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산업의 열쇠는 가격이다. 국내 반도체3사가 95년 최고의 호황을 누린 뒤 96, 97년 연거푸 최악의 상황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계속되는 가격폭락 때문이다.
D램 가격하락은 96년에 이어 97년도 국내 반도체산업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주력제품인 16MD램 가격의 하락폭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평균단가가 30달러에 육박했던 96년 상반기의 16MD램 가격은 지난해 말에 이르러 급기야 심리적 마지노선인 3달러선, 생산원가 이하로 알려진 2달러선까지 무너뜨렸던 것이다.
이같은 계속된 가격폭락의 주범은 공급과잉. 결국 우리나라는 지난해 스스로 생산량을 줄이는 고육지책까지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격하락세는 멈추지 않았다. 저가격 16MD램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미국 마이크론의 전략 때문에 효험을 발휘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걷잡을 수 없어 보이던 D램 가격의 하락세가 올해 들어 서서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일시적인 현상에 그칠 것으로 보이던 16MD램의 현물시장 가격안정세가 예상외로 장기화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미국 현물시장에서의 16MD램 가격은 대체로 3달러 안팎에서 형성되고 있다.
특히 싱크로너스 방식 제품의 경우, 최고 4달러 정도의 수준을 지키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EDO방식 제품의 경우도 3달러에 가까운 2달러대 가격선을 방어하고 있다.
지난해말 1달러선까지 폭락했던 상황과 비교하면 거의 4배에 가까운 매출 증대효과를 가져왔다는 분석이다.
더욱이 최근 달러대비 원화환율이 급등한 점을 감안하면 국내 반도체3사의 채산성은 지난 2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호전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16MD램을 제치고 새로운 주력상품으로 부상하고 있는 64MD램의 가격움직임도 예상보다 나쁘지 않은 상황이다.
3월 들어 연초의 상승세가 주춤거리며 64MD램을 중심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다소 꺼림칙하기는 하지만 16→64MD램간 세대교체 시기에 일어나는 일시적인 현상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2년과는 달리 공급과잉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특히 95년 이후 세계 주요 반도체 업체가 10∼20% 정도씩 설비투자를 줄여왔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하반기에도 계속 16M 및 64MD램 가격이 안정적인 보합세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이와함께 호황기인 95년의 대대적인 설비투자를 감행했던 한국의 반도체 업체들의 경우, 장비에 대한 감가상각이 상당 부분 마무리됐기 때문에 생산원가 부담이 경쟁사에 비해 크게 적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의 가격하락은 완충시킬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여기에 일본, 대만 등 해외 D램 생산업체들이 신규 시설투자를 대폭 축소하거나 웨이퍼 파운드리사업으로 업종 전환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모처럼 만에 맞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상승분위기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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