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10년 이내에 시공(時空)의 제약을 받지 않는 호모 디지털리언(Homo Digitalian) 즉, 정보인이 등장한다.』
지난 1월 29일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의 주제 발표자로 참석했던 미국 제록스연구소 소장 마크 와이저 박사의 예측이다. 이 「정보인」이 활동하는 시간과 공간이 바로 21세기형 정보사회다. 컴퓨터의 보급이 본격화된 60년대부터 금세기 말까지 40년 동안을 제1기 정보사회라 하면 정보인이 주권을 행사하게 될 21세기는 제2기 정보사회가 된다.
제2기 정보사회에서는 의식주와 같은 인간의 기본 환경에서부터 사회, 경제, 정치, 문화, 교육 활동의 전반이 디지털적 사고에서 출발하며 디지털적 결과로 끝을 맺게 된다.
오는 25일 출범하는 새 정부가 지난 1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통해 발표한 「국민의 정부 100대 과제」 가운데는 이같은 제2기 정보사회 기반구축을 위한 정책적 의지가 분명히 담겨 있다. 예컨대 2000년 초반까지 1인 1 PC를 유도하며 2010년까지 32조원을 투입해서 초고속 정보통신망을 구축하겠다는 약속 등이 그것이다.
제1기 정보사회란 규격화와 대량생산을 축으로 하는 산업사회를 컴퓨터와 네트워크라는 수단을 통해 정보화시킨 사회로 정의할 수 있다. 즉 경제, 정치, 문화, 교육 등의 현상이 실제로 컴퓨터와 네트워크에 의해 영향을 받고 있긴 하지만 그 기저는 어디까지나 산업사회적인 이념과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사회다.
반면 제2기 정보사회는 바로 이 정보화한 산업사회를 토대로 구현되는 사회다. 따라서 정보의 생성과 유통은 처음부터 정보화한(혹은 디지털화한) 환경에서 일어난다. 디지털적 사고는 여기서 그 의미가 비롯됐다.
와이저 박사에 따르면 정보사회는 모두 4단계로 나누어진다. 제1단계는 1950년대 말부터 비롯된 메인프레임의 시대. 하나의 컴퓨터를 수십~수백/수천명이 공유하던 시기였다. 제2단계는 80년대에 출현한 개인용컴퓨터(PC)시대. 말 그대로 사람과 컴퓨터 사이 1대1 대응이 시작되던 시기다. 제3단계는 90년대 들어 급부상한 네트워크 시대. 제2단계와 달리 네트워크를 통해 1인이 다수의 컴퓨터에 대응하는 환경이다. 제1기 정보사회의 목표가 완성기에 해당한다. 이 제3단계의 총아가 바로 인터넷이다.
제2기 정보사회는 와이저 박사의 분류에 따르면 4단계에 속한다. 제2기 또는 4단계 정보사회를 규정하는 용어가 바로 「유비키토스 컴퓨팅(UC)」이다. 1, 2년전부터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유비키토스(Ubiquitous)」라는 단어는 도처에 널려 있는 컴퓨터를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을 갖고 있다. UC의 대표적인 사례가 「전자상거래」나 「전자정부」 등이다. 여기서 전자상거래나 전자정부의 형태는 전자화폐나 전자주민카드와 같은 정보인 고유의 보안 인터페이스를 통해서 이뤄지는 형태다.
전자화폐나 전자주민카드는 그러나 풍부하고 완벽한 UC 인프라가 갖춰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 인프라가 신사회간접자본(New SOC)이다. 정보의 디지털적 수송(DC), 보관(DB), 가공(DP)을 위한 공공시설이 신SOC이다. 대표적인 예로는 정보의 생성과 유통을 원활하게 해주는 인터넷의 초고속화, 대규모 전자도서관 등이 꼽힌다. 새정부의 100대 과제는 바로 이 신 SOC를 염두에 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신 SOC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인터넷 초고속화의 경우 국내에서는 지난 95년부터 초고속정보통신망이라는 이름으로 정부 차원에서 추진돼왔다. 정부가 최근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국가정보 하부구조로 바꿔 부르기 시작한 것은 애당초 이 사업이 사회 전반의 정보화 또는 신SOC 개념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인터넷 회선용량은 일부 기업과 연구기관을 제외하면 초당 1.5Mbps급 전송속도, 즉 T1급 이하가 대부분이다. 정부는 지난 95년 6백22∼1백55Mbps급 용량을 가진 국가네트워크 서비스접점을 오는 2002년까지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의 구축은 특히 최근의 「인터넷의 폭발적 증가현상」과 「정보의 멀티미디어화」에 부응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며 제2기 정보사회 조기진입을 통한 국가경쟁력 확보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새 정부의 과제 추진방법이나 역할도 바로 여기에 초점을 맞춰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100대 과제로서 정보사회 기반구축에 대한, 효율적이고 실천 가능한 정책들이 하루 빨리 구체화돼 추진돼야 할 것이다.
인터넷 초고속화의 다음 순서가 전자도서관(Digital Library)이다. 물리적 측면에서 인터넷의 초고속화가 통신비용 절감과 효율성의 증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전자도서관은 정보의 질과 관련돼 있다. 전자도서관은 단순히 기존 도서관을 전산화한 형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장된 정보도 지식뿐 아니라 상품거래정보를 비롯 최신 뉴스와 오락 등 모든 분야가 포함될 수 있다. 전자도서관은 아직 규모면이나 실용화 차원에서 본격적인 모델이 등장하고 있지는 않지만 국내에서도 현재 대학과 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구축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새 정부가 전자도서관의 확충과 활용방안에 대한 정책적 검토를 하루빨리 진행시켜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신 SOC의 세번째 범주에 드는 것이 슈퍼컴퓨터다. 슈퍼컴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다운사이징이나 분산컴퓨팅과 같은 시스템통합 이론을 잘못 해석하여 도입함으로써 사양세에 접어든 컴퓨터로 오인되기도 했으나 제2기 정보사회를 앞두고 그 역할과 중요성은 갈수록 증대될 전망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슈퍼컴 파워는 미국의 1백분의 1, 일본의 40분의 1, EU의 35분의 1 정도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들 선진국의 슈퍼컴 파워 서열이 권역별 무역량과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슈퍼컴의 중요성은 일반 컴퓨터로는 처리할 수 없는 시뮬레이션과 같은 고성능 처리능력에 있다. 예컨대 이제까지 대학에서 적용되고 있는 학술연구 방법론은 이론적 방법과 이를 증명하기 위한 실험적 접근방법 등이 있는데 여기에 더하여 제3의 방법인 컴퓨터 시뮬레이션이 도입되면 시간과 예산절감 차원에서 엄청난 변화가 있게 된다. 모든 산업생산에 대한 시뮬레이션 방법의 적용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경우 최근 신 SOC 구축 차원에서 과학재단을 비롯 에너지부와 국방부 등 중앙부처, 각 주정부, 대학들을 지역별로 묶어 슈퍼컴센터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일본 역시 신 SOC 구축 차원에서 자동차, 반도체 등 자국내 10대 전략투자 분야의 슈퍼컴센터를 미국의 해당 분야보다 우수한 것으로 보강하거나 교체중이다.
우리나라의 슈퍼컴센터는 대학 2곳, 출연연구소 1곳(2대), 민간기업 3~4곳 등 전체적으로 10곳 미만이다. 이렇게 보면 새 정부가 제2기 정보사회 구현을 위해 가장 힘써야 될 분야는 사실은 슈퍼컴 파워 확충에 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이밖에 신 SOC범주에 포함돼야 할 분야는 가상대학(Cyber University)이다. 가상공간에서 기존 정규대학의 교육과 학위를 수여받을 수 있도록 한 가상대학은 21세기 정보인의 배양을 위한 가장 중요한 교육 인프라라 할 수 있다. 최근 교육부가 선정 발표한 가상대학 프로그램운영 시범운영대학은 향후 우리나라 21세기 정보사회의 백년대계 밑그림을 그려나갈 주역들인 셈이다. 이들 시범운영대학 조기정착 여부에 따라 우리나라 제2기 정보사회의 조기진입 여부가 결정난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서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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