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산업계에 밀려오는 디지털 물결은 컬러TV, VCR 등 기존의 아날로그 영상제품들이 전세계적으로 보급포화상태에 도달해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국내 가전업체들에도 가슴을 부풀게 하는 새로운 기회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핵심기술이 없는 후발주자도 생존할 수 있었던 아날로그시대와는 달리 기술변화 속도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빠르고 국제적인 표준규격을 사용하는 디지털시대의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시장선점 경쟁이 예상되는 세계 디지털TV시장에서 과연 국내업체들이 입지확보는 물론 시장을 주도할 수 있을지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하는 국내 가전업체들은 디지털TV에 관한 한 일본, 미국, 유럽의 라이벌업체들과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는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고 자신만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선 기술적으로 국내업체들은 독자적인 핵심칩 솔루션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이미 지난해말 핵심 칩세트를 대부분 자체적으로 개발해 이를 장착한 디지털TV를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동계가전쇼에서 시연했다. 현재 디지털TV용 칩세트를 확보한 회사는 LG, 삼성전자를 비롯 일본 미쓰비시전기, 톰슨, 마쓰시타 등 5개에 불과하다. 히타치, 파이어니어는 물론 디지털 왕국건설을 선포한 소니나 샤프도 아직 디지털TV용 칩세트에 대한 독자적인 솔루션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오히려 LG나 삼성전자를 상대로 칩공급 의사를 타진하고 있다.
물론 디지털TV시장에 참여하고자 하는 업체 가운데는 기술력이 있으면서도 투자효율상 칩세트를 외부에서 조달하겠다는 방침을 세운 업체도 있지만 지난 96년말부터 상품화한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플레이어의 경우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모두 일본의 도시바로부터 칩세트를 공급받아 첫번째 모델을 상품화한 사실을 상기해 볼 때 디지털TV용 칩세트를 세계적으로도 빨리 개발한 것은 향후 디지털TV시장에서의 주도권을 잡는데 자신감을 부여할 만한 요인이 되고 있다.
LG전자 디지털TV 개발담당 김근배 이사는 『LG전자의 경우 올 2분기 안으로 1세대 칩에 비해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 칩수를 3개 정도로 줄인 2세대 칩을 완성함과 동시에 SD급에서 HD급까지 대응이 가능한 모든 칩솔루션을 확보할 예정』이라면서 『이는 히타치, 샤프, 소니 등이 칩세트를 독자적으로 개발한다고 해도 최소한 6개월 정도의 격차를 벌이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멀티미디어연구소의 주필상 수석연구원도 『라스베이거스 동계가전쇼에서 삼성전자의 디지털TV가 당장 상품화해도 손색이 없는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러한 저력은 국내 가전업계와 정부가 지난 90년부터 고선명(HD)TV 개발프로젝트를 국책과제로 선정하고 꾸준히 노력해온 결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지난 60년대부터 HDTV 개발에 착수한 일본이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해 낭패를 본 반면 국내 가전업계는 디지털방식을 선택해 그동안 국내외에 1천7백여건에 달하는 특허를 출원한 것은 국내업체들의 디지털TV 기술확보에 결정적으로 힘을 실어주는 밑천이 됐다.
또 장기적으로 디지털TV사업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는 특허문제에 있어서도 삼성전자가 지난해 MPEG2 특허풀에 특허제공자로 가입했으며 LG전자가 인수한 제니스가 미국 디지털TV 방송의 전송규격으로 확정된 VSB기술에 대해 원천특허를 확보하고 있어 일방적으로 미국, 일본업체에 특허료를 지불해왔던 상황에 견주어 상당히 유리한 고지에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업체들이 36인치 이상 브라운관 타입의 초대형TV나 40인치 이상의 프로젝션TV에서 경쟁력이 뚜이난데다 아날로그방식이긴 하지만 이미 HDTV를 생산하고 있어 전반적인 생산기술과 부품자급률 측면에선 일본업체보다 열세에 놓여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종합적으로 평가해 볼 때 반덤핑규제와 같은 장벽에 부딪히지 않는 한 국내 가전업계의 디지털TV사업 전망은 현재로서는 낙관적이며 나아가 정보가전시대를 주도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는 기폭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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