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이 우리나라가 국제통화기금(IMF)체제를 조기에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전기, 전자업계의 해외진출 전제조건인 각종 규격이 수출확대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WTO체제 출범으로 비관세 무역장벽이 급부상하면서 세계 주요 경제블럭 또는 국가(일부는 지역)들이 자국의 소비자보호라는 명분 아래 규격에 의한 기술 규제를 한층 강화, 규격장벽이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따라 고환율의 위기를 기회로 승화시키기 위해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을 펴고있는 관련업계에 해외규격 비상등이 켜졌다.
현재 전기, 전자, 정보, 산전, 자동차, 의료기기를 막론하고 제품 하나를 수출하는데만도 기본적으로 3~4가지의 해외규격을 따는 것은 보통이다. 심지어 수출선이 여러지역에 걸쳐있을 때는 수 십종의 규격 취득이 불가피한 경우도 허다해 각종 규격취득에만도 모델당 수 천만원이르며 환율상승으로 부담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실정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규격취득에 소요되는 시간적 손실도 심각한 상황이어서 규격인증과정이 수출업체들의 발목을 잡는 사례가 빈발하고 있다. 미주, EU 등 국내업체들의 주력 수출지역의 경우 CE마크(유럽연합), UL, FCC(이상 미국) 등 안전 및 전자파규격에다 최근에 복잡한 인증절차를 요구, 3~6개월의 시간을 소비하는게 예사다.
규격 취득에 걸리는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국내업체들의 적기 수출에 차질을 빚게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자칫 규격에 미달해 시료가 해당국을 몇번 오가가다 보면 신제품의 출하 타이밍을 빼앗겨 신제품이 졸지에 구제품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많다』며 『갈수록 라이프사이클이 짧아져 규격취득의 리드타임이 개발의 가장 중요한 단계로 인식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동안 규격에 관한한 사각지대였던 중국, 중남미, 아프리카, 동남아 등 제 3세계 국가들도 최근엔 선진국들의 규격시스템을 모방해 관련 인증시스템을 재정비하거나 선진국과 유사한 제도를 출범시켜 최근 국내업체들의 새로운 수출유망시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무색케 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특유의 만만디즘으로 규격처리절차가 유달리 긴데다 규정된 비용 외에 적잖은 테이블머니를 요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업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런데도 현재 국내 관련업체들의 규격에 대한 인식도는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아 규격을 단순한 통과의례 쯤으로 생각해온게 사실이다. 따라서 현 IMF한파를 극복하고 환율급등의 호재를 계기로 수출극대화에 총체적으로 나서기 위해선 무엇보다 규격장벽에 대한 대책부터 치밀하게 다시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우선 가격경쟁력에 승부하는 국내업체들의 수출정책부터 시급히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즉, 개발단계에서부터 품질에 주안점을 둠으로써 어떤지역의 해당 규격에도 별다른 기술 보완없이 부합할 수 있는 「기본기」를 갖추는 것이 원가절감을 통한 가격경쟁력 확보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급변하는 해외 규격 및 관련 인증시스템에 대한 정보에 안테나를 높이 올리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기술장벽이 세계적으로 중요한 무역규제수단으로 자리잡으면서 각국의 규격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정보력이 떨어지면 그만큼의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고 결국 신제품의 적기 수출이 제대로 안돼 수출전선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업체들이 품질개선보다는 어떤 식으로든 규격은 따고 보자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하고 있는게 사실』이라며 『규격인증과정이 개발의 최종 단계중 하나이자 신뢰성을 공인받는 좋은 기회의 장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사고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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