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부도의 위기로 내몰리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재정립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금과 같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가 종속적인 상태에서는 우리나라 경제의 병폐를 치유할 수 없으며 수평적인 협력체제 구축이 필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대기업에 물량을 공급하는 부품업체들은 대기업의 구매담당자의 손끝에 좌지우지되는 파리목숨과 같다.』
가전 3사에 저항기를 납품하고 있는 한 저항기업체 K사장의 자조섞인 한숨은 우리나라 대기업과 부품업체들의 관계를 잘 말해준다.
『구매담당자에게 밉보였다가는 지금까지 공급해온 물량도 여지없이 끊겨버리기 때문에 다소 불만이 있더라도 군말없이 따르는 것이 중소기업이 살아남는 길이다.』
따라서 구매담당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뒷거래가 성행하게 되고 그 비용은 제품에 전가돼 결국 우리나라 경제의 문제점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가 고착되는 악순환 구조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다는 것은 차치하더라도 최소한 중소기업의 의욕을 꺾는 이러한 전근대적인 관계는 청산돼야 한다는 것이 부품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어떠한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일본경제의 원천은 대기업 및 중소기업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구축해온 네트워크형 산업구조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이라는 두개의 톱니바퀴가 맞물려 일본경제를 흔들림없는 철옹성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국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관계가 바람직한 발전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대기업이 「힘의 일방통행」이란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데 있다.
봉건시대 영주와 농노의 관계처럼 대기업이 중소기업에 물량공급권을 부여함으로써 대기업이 부품업체들을 소위 「먹여살리고 있다」는 의식이 저변에 팽배해 있는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평적인 협력관계는 요원할 수밖에 없다.
이제 대기업, 중소기업 가릴 것 없이 파산의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 대기업들이 자기필요에 따라 중소기업을 좌지우지하다 쓸모가 다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합리적인 판단에 따르지 않고 인정사정없이 「잘라」버리는 고질적인 병폐는 고쳐야 한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중소기업인 부품업체 없이 대기업도 존재할 수 없다. 이제 이들의 관계는 힘에 기초를 두는 「지배구조」가 아니고 상호신뢰와 전문성에 기초하는 「협력구조」로 전환돼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구조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보다는 대기업 관계자들의 의식전환이 우선돼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시대건 분명한 것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강점이 상호보완적으로 작용할 때 한 나라의 산업경쟁력은 가장 강해질 수 있으며, 이제 장기적인 안목을 바탕으로 대기업이 중소협력업체와 공존공생관계로 발전하겠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나가야 할 때다.
IMF정국으로 인해 자기만 살겠다는 이기주의가 더욱 팽배해지고 있는 요즘 큰 것과 작은 것의 조화에서 비롯된 아름다움을 다시 한번 새겨볼 때다.
<권상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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