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에선 부품업계 다시 한번 뛰자 (18);부품공용화

『삼성 반도체 제품을 국내에서 직접 구매하는 것보다 대만에서 우회구입하는 것이 훨씬 저렴합니다. 대만의 경우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한꺼번에 1천만개 이상을 대량으로 공동구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IMF한파로 인한 불황을 수출로 타개한다는 방침으로 최근 수출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는 한 PC용 SMPS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저가형의 PC용 SMPS 전문업체인 K사도 지난해 대만에서 하나의 PC용 SMPS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부품을 모두 모아 세트로 포장해 놓은 부품을 수입해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했었다.

이 회사는 결국 수입비용 및 조립과정에서 발생하는 손실로 인한 생산성 저하를 우려해 이같은 계획을 포기했지만 『국내에서 관련부품을 일일이 조달하는 것보다 대만업체들이 이처럼 세트로 구성해 놓은 부품을 구매해 조립하는 것이 제조원가 면에서는 훨씬 이득입니다』라며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또한 최근 들어 수출을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 대부분의 국내 부품업체들은 『최근의 환율상승으로 국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높아지기는 했으나 대만업체들은 결코 쉬운 경쟁상대가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국산제품의 경우는 일시적인 환율상승으로 가격경쟁력 상승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라 언제 다시 경쟁력이 낮아질지 모르는 상황이지만 대만업체들의 경우는 국가적인 차원에서의 부품공동구매를 통한 제조원가 절감으로 탄탄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이처럼 부품 공동구매가 활성화돼있는 대만은 오래전부터 국내 중소기업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돼왔다.

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이같은 대만의 기업환경을 배워야한다는 목소리만 높았지 실제로 적용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 간혹 일부 업계에서 부품공동구매를 추진하기는 했지만 업체들의 참여 저조로 무산되기 일쑤였다.

지난 96년부터 조합원사를 중심으로 부품 공동구매를 추진했던 한국파워서플라이연구조합은 업체들이 『대부분의 제품을 세트업체의 주문에 따른 다품종 소량생산하고 있어 부품 종류가 너무 다양하고 수가 적어 공동구매의 여지가 별로 없다』고 주장해 다이오드, 전해콘덴서, 라인필터 등 공용화가 가능한 부품으로 공동구매 품목을 축소했지만 참여하려는 업체가 너무 적어 사업을 포기해야만 했다.

이와관련 연구조합의 한 관계자는 『이처럼 부품공동구매사업에 참여하려는 업체가 적은 것은 지난친 경쟁의식 때문에 자사의 생산과 관련한 정보유출을 꺼리고 있는 등 경영자들의 마인드가 너무 폐쇄적인 때문으로 보인다』며 국내 업체들의 부품공동구매가 실현되기 위해서는 경영자들이 보다 넓은 시야를 갖고 인식을 전환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또한 안정기 업체들이 트랜지스터와 전계효과트랜지스터(FET) 등의 핵심부품을 전등기구조합을 통해 구입키로 했던 공동구매사업도 S사 등 부품공급업체의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다 해외업체로부터의 구입에 대한 회원사들의 호응부족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해있다.

이에 대해 업계 일각에서는 『부품업체에서 세트업체에 이르기까지 대다수의 업체들이 눈앞의 이익을 챙기기에만 급급해 국내 업체들끼리의 경쟁에 치중하고 보다 큰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는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질책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경우 세트업체들은 기득권 상실을 우려해 부품 표준화를 꺼리고 있어 부품업체들의 개발비 부담이 엄청나고 부품업체들 가운데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업체가 많아 대만업체들을 부러워하면서도 부품공용화가 실현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트랜스포머 업체인 K사의 S사장은 『원자재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제품 공급가격에 대해서는 인하압력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국내 업체들의 생존여부는 얼마나 싸게 만드느냐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또한 최근 일본 전자레인지 업체인 S사가 전자레인지 부품공통화를 통한 제조원가 절감을 추진하고 있는 등 일본에서도 제조원가를 절감하기 위해 부품표준화를 추진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는 외신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IMF한파로 인해 국내시장이 크게 위축되면서 하루에도 부도를 내고 문을 닫는 업체가 수백개씩 생겨나고 있는 상황이다. 「우물안 개구리식」 집안싸움보다는 해외시장으로 뻗어나가기위한 경쟁력 강화가 국내 업체들의 생존을 위해 선결해야할 가장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김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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