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Y2K 해결책" 하루가 급하다

신종철 송우정보 사장

잣대를 한번 바꾸어 보자.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IMF위기와 90여년 전 치욕적인 한일합방이 서로 무관한 것인지. 한발 앞서 산업사회로 변신한 일본에게 여전히 농경사회를 고수하던 조선이 속수무책으로 당한 한일합방이나, 이미 정보사회로 탈바꿈한 선진국에게 경제주권을 고스란히 넘겨준 지금의 IMF사태가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지난 수년간 끊임없이 제기돼 온 금융산업의 위기에 대한 경고를 무시한 탓으로 사상 초유의 금융기관 폐쇄사태를 겪은 것처럼 컴퓨터 2000년 문제도 이대로 나가다가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큰 혼란과 위기를 겪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고 있다.

잘 발달된 통신망과 컴퓨터 네트워크 덕분에 전세계가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돼 돈과 정보가 국경없이 동시에 넘나들고 있는 지금, 이제 정보사회로의 변신이 더 이상 내일의 문제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패러다임은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다시 정보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지금의 산업사회에서는 정보시스템이 단지 생산을 지원하는 수단에 불과하지만 새로운 정보사회에서는 전자상거래(CALS/EC)처럼 스스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생산의 주체로 변모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컴퓨터 2000년 연도표기 문제」도 단순한 기술적 차원을 넘어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의 한 단초(端初)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옳지 않을까.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적응 여부가 기업과 사회, 나아가 인류의 번영은 물론 생존 자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이 시점이 바로 경영자의 혜안과 결단을 요구하는 변화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얼마 전 전, 현직 대통령을 빗대어 「코끼리 냉장고 넣기 시리즈」라는 유머가 유행한 적이 있다. 사실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냉장고 문을 연 다음, 코끼리를 집어넣고, 냉장고 문을 닫으면 다 끝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코끼리가 김치통만하지 않고 집채만하게 크다는 사실이다. 컴퓨터 2000년 연도표기 문제도 마찬가지다. 두 자리로 표시된 연도표기를 네 자리로 바꾸어 주면 간단하게 해결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조금만 자세하게 들여다 보면 문제의 범위가 매우 넓고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해결을 위해 필요한 노력과 비용이 엄청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예약 녹화기능을 가진 가정용 TV나 VCR에서부터 전화교환기, 보안시스템, 항공관제시스템은 물론 공장의 자동화 생산설비에 이르기까지 영향범위가 넓고, 사고 발생시에는 엄청난 손실이나 재앙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일에나 낙관론자와 비관론자가 있을 수 있고, 다행스럽게도 인간세상은 극단적인 비관론자들의 예상보다는 훨씬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컴퓨터 2000년도 문제에 관여하고 있는 많은 전문가들의 견해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많은 돈과 노력이 들어야 하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전체 대상의 30% 정도만이 적시에 대응 가능할 만큼 이미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 전산담당자들까지 문제 자체가 단순 명료한 만큼 해결방안도 손쉬울 것으로 착각하고 대응을 서두르지 않는가 하면 심지어 일부에서는 몇몇 악덕업자들이 문제를 부풀리고 있다고까지 의심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혹시라도 골치 아프고 생색나지 않는 지뢰밭을 피해가고 싶은 심정으로 「병속의 음식을 앞에 둔 여우의 변명」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미국에서는 대통령 직속의 전담위원회가 설치되고, G8 정상회담에서조차 정식 의제로 채택되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국내의 대응실태는 아직 시작단계에 불과하다. 실무자들은 자기가 맡고 있는 프로그램에만 관심을 가질 뿐 각종 장비나 생산설비 등 비전산부문을 포함하는 전사적 대응계획 수립에는 무관심하고, 대부분의 경영자들은 해당부서에서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고 너무 늦었다고만 탄식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부터라도 2000년 문제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혼란과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급한 문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

우선 이 문제는 경영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많은 비용과 노력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기업의 생존을 좌우할 중대한 문제이므로 당연히 경영자가 직접 나서야 할 것이다.

또 정부가 나서 범국가적 대비태세를 마련해야 한다.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실 산하에 전담기구를 설치해 모든 산업분야의 대비태세를 점검하고 적절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다면 더욱 효율적인 해결은 물론 향후 국가적인 정보화 역량을 결집시키는 초석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당장 산업별 점검목록을 작성해 배포하고 체계적인 홍보와 기술지원을 제공하며 돈과 기술이 부족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중소기업에 정보화촉진기금이라도 지원한다면 크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마지막으로 하루라도 빨리 착수해야 한다. 2000년까지는 이제 불과 20여 개월 밖에 남지 않았다. 더구나 컴퓨터 2000년 문제는 2000년 1월 1일에만 나타나는 문제가 아니라 신용카드처럼 이미 일부에서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오늘의 과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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