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님이의 일기 (상)
박대리가 그 소식을 들은 것은 점심 식사 후, 식곤증을 달래기 위해 커피 한 잔을 마주하고 있을 때였다. 이대리가 사뭇 심각한 얼굴로 커피 잔을 들고는 박대리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박 대리, 오늘 그거 봤어?』
『뭘?』
『여태 모르고 있는 거야?』
『……?』
『어라? PC통신의 그 유명한 소식통인 불꽃남자가 모르는 것도 있네?』
『말 꼬랑지를 삶아 먹었나? 빙빙 돌리긴…』
박대리는 슬슬 비꼬는 웃음까지 흘리는 이대리에게 눈을 흘기고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PC통신에 접속했다. 이대리가 말하는 「그것」을 찾기 위하여.
『대체 어디 뭔 소식이 있다는 거야?』
『나도 좀 전에 신문에서 봤어. PC통신에 관련된 기사였는데 초등학교 6학년인 여자아이 글이 요즘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더군. ID가 「꽃님이」라니까 한번 찾아봐.』
『그래?』
박대리는 이대리가 말하는 꽃님이의 글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은 거리낌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올릴 수 있는 게시판이었다.
제목: 꽃님이의 일기.
『오늘도 아버지는 눈을 뜨지 못하고 계십니다. 의사선생님은 아버지가 언제 깨어나실지 확실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병원에서 잠시 쉬러 오신 어머니가 부엌에서 울고 계셨습니다. 어제는 연탄불을 꺼뜨려 방이 추웠습니다. 그래서 동생과 저는 밤새 끌어안고 잠을 잤습니다. 한번도 연탄불을 피워보지 않은 저는 그것을 어떻게 피워야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연탄불을 다시 지펴주시고는 동생과 저를 끌어안고 또다시 엉엉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리셨습니다. 이제 개학하면 저는 중학교에 입학하게 될테고, 아버지의 병원비도 마련해야 할 테니 걱정입니다.
저는 IMF가 뭔지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아버지의 봉제 공장이 부도가 났다고 어머니가 말씀하셨습니다.
빚쟁이들이 집에 있던 살림들을 모두 가져가던 날, 무서워 울기만 하는 우리들을 모아놓고 미안하다며 눈물 흘리시던 아버지….
우리가 살던 집에서 쫓겨 나와 방 한 칸짜리 지하 셋방인 이곳으로 이사오던 날도 어머니는 아버지와 함께 한숨만 쉬셨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다고 해서 아버지를 원망하진 않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도, 어머니와 동생과 저는 손을 마주잡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비록 사업실패로 자살하려 하셨지만, 이렇게 살아나신 아버지께서 빨리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건강한 모습이 되시길 말이에요』
아이는 일기를 적어가듯 하루의 이야기를 매일 PC통신에 올려놓고 있었다. 아이의 글들은 대부분 아버지의 이야기였다. 특히 눈물을 자아내도록 하는 부분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아버지가 농약을 마시고 방바닥에 쓰러져 있어 병원에 실려 갔다는 글이었다.
『이거 정말 남의 일 같지 않군.』
문제의 글을 모두 읽은 박대리는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입을 열었다.
『그러게, 정말 눈물겹구먼…』
『얼마전에도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났었어. 남편의 사업실패로 고민하던 주부가 빚쟁이에게 시달리다 못해 자살했다는…』
『저런,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그랬을까. 그저 요즘은 우리같이 회사에라도 붙어 있는 사람이 좀 낫다니까.』
『그럼 뭐해? 정리해고다 뭐다 지금 난리인데? 우리도 이제 파리 목숨이라고…』
『아이고, 제발 그 소리만 하지 말아줘. 정리해고의 「정」자만 들어도 오줌이 질금거려!』
이대리는 박대리의 「정리해고」라는 말에 온 몸을 부르르 떨어가며 부산을 떨었다. 어쨌거나 지금 불꽃남자 박대리의 마음은 심란 그 자체였다.
어린아이의 가슴에 남았을 상처가 너무도 측은했기 때문이다.
『이 아이가 정말 불쌍하네. 어린아이가 벌써 병원비 걱정에 학비 걱정까지 해야하다니…』
『맞아. 게다가 얼마 전에 뉴스에 나오는데 요즘 아이들 연탄 집게도 모르더라구! 그러니 연탄불 꺼뜨리는 것은 당연하지! 안 그래?』
이대리와 박대리는 컴퓨터 앞을 떠날 줄 모르며 꽃님이 이야기로 한숨지었다. 남의 일로만 여기기에는 꽃님이의 사연이 너무도 딱했기 때문이다.
<황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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