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시대 100일... 컴퓨터 유통 새 풍속도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PC시장을 바꿔놨다.

불과 1백여일 만에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일대 변혁을 가져왔던 IMF체제는 컴퓨터분야에도 예외없이 크고 작은 흔적을 남겼다. 요즘 컴퓨터업계엔 IMF체제가 정보화의 밑거름인 PC수요를 크게 위축시킴으로써 우리나라의 정보화 수준을 2년 정도 후퇴시킬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반면에 PC시장에 만연돼 있던 과소비현상을 누그러뜨려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IMF한파는 먼저 컴사용자들의 구매패턴을 바꿔 놓았다. 최신형 모델만 고집했던 소비자들 사이에 눈높이를 크게 낮춰 불필요한 기능을 뺀 중저가 모델이나 벼룩시장을 통해 중고PC를 구입하는 알뜰 구매가 확산되고 있다. 또 자신에게 꼭 필요한 기능만을 업그레이드해 사용하는 실속형 소비자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컴사용자들의 이런 변화는 PC시장의 흐름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특히 그동안 고가정책을 고수해오던 대기업 PC업체들로 하여금 거품제거에 앞장서게끔 만들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경기침체에 따른 수요부진과 환율인상에 따른 부품가격 인상의 이중고를 겪고 있는 업계 입장에서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지만 벌써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국내 PC시장에 더 이상의 거품은 없다!」

최근 IMF한파의 된서리를 맞은 삼보컴퓨터, 삼성전자, LG IBM, 엘렉스컴퓨터 등 PC업체들은 보장형PC, IMF형PC, 맞춤형PC, 실속형PC 등 가격거품을 제거한 여러 가지 형태의 중저가 모델을 앞다퉈 출시, 활로 모색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일반 컴사용자들에게 별로 필요없는 부가기능이나 주변장치를 덧붙여 PC값을 높임으로써 과소비를 부추겼던 오버스펙 판매전략은 이젠 옛말이 된 셈이다.

이처럼 PC업체들이 가격부담을 없앤 경제형 PC를 속속 출시함으로써 소비자들은 다소 경제적 부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PC 장만의 최적기를 맞고 있다.

실제로 최근 삼성전자는 1백66㎒ MMX펜티엄 프로세서를 비롯해 2.1GB 하드디스크, 24배속 CD롬 드라이브, 33.6k 팩스모뎀 등 컴사용자들에게 꼭 필요한 사양을 탑재한 경제형 멀티미디어PC를 1백69만원(모니터 별도)에 출시했다. 그런데 일부 유통상가에서는 이 모델에 15인치 모니터와 컬러잉크젯프린터, 글정품 등을 패키지로 묶어 1백93만원의 파격적인 가격에 판매, 소비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 회사 제품뿐 아니라 최근엔 어느 매장에서든지 본체는 물론 모니터와 프린터를 패키지로 묶은, 1백50만원에서 2백만원대의 경제형 PC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불과 수개월 전만 해도 PC매장에 2백만∼3백만원대 모델이 주종을 이뤘던 점에 비춰볼 때 엄청난 변화다.

이런 변화의 바람은 조립PC업체들이 밀집돼 있는 유통시장을 비켜가지 않았다. 요즘 용산 등 컴퓨터 유통상가에 가보면 이런 거품제거의 흔적을 곳곳에서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일례로 주변기기 전문업체인 폴텍시스템은 「박스 없이 구입하면 4천원을 깎아드려요」라는 플래카드를 내걸고 제품외관을 포장한 박스없이 PD드라이브와 인스톨 디스켓만 구입하는 고객에게 4천원씩 깎아주는 할인서비스를 실시, 눈길을 끌고 있다. 환율상승으로 원자재값이 급등하면서 박스포장에 대한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안한 이 판매제도는 좀더 싼값에 제품을 구입하면서 쓰레기 처리부담까지 없애 실속파 소비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사운드카드 전문업체인 제이씨현시스템도 최근 사운드카드와 그래픽카드를 조립업체에 공급하면서 화려한 문구와 그림이 인쇄돼 있는 박스 대신 6개의 제품을 한데 묶어 팩 형식으로 공급, 기대 이상의 비용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어차피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포장재를 줄여 소비자와 판매자가 공동의 이익을 취하자는 취지에서 전개되고 있는 이러한 판매전략은 소비자들의 호응이 좋아 유통상가 전체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외에도 용산의 한 매장은 10시 이전에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할인혜택을 주는 「조조할인 판매제도」를 도입,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 소비자들의 발길을 끌어모으고 있다.

IMF체제는 PC본체뿐 아니라 주변기기 시장에도 큰 변화의 바람을 몰고왔다. 환율상승으로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각종 주변기기 값이 크게 인상되고 이에 따라 소비자들의 구매패턴이 달라지면서 예상밖의 결과가 속출하고 있다.

우선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의 경우 대용량화 바람을 타고 4GB 제품이 주력으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됐으나 최근 컴사용자들은 3GB 제품도 부담스럽다는 눈치다.

최근 출시된 경제형 PC에 탑재돼 있는 HDD를 보면 지금쯤 사양길을 걷고 있어야 할 1.7∼2.1GB 제품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또 한동안 각광을 받았던 ZIP드라이브, JAZZ드라이브 등의 대용량 휴대형 저장장치들도 IMF한파에 밀려 일종의 사치품으로 인식돼 가고 있는 상태다.

모니터의 경우 그동안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15인치와 17인치 모니터의 수요가 올들어 17인치 중심으로 급격하게 옮겨갈 것으로 예측됐으나 이것도 IMF영향을 받아 1백80도 뒤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그래픽카드와 사운드카드 시장도 예외는 아니다. 게임사용자들이 증가하면서 한때 20만∼30만원대 이상의 고가 제품이 불티나게 판매됐으나 최근엔 10만∼20만원대 보급형 제품도 부담스러운지 10만원대 이하의 값싼 제품을 찾는 실속형 소비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이처럼 IMF는 하루가 다르게 짧아졌던 PC 및 주변기기의 라이프사이클을 일시에 멈추게 하는 일대 변혁을 초래했다. 특히 1백33∼1백66㎒ 펜티엄에서 MMX펜티엄으로, 이어 곧바로 펜티엄Ⅱ로 넘어갈 것이라던 업계 전문가들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이에 따라 펜티엄Ⅱ시장을 겨냥했던 윈도98을 비롯해 AGP그래픽카드, USB스피커, 4GB HDD, 1백68핀 메모리 등 관련제품이 당분간 빛을 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편 IMF체제 1백여일이 지나고 환율이 다소 안정되면서 한동안 잠잠했던 과소비 현상이 다시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PC시장에 불고 있는 알뜰구매 바람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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