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표적인 메모리 반도체 업체인 마이크론테크놀러지사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의 반도체산업을 하루 아침에 붕괴시킨 원인 제공자다.
16MD램의 공급과잉이 문제되던 97년 초 한국 D램업체들은 정부 주도로 출하량을 줄이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했다. 공급을 줄이면서라도 가격 폭락세를 멈춰보겠다는 뜻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세계 반도체 업계에서 한국 반도체 3사는 희생적이면서 신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은 그다지 효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마이크론의 저가 정책이 전혀 수그러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마이크론이 이같은 저가 정책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이나 일본의 메모리 업체들과는 전혀 다른 각도의 영업 전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슈링크 전략이다. 다이사이즈를 최소화해 웨이퍼당 생산성을 극대화시켜 저가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통상 생산량의 80~90%를 컴퓨터 생산업체들에 공급하는 한국이나 일본 업체와는 달리 마이크론사가 생산하는 D램의 80% 이상이 현물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전략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고비마다 한국반도체 산업의 발목을 잡아온 마이크론의 전략에 눈여겨 볼만한 변화가 발생했다.
미국의 대형 PC메이커인 컴팩이나 델 등과 D램 대량 공급계약을 체결한 것이다.
일면 단순해 보이는 이 변화는 전반적인 세계 D램 시장의 변화를 가져올 변수를 내재하고 있다.
컴팩이나 델같은 대형 PC메이커가 필요로 하는 메모리반도체가 대부분 싱크로너스 제품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마이크론으로 하여금 EDO방식 등 저가형 제품을 코스트 절감을 통해 대량 공급하던 기존의 전략을 포기하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마이크론사 역시 현재의 한국 및 일본의 반도체 업체들처럼 최첨단의 D램을 개발해 메모리 기술을 선도해야하는 부담을 떠안게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동안 싱크로너스 방식 64MD램 개발과 생산에 훨씬 앞서있는 우리나라 업체들이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앞설 것은 명약관화한 일이다.
특히 그동안 마이크론은 철저하게 품질보다 코스트를 우선한 D램 설계 방침을 가지고 있었다. 기술이 성숙된 제품은 제조 과정이 안정돼 있기 때문에 불필요한 회로를 절약하거나 과감한 프로세스를 도입하기 쉬웠던 것이다.
하지만 선도 기술이 필요한 첨단 제품의 경우는 상황이 크게 다를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최근 마이크론이 싱크로너스와 64MD램 제품 생산에 나서면서 사이즈 축소와 수율 확보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성숙된 기술로 한단계 낮은 제품을 낮은 코스트로 양산하면서 D램의 가격 경쟁을 주도해온 마이크론의 입장이 한국이나 일본과 함께 기술을 선도해야하는 상황으로 바뀌면서 우리나라 반도체 산업의 입지는 그만큼 강화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분석이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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