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특집] 기술 경쟁력 비교

우리나라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전자, 정보통신제품의 수출경쟁력은 어느 정도인가.

결론적으로 말하면 일부 품목은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제품이 기초 기술력 부족으로 아직까지 선진국에 비해 경쟁력이 뒤지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전자산업은 D램 등 일부 범용제품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로 인해 단기적인 가격 변화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받는 등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국의 한 컨설팅 회사는 우리나라가 일본과 중국사이에 끼여 있어 마치 호두깨는 기계(넛크래커)속에 있는 상황과 같다고 진단했다. 선진국은 따라 잡지 못하고 후진국의 추격에 덜미를 잡히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전자, 정보통신제품의 수출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품질면에서는 미국이나 유럽 일본 등에 밀리고 가격면에서는 중국 등 후발개도국에 추격을 당해 설자리를 점점 잃고 있다. 한국무역협회 뉴욕지부가 지난해 미국 현지 바이어 3백50개사를 대상으로 한국상품의 인지도 및 경쟁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상품은 일본에 대해서는 품질면에서, 멕시코 중국에 대해서는 가격면에서 각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전자, 정보통신제품의 수출구조를 보면 일본에 비해 특정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심하고 범용상품에만 집중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반도체는 일본에 비해 메모리 분야에 지나치게편중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컴퓨터의 경우도 우리나라는 마우스, 모니터, 프린터 등으로 이루어진 입, 출력장치가 80%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입, 출력장치(42%)외에 고부가가치 품목인 기억장치(33%)와 휴대용컴퓨터(12%)등도 높은 비중을 차지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을 보면 이를 더욱 쉽게 알 수 있다. 우리나라 전자, 정보통신관련제품의 기술수준은 선진국을 1백으로 할때 반도체는 평균 65수준, 가전제품은 60, 정보통신은 50, 제어계측자동화는 30, 소프트웨어는 20 수준이다. 특히 기초기술이 크게 뒤지나 응용, 설계, 가공, 조립기술은 중간 또는 크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반도체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10% 이상을 책임지고 있는 대표적인 수출제품인 반도체의 수출경쟁력을 보자. 지난 95년까지 수출역군의 칭호를 받았던 반도체는 96년부터 공급물량 과잉과가격폭락 등으로 인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들어 아직까지 커다란 상황변화의 징조를 보이지 않고 있다.

반도체가 수출효자 상품에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것은 무엇보다 국내 제조업체들의 구조적인 문제점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생산된 제품(메모리)의 85%를 수출하고 수요(비메모리)의 75%를 수입하는 기형적인 구조에 국내 반도체산업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이다. 부가가치가 낮은 메모리 제품을 대량 생산해 싼값에 수출하고 대신 부가가치가높은 비메모리 반도체를 비싼 가격에 수입하는 현재의 구조로는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경쟁국인 일본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는 메모리 분야에 특화된 반면 일본은 주문형 반도체와메모리 분야에 강세를 보이고 있으며 기초, 응용기술면에서도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우위를 지키고 있다. 특히 일본은 반도체산업의 기반이 되는 유전체 형성기술과 계측기술, 응용기술 등 기초기술분야와 집적공정기술 등 단위공정 기술분야에서도 우리나라를 크게 앞서고 있다. 일본의 메모리 반도체기술을 1백으로 할 때 우리나라의 기술수준은 제조기술과 조립기술 분야에서는 1백으로 동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나 기초기술과 설계기술은 각각 80과 95로 다소 뒤떨어진다. 또 우리나라 비메모리 반도체기술은 일본의 기술을 1백으로 할 때 제조기술과 조립기술은 각각 85와 75수준에 머물고 있고 기초기술과 설계기술은 각각 20과 30에 불과한 실정이다.

따라서 반도체산업이 우리나라 수출주력산업의 자리를 계속적으로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산업같이 수출활로를 개척하기 보다는 사업구조의 고도화와 비모메리 분야의 기술개발 등을 통해 부가가치와 수출경쟁력을 높여 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가전

지난 90년대 초반까지 국내 전자산업 수출의 대명사 역할을 했던 가전제품은 최근 반도체와 통신기기의 수출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전체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품질 및 가격경쟁력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어 여전히 수출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최근들어 독립국가연합(CIS)와 중남미 등을 중심으로 신규시장이 개척되면서 냉장고와 세탁기, 에어컨 등 백색가전제품의 수출이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컬러TV나 VCR, 오디오 등 AV부문의 제품들은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포화상태에 이른데다 그동안 고품질, 고가격으로 선진국시장을 주로 공략해왔던 일본이 중저가 시장으로 진출하면서 수출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플레이어와 디지털 위성방송 수신기 등 새로운 품목으로 떠오르고 있는 정보가전 제품도 선발주자로 나선 도시바와 마쓰시타, 소니 등 일본업체들에 밀리면서 수출발판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컬러TV, VCR, 전자레인지, 오디오 등 우리나라 가전제품의 수출경쟁력을 보면 품질성능의 경우 국산품을 1백으로 할때 일본산은 1백3(전자레인지)∼1백50(오디오) 수준이고 동남아산 일본제품은 95∼98 수준이다. 디자인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브랜드 이미지나판매, AS측면에서는 일본산이나 동남아산 일본제품이 1백10∼2백 수준으로 높다. 그만큼 가전제품은 품질 및 가격 경쟁력측면에서 상당한 수준에 도달했으나 브랜드이미지에서 뒤덜어져 일본 제품을 제치고 세계시장을 석권할 수 있는 「넘버 원」제품이 별로 없는 것이다. 게다가 중국 및 동남아 제품의 추격도 거세지고 있어 시장상황 변화와 환율변동 등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품목별로 수출의 명암이 엇갈릴 우려도 있다.

정보통신

정보통신분야의 경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이동통신 단말기와 무선호출기, 무선전화기 등의 기술력은 이미 미국 등 선진국에 버금가는 실정이다. CDMA시스템을 상용화한 나라가 우리나라가 처음이라는데서도 잘 알 수 있다. 특히 최근 환율급등으로 가격경쟁력 까지 높아지고 있어 새로운 수출 효자 상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제품의 수출확대를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로열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내 제조업체들은 현재 수출제품의 경우 CDMA의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미국 퀄컴사에 5.6∼5.7%의 로열티를 지급하고 있어 수출경쟁력 확보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또 CDMA단말기와 함께 올해 수출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형 디지털 이동전화(GSM) 단말기 역시 모토롤러와 필립스 등이 국내 선발업체인 삼성전자와 맥슨전자 등을 상대로 로열티 공세를 펼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 수출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통신 단말기들이 대부분 수출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교환기 등 통신시스템의 수출경쟁력은 상당히 취약한 실정이다. 국내 통신시스템업체들이 해외시장에서 격돌하는 경쟁사는 모토롤러와 루슨트, 에릭슨 등으로 이들 선진업체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국내업체보다 유리한 자금지원 조건 등을 제시하면서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또 이들외국 업체들은 국내업체에 비해 품질 및 가격 경쟁력 분야에서도 상당 부문 앞서고 있어 한국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고 있다.

컴퓨터.SW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는 최근 환율상승에 힘입어 수출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수출경쟁력이 근본적으로 상당히 취약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PC를 비롯한 컴퓨터 완제품 수출은 주요 핵심부품 및 기술에 대한 해외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기초기술력과 브랜드 인지도도 취약해 환율상승으로 인한 가격경쟁력이 상실될 경우 수출경쟁력이 크게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중대형 컴퓨터의 경우에는 제품 자체의 성능보다 응용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솔루션의 뒷받침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국산제품은 해외시장에 내놓을 만한 솔루션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하지만 최근들어 국내 벤처기업들이 잇달아 해외시장에 내놓고 있는 멀티미디어보드와 CD롬드라이브, DVD롬 드라이브 등 PC주변기기들은 외국 유명 업체들과 비교해도 품질면에서 크게 뒤지지 않는데다 최근들어 가격경쟁력이 크게 높아져 수출물량 증가가 기대되고 있다.

소프트웨어(SW) 개발에 주력하는 벤처기업의 창업열기와 함께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이 이루어지고 있는 SW는 이제 막 해외시장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해, 수출 주력산업으로 집중 육성할 경우 성장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낙관적인 전망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나라 SW산업의 수출경쟁력은 매우 열악한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소프트웨어 기술수준이 선진국에 비해 10년정도 뒤쳐져 있기 때문이다. 또 국산 제품에 대한 해외인지도가 너무 낮아 해외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내 업체들은 해외시장 동향이나 수요자 니즈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크게 떨어져 시장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SW 수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국산 SW업체의 마케팅 활동의 지원을 강화하고 대내적으로는 기술 및 가격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도적인 지원장치가 마련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일반부품

액정표시장치(LCD)와 박막트랜지스터 액정표시장치(TFT LCD), 인쇄회로기판(PCB), 코어, 트랜스 등 일반 부품은 어떠한가. 일반부품 업체들은 그동안 해외시장에서 「기술은 일본에, 가격은 중국 및 동남아」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 고환율로 대변되는 IMF체제로 가격경쟁력을 급속히 회복, 해외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과 중국, 동남아 사이에서 고전하고 있는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체들이 환율상승과 같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존하지 않고 해외시장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신흥 경제 부흥국가를 중심으로 한 수출선 다변화와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한 수출품목 고도화, 해외 홍보 활동의 강화, 해외 마케팅조직 강화와 해외 판매거점 확보, 다양한 해외규격 회득 등을 통해 근본적인 수출경쟁력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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