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수학과를 졸업한 남성이 어느 기업체에 입사 지원을 했다. 회사측에서는 그의 머리가 좀 비정상적으로 큰 것 같아서 정밀 신체검사를 받게 했는데, 그 결과 수두증(水頭症)을 앓고 있었음이 드러났다. 수두증이란 뇌 안에 척수액이 적정량 이상 고이는 질병으로서, 이 병에 걸린 사람은 척수액의 압력에 밀려 대뇌가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하게 된다.
놀라운 점은 이 남성의 대뇌가 1백 정도밖에 안 되었다는 사실. 성인남성의 대뇌는 평균 1천3백이니까 정상인의 10분의 1에도 훨씬 못 미치는 작은 뇌를 갖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사람은 IQ가 1백26에 이르는 수재급이었고 운동신경이나 정신상태 등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1980년대초 미국 과학잡지 「사이언스」에 소개된 이 희귀한 사례는 우리가 흔히 접하는 속설 (인간은 죽을 때까지 두뇌의 10%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을 새삼 떠올린다.
이 속설은 적어도 두뇌 신경세포의 수를 따져보면 근거가 있다. 대뇌에는 약 1백40억개, 그리고 소뇌에는 1천억개 정도의 신경세포가 있으며, 척수와 연결되는 연수 등을 포함하면 도합 1천수백억개의 신경세포가 두개골 안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신경세포들은 태아가 태어날 때에 이미 세포분열이 완결된 상태이기 때문에 사람의 일생 중에 그 수가 더 이상 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신경세포들은 제각기 정해진 수명이 있어서 보통 성인의 경우 하루에 50∼1백만개 정도 죽어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루에 80만개만 잡아도 1년이면 2억9천2백만개, 80년을 산다면 2백34억개 정도가 죽는 셈. 결국 천수를 누리고 사망해도 두뇌의 신경세포들중 8할 이상은 고스란히 남는다는 말이다.
뇌생리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두뇌의 신경세포 하나가 죽으면 그 옆에서 잠자고 있던 다른 세포가 깨어나 죽은 이웃의 일을 대신하는 식으로 뇌의 활동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결국 인간 두뇌의 신경세포들 중 90% 가량은 평소에 잠자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은 죽을 때까지 두뇌의 10% 정도밖에 활용하지 못한다는 말은 일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처음에 언급한 1백 뇌의 사나이는 불가사의하다. 그는 1백의 10%인 10그램의 신경세포만 가지고도 정상적인 생활을 해 왔다는 것일까.
인간의 두뇌는 아직도 신비에 쌓인 영역이다. 20세기 들어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지긴 했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다. 흔히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만 뇌의 물리적 특성만을 따지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인간의 두뇌는 평균 1천3백이지만 고래는 2천5백, 그리고 코끼리는 4천6백이 넘는다. 그렇지만 이 동물들은 덩치가 크기 때문에 체중과의 비율을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인간의 두뇌 무게는 대개 체중의 40분의 1 정도. 그러나 쥐나 참새는 이 비율이 인간보다 더 높다. 대뇌 표면에 주름이 많을수록 표면적이 넓어서 지능이 높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돌고래가 인간보다 더 많은 주름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신경세포의 밀도가 얼마나 높은가를 비교해보는 방법도 있다. 사람의 대뇌는 0.001㎣당 약 10개 정도의 세포가 있다. 코끼리나 고래는 7개 정도이다. 하지만 원숭이, 개, 토끼, 고양이는 모두 사람보다 세포 밀도가 2∼4배 높다. 쥐는 무려 10배가 넘는다.
무엇보다도 처음에 언급한 사례가 인간 두뇌는 밝혀진 물리적 수치만이 전부가 아님을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인간의 두뇌는 아직도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이다.
일본은 21세기를 「뇌의 세기」로 선포해 국가적 차원에서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도 「뇌의 10년」이라는 기치아래 역시 집중적인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올해 들어서야 지난 2월에 비로소 한국뇌학회가 창립되었다.
「작은 우주」라고도 불리는 인간 두뇌는 21세기에 혁명적인 과학기술상의 변화를 가져 올 영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차원 높은 관심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마땅할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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