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 컴퓨터,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되고 있는 디지털 가전산업과 관련해 국내 가전업계의 기술경쟁력을 전반적으로 평가하면 미, 일, 유럽의 선진업체에 비해 열악한 실정이다. 핵심기술 확보의 원동력이 되는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R&D)투자비율은 선진국의 30∼50% 수준이며 특허개발이나 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인프라 구축도 아직 미흡하다.
총 4천여명의 기술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쓰비시전기는 1천여명으로 구성된 정보기술연구소와 5백여명의 특허전문가가 활동하는 지적재산권센터를 양축으로 지적재산권을 관리한다. 또 수익성이 있는 핵심특허를 출원한 연구원에게는 최고 50만엔 상당의 상금을 지급하는 등 강력한 보상제도도 운용하고 있다.
2만여명의 R&D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도시바는 연구원들의 연구경력을 기준으로 5단계 교육프로그램을 운용하면서 특허요원들의 자질과 전문성을 향상시키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한 이 회사의 지재권센터는 구조조정의 무풍지대로 불릴만큼 확실한 위상을 보장 받고 있다.
미국 GE사의 자회사 가운데 하나인 RTL이라는 특허경영회사는 제품 개발이나 생산은 전혀하지 않고 대신 매년 수천건의 특허를 출원하면서 연간 1억달러 이상의 로열티 수입을 올리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국내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전자3사의 특허전문가는 최근들어 조직과 인력이 보강됐음에도 불구하고 1백∼2백여명 안팎에 불과하며 체계적인 특허 데이터베이스는 지난 94년부터 본격적으로 구축되기 시작했다.
핵심특허를 출원한 연구원에 대한 인센티브제도는 해외의 로스쿨이나 국내의 법무대학원으로의 진학 혜택을 극소수에게 제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거의 없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여건속에서 연구원들이 시간에 기면서 연구실적을 나타내기위해 출원하는 특허도 적지않아 특허청 검사관들이 경쟁적인 특허출원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는 정도이다.
LG전자가 지난해 하반기 「코어 인벤터(Core Invener)」제도를 도입하고 특허전문가를 육성하기로 한 것은 때늦은 감이 있으나 그나마 다행스런 변화다.
국내 전자업계는 선진국에 비해 투자여건이 열악한 상황에서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기위해선 경영층과 연구원들의 마인드가 획기적으로 달라져야한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우선 기술을 특허화하는 과정에서 상품가치가 있는 핵심기술확보에 한정된 자원을 집중하는 전략특허 발굴과 향후 기술과 상품의 트랜드를 읽어 요소기술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길목특허 전략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선진국의 특허공세에 대비할 수 있도록 치밀하게 방어특허를 출원해 놓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MPEG2에 대한 원천기술을 자산으로 특허제공사업을 대행하기 위해 지난해 설립된 MPEG LA사의 활동은 향후 국내업체의 핵심기술 개발 및 특허전략을 수립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과거처럼 핵심기술을 제공하는 업체가 일일이 개별업체를 상대하면서 특허료를 받는 시대는 막을 내리고 핵심기술을 보유한 업체들끼리 뭉쳐 특허풀을 형성해 공동의 이익을 창출해가려고 하는 것이다.
핵심기술 보유 업체들은 대부분 시장지배력이 있는 회사들이기 때문에 상호간에는 기술과 정보를 맞교환하는 크로스 라이센싱(Cross Licensing)을 활발히 하면서 독점적이고 배타적으로 실리를 추구하는 추세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수만건의 무의미한 특허출원보다 단한건의 핵심특허가 중요하다는 것이다.MPEG LA에 회원사로 가입한 11개의 회사들이 모두 동일한 건수의 MPEG2 특허를 제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회원사들에게 부여된 의사 결정권이나 정보 공유자격은 동일하다. 또한 단 한건이라도 핵심특허가 있으면 특허분쟁시 상대방을 견제할 수 있는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효과는 위력적이다.
국제표준규격제정 그룹과 특허 풀을 통해 시장과 특허수익의 독과점이 허용되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국내 전자업계에겐 무엇보다 효율적이고 예리한 특허전략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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