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DC-8 여객기의 화물칸에서 하얀 덩어리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온 몸이 서리로 뒤덮인 「아르멘도」라는 사나이였다.
그는 비행기가 쿠바에서 출발할 때 반소매 셔츠에 삼베 바지 차림으로 화물칸에 숨어들어, 대서양 9천미터 상공을 영하 40도라는 혹한에서 건너왔던 것. 혼수상태에다 이미 심장도 멎어 있었다. 그러나 병원에 실려간 그는 몇 시간 뒤에는 자신의 밀항기를 설명할 만큼 회복되었다.
비슷한 예는 또 있다. 미국에서는 호수에 빠져 20분이 지난 뒤에야 구조된 어린이가 있었는데, 몸이 꽁꽁 얼고 심장도 멎었으며 동공도 확대된 상태였지만 1시간 30분 뒤에 기적처럼 살아났다. 의사들이 임상적으로 사망 진단을 내리고도 한참 뒤에.
학자들은 이런 현상을 일종의 동면 상태로 설명하고 있다. 서서히 체온이 내려갈 때는 인체의 각종 신진대사가 둔화되다가 이윽고 죽음을 맞지만, 급격한 체온 강하는 오히려 동물적 본능을 유발시켜 심장 박동이 느려지고 뇌의 혈관도 확장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신체는 아직도 신비의 영역이다. 태어나면서 선천적으로 지니는 놀라운 능력들을 성장하면서 잃어가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러한 입장은 어릴 때일수록 자연적인 치유 효과가 크다는 사실로 뒷받침된다. 예를 들어 손가락 끝마디 바깥쪽이 손톱 부분까지 완전히 절단된 경우, 5-6세 미만의 어린아이들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손톱을 포함한 손가락 부분이 완전히 새롭게 다시 생겨난다. 도마뱀의 꼬리를 절단하면 새로 나는 것과 똑같은 이치로. 그런데 이러한 자연 치유-복원 능력은 성인이 되면 없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혹독한 빙하시대까지 거쳤던 원시시대의 인류에 비해 현대 인류는 신체적으로 많이 약화되었다는 주장들이 많지만, 인간의 적응력은 생각보다 강인하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수온이 15도인 물에 빠진다면 4시간 내에 의식을 잃고, 10시간 정도면 사망하고 만다. 수온이 10도인 경우는 1시간도 못 버틴다. 하지만 제주도의 해녀들은 그 정도 수온에서 몇 시간동안이나 돌아다닌다. 해녀들이 물질(잠수)을 할 때는 체온이 33도까지도 떨어진다고 하여 미국 국방성에서도 연구 대상이 되기도 했다. 정상인은 체온이 그 정도까지 떨어지면 의식이 희미해진다.
제주도의 해녀나 에스키모족 같은 특수한 환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훈련이나 적응을 거치기 때문에 신체가 변화된 것이다. 시베리아 북단의 혹한 지방에서는 영화 50도 이하의 추위에서도 초등학생들이 매일 학교에 간다. 우주비행사들은 훈련 과정에서 원심분리기에 타고 보통 중력의 40배까지도 경험한다.
무엇보다도 출산 전의 태아의 상태는 인간이 지닌 잠재적인 적응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를 상징적으로 잘 말해주고 있다. 즉, 우리들은 세상에 나오기 전까지는 양수라는 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요즘은 물 속에서 출산을 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산모나 신생아 모두에게 훨씬 부담이 적다고 한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바다속, 우주공간 등에서 인간의 노동을 대신할 로봇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은 많지만, 인간의 신체가 지닌 신비한 능력을 1백% 규명해내어 활용하려는 시도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그러나 1백m 달리기나 마라톤의 기록을 단축시키는 것만이 인간 능력의 확장은 아니다. 우리의 신체는 훈련 여하에 따라 놀라운 적응력을 보여준다. 발달된 과학은 생리학이나 인체공학, 생물공학 등의 분야에서 이러한 인체의 능력을 극대화시키는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SF영화에서나 등장하는 아가미 달린 양서인간을 전적으로 허황된 내용이라 일축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박상준 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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