual Recognition Agreement)」 체결을 위한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MRA를 위한 사전준비 단계로 지난해 6월 한국과 표준인증제도에 관한 교환설명회 개최에 합의했던 EU는 집행위 및 관련 인증기관 전문가들을 대거 파견, 지난 26일 무역협회회의실에서 CE마크 등 EU의 전반적인 인증정책 및 인증절차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고 27, 28일엔 산업기술시험평가연구소, 삼성전자 등 주요 국내 인증기관을 방문했다.

이에 따라 한국측은 이제 오는 7월 1일부터 3일간 EU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우리나라의 각종 품질인증제도에 대한 현황을 EU측에 소개할 예정이어서 7월 초면 한-EU간 MRA체결 전망에 대한 대체적인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한-EU간 MRA 체결을 위한 움직임 빨라지는 것은 일단 전유럽(17개국)을 통합, 세계 최대의 경제블록으로 부상한 EU가 전세계에 대한 MRA를 추진하면서 지난해 6월 캐나다, 미국과 이를 성사시킨데 이어 한국, 일본 등 제 3세계쪽으로 물꼬를 빠르게 돌리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EU측은 실제로 지난 92년 상호인정협정 예비 회담국으로 한국, 미국, 일본,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이스라엘, 필리핀, 싱가포르, 홍콩 등 10개국을 선정하고 1차로 이 중 미국, 캐나다, 한국, 일본 등 주요 6개국과 협상을 적극 진행해왔다. 그러나 한국은 EU측에게 MRA 체결을 먼저 주장해왔다는 점에서 다른 나라와는 구별된다.

우리나라는 91년 5월 당시 공업진흥청에서 MRA 체결을 제의했으며 95년 5월 서울에서 MRA 체결과 관련된 예비회담을 갖는 데 능동적으로 대처해왔다. 이번 EU측의 설명회에도 산업자원부, 정보통신부, 건설교통부, 환경부, 노동부, 보건복지부 등 관련 부처와 산하연구소, 산업체, 전문가 등이 많은 관심을 표명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대EU MRA 체결을 적극 추진하는 것은 지난 95년부터 EU가 본격적으로 CE마크를 발동하면서 EU수출을 위해 국내 업체들이 품질적합성 평가에 수반되는 시간적, 경제적 비용이 크게 높아진데다 EU측이 관련제도를 점차 강화, MRA 체결에 따르는 득이 많을 것이란 판단 때문.

때문에 EU와 공식 MRA를 체결함으로써 관련 품질인증 취득에 따르는 국내 기업들의 부담을 덜어줘 대EU 수출촉진의 기반을 마련하자는 취지다. 더욱이 그동안 미국, 동남아 중심으로 추진해온 국내 기업들로선 최대 시장으로 부상한 EU시장을 보다 효과적으로 공략하기 위해선 MRA의 필요성이 어느때보다 높은게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한-EU간 MRA체결에 따르는 득이 많지 않다는 부정론도 만만치 않다. 우선 공통규격과 개별 국가 규격이 공존하는 EU의 현실에 비춰 MRA가 체결된다해도 득이 예상보다 적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아직도 각종 품질인증의 주체가 관 주도로 이루어져 품목별로 소관부처가 다르고 적용 법규도 다르다는 점에서 EU와의 MRA 타결을 위해선 근본적인 품질인증스템에 대한 재정비가 시급한 맹점도 안고 있다.

특히 각종 국제적인 기술 규격을 주도하고 있는 EU에 비해서 우리의 대응력이 척박한 상황에서 MRA를 추진할 경우 EU측의 논리와 힘에 지배될 가능성도 적지않다. 전문가들은 『MRA가 조기에 타결될 경우 경쟁력이 처지는 우리로서는 오히려 수입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며 『한-EU간 MRA논의가 공론화하고 있지만 서두르지 말고 범정부 차원의 더욱 신중한 대처가 요망된다』고 지적했다.

<이중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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