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디지털 지상파방송이 시작되는 미국시장을 겨냥해 전세계 주요 가전업체들이 디지털TV 상품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대표주자격으로 디지털TV시장 선점을 모색하고 있는 LG전자와 삼성전자의 사업전략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고선명(HD)TV용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에 동참하고 있는 국내 경쟁사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디지털TV용 핵심 칩세트를 서둘러 발표한 LG전자의 경우 칩기술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디지털TV 수상기 세트 공급은 물론 핵심 칩세트와 응용솔루션 공급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전방위 전략을 갖고 있다.
LG전자는 디지털TV용 칩세트분야에서 프랑스의 SGS톰슨, 미국의 루슨트테크놀로지 및 일본의 미쓰비시 등과 함께 선발주자로 나서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LG전자는 최근 지난해까지 총 5개에 달했던 핵심 칩세트에 대한 보강, 개선작업에 나서 이를 2개 칩으로 압축한 제2세대 칩세트 시제품을 개발하고 디지털TV 칩세트를 외부에서 조달하려는 업체들을 상대로 공급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같은 전략은 칩사업으로 승부를 걸기는 어렵다는 대내외 일각의 회의론에도 불구하고 LG전자가 최초의 디지털TV용 칩세트를 개발하는 과정에 LG그룹 소속의 종합기술원과 LG반도체 소속 연구진을 깊숙이 개입시켜 총 1천억원 이상의 개발비를 투입한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칩세트에 대한 LG전자의 자신감은 디지털TV뿐만이 아니라 응용영역에서도 가시화하고 있다. 차세대 디지털 VCR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일본의 JVC와 제휴하고 디스플레이 관련 칩분야에서는 샤프와, 디지털방송 수신용 PC카드분야에서는 인텔, 컴팩, 마이크로소프트 등 디지털TV시장에 군침을 삼키고 있는 컴퓨터업계의 공룡들과 협력을 추진하고 있는 것은 국내외 경쟁사들의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디지털TV 수상기 세트와 관련해서도 프로젝션TV는 물론 가정극장용 빔 프로젝터, HD급 전용 세트톱박스 등으로 상품화가 가능한 모든 종류의 제품들을 라인업할 예정이다. 물론 이같은 사업전략은 지난 95년 인수한 제니스의 기술과 사업기반을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전제로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LG전자의 디지털TV 사업전략은 스스로 이 사업을 「승부사업」이라고 지칭하듯이 LG전자를 세계 정상급 전자업체로 등극시킬 가능성과 함께 상대적으로 적지 않은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반면 삼성전자의 디지털TV사업은 TV수상기 상품화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투자효율성을 고려하면서 다소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95년경부터 신호처리연구소가 자체적으로 디지털TV용 주문형반도체 설계에 착수했던 삼성전자의 칩개발능력은 국내외 경쟁사에 비해 손색이 없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오디오 칩을 제외한 비디오 칩과 채널칩 등 핵심칩세트를 자체 개발한 데 이어 이를 장착한 디지털TV 시제품의 성능을 올초 미국에서 검증받은 바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핵심 칩에 대한 솔루션은 확보하되 칩자체를 사업화하지 않겠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칩을 개발하고 상용화하는데는 엄청난 비용을 투입해야 하나 주문형반도체나 시스템 LSI분야에서 과연 SGS톰슨, 루슨트테크놀로지, 필립스 등 기라성 같은 칩 전문업체와 부딪힐 경우 장기적으로 승산이 없다는 냉정한 판단 때문이다.
어차피 디지털TV 보급이 확대되고 상용칩 개발이 가속화하면 외부에서 조달하는 것이 투자효율성이나 신뢰성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방침에는 디지털TV에 앞서 착수했던 DVD, 디지털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등 디지털 가전사업을 통해 확실한 경쟁력이 없이 부화뇌동하는 자세로는 이 시장에서 생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져리게 실감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삼성전자측은 밝히고 있다. 삼성전자는 디지털TV가 대중화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초기 수요는 고소득층에 제한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TV수상기를 중심으로 품질 신뢰성을 극대화하고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데 역점을 둘 방침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양사의 디지털TV 사업전략을 보면 여타의 디지털 가전제품과는 달리 디지털TV에 관해서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입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하지만 양사는 모두 과거 선진국으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대량 생산만으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했던 것과는 달리 핵심기술과 특허역량을 갖추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국내 가전산업계의 사업패턴에 일대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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