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스파이 사건" 피해와 파장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반도체 부문 전직 엔지니어들이 64MD램의 핵심기술을 대만의 난야테크놀러지(NTC)에 불법 유출시킨 이른바 반도체 산업 스파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사건이 향후 세계 반도체 시장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이들이 유출시킨 정보는 삼성전자가 공정 설계 단계에서 작성한 각종 결과물인 디자인 룰과 개략적인 공정흐름, 반도체 일관생산(FAB)등의 공정기술과 기본적인 회로도 및 반도체 칩 완성을 위한 데이터베이스 등의 설계기술 등 수십건의 주요 기술 자료가 유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삼성전자측은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를 「대단히 심각한 수준」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 수사발표 직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스파이사건에 대한 입장」이라는 문건을 통해 『경쟁사의 제품개발 및 양산시기 단축으로 인한 피해, 64MD램 공급과잉으로 발생되는 이익 감소 등 조단위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우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64MD램 3세대 기술이 유출됨에 따라 개발비용과 NTC사의 3년간 매출 증가에 따르는 기회 손실 비용을 합할 경우, 1조원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는 자체 분석이다.
또한 D램 산업에서 절대적인 프리미엄으로 인정되고 있는 선발업체의 이점을 상실해 전반적인 이익 감소가 예상되는 것은 물론이고 연구개발 및 투자비에 대한 상대적인 손실과 사내 엔지니어의 사기저하 등 보이지 않는 피해까지 포함할 경우, 이번 사건으로 인한 피해규모는 상상을 넘어설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국가적으로는 최근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는 대만 기업들의 조기 시장 진입에 따른 시장 점유율 하락이 예상되고 이는 결국 공급과잉과 가격 하락을 부추겨 수천억원대의 추가 손실을 가져올것이라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이는 결국 지난 수년간 세계 시장 지배력을 유지해온 한국 반도체 산업의 위상을 급격히 약화시킬 가능성까지 점쳐지고 있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상당부분 리버스엔지니어링이 가능하고 개발 기술보다는 공정기술의 중요성이 높은 D램 산업의 속성상 실질적인 피해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1~2년전부터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대만업체들의 국내 반도체 관련 기술자 스카웃을 통한 산업 스파이 활동을 차단하기 위한 일종의 견제가 아니겠느냐는 주장이다.
어쨌거나 이번 반도체 기술 유출사건은 최근 급증하고 있는 첨단 기술에 대한 산업 스파이 활동을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교훈을 남겼다고 할 수 있다.
대만 반도체산업 현황
이번 산업스파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대만은 한국을 모델로 반도체 산업을 주력 수출 상품으로 육성키 위해 범국가적인 지원체제를 구축, 일본과 한국에 이은 신흥 반도체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만은 기본적으로 PC 및 주변기기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내수시장이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크고 반도체 생산 주문을 받아 공급하는 파운드리산업을 중심으로 반도체 산업이 형성돼 있다.
대만은 오는 2000년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 10%, D램 시장 점유율 15%를 목표로 현재 12개 업체가 반도체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개발 및 생산기술이 없어 일본이나 미국업체들과 기술 제휴를 통해 초기 시장 진입을 추진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대만업체들도 최근 16MD램 경기 악화가 계속되면서 D램 사업이 매우 불안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더욱이 최근 한국과 일본의 D램업체들이 16M에서 64MD램으로의 인위적인 세대교체를 추진하면서 기술경쟁력이 급격히 약화되고 있어 64MD램 개발 및 양산기술 도입을 위해 일본 및 미국업체와 접촉중인 것으로 알져지고 있다.
때문에 상당수 업체들이 매출 목표를 하향조정하고 있으며 D램 사업에서 철수하는 대신 파운드리 사업에 뛰어드는 업체까지 나오고 있는 형편이다.
TI-에이서와 뱅가드사등 대만의 대표적인 D램업체들마저 최근 파운드리사업 참여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D램 경기가 되살아날 경우, 즉각 D램 생산을 늘릴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 및 일본업체들의 집중적인 견제를 받고 있다.
지난해 대만은 16MD램 2억6천만개, 64MD램 90만개를 생산해 세계 시장에서 각각 14.9%, 9.3%의 시장 점유율을 기록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NTC사는 지난해 3천2백만개의 16MD램을 생산한 대만 5위의 D램 업체이다.
사건 개요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전직 반도체 부문 연구원인 김형익, 장형섭, 김태훈 등이 주도해 97년 5월 17일 KSTC라는 메모리 반도체 개발회사를 설립했다.
이들은 당시 64MD램 개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대만의 난야테크놀러지(NTC)사와 접촉, 9월 30일 64MD램 3세대급 제품 개발에 대한 턴키방식의 계약을 체결했다.
KSTC사는 당초 일본 히타치사로부터 기술도입을 시도했으나 64MD램 관련 기술이 2세대급으로 뒤져있다고 판단, 이미 세계 시장에서 검중된 삼성전자의 3세대 기술을 확보대상으로 정하고 고액의 보수와 성과급 및 스톡옵션 등을 미끼로 제품 개발에 필요한 설계, 공정, 테스트 등 요소 기술자들을 끌어들였다.
이와 함께 제품개발을 위해 대만 NTC사 공장내에 사무실을 설치한 뒤 설계 및 공정 개발 엔지니어를 파견, 97년 10월부터 64MD램 개발에 착수했다.
이어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공정 엔지니어를 추가로 포섭해 자신들의 개발작업에 필요한 자료를 유출했다고 검찰을 밝혔다.
산업스파이 차단 제도적 장치 없나
반도체 기술 유출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면서 첨단기술에 대한 산업 스파이 활동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의 시급성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개별 기업의 피해 차원을 넘고 있는 데다 산업 스파이에 대한 처벌 규정이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국내의 법 제도의 헛점을 악용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재발방지책 논의가 확산될 전망이다.
현재 선진국들은 날로 급증하는 기업의 핵심기술과 영업비밀 유출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키 위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기존 법규를 개정 보완하거나 영업기밀 보호를 위한 특별법을 제정해 민, 형사상의 처벌을 확대하고 있는 추세다.
특히 형사처벌 규정을 새로 도입하거나 강화해 형량이나 벌금액을 크게 높이고 미수나 음모단계에서도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할 정도로 산업 스파이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산업 스파이에 대해 가장 강력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는 미국이다.
현재 40개주가 통일영업 비밀법(Uniform Trade Secret Act)를 채택하고 있으며 그외의 주정부도 별도의 영업비밀법을 시행해 민사적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클린턴 정부는 산업기밀 침해, 특히 해외 유출에 대한 형사처벌과 제재를 제도화한 「연방 경제스파이규제법(Economic Espionage Act of 1996)을 제정,시행하고 있다.
실리콘밸리와 항공산업계의 요구에 의해 시작돼 연방 형사특별법 형식으로 입법된 이 법은 산업, 경제기밀 등의 해외 유출로 인한 국내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방지하기 위해 검찰 및 연방수사국(FBI)의 주도하에 신속하고 강력한 제재체계를 수립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93년 부정경쟁방지법에 영업 보호 관련 규정을 보완해 산업기밀 사범을 규제하고 있다.
하지만 형사처벌 대상을 현직 종업원으로 한정하고 있고 처벌 규정도 3년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미약한 데다 국외 유출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이 없어 근본적인 제재수단이 못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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