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소프트웨어지원센터 음향제작실의 이정희씨(32)는 자신의 작업실을 하나의 유기체로 생각한다. 작업실 곳곳의 기구들을 사람의 눈, 코, 입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듣고 보고 이해하며 말하는 또 다른 생물체로 여긴다.
음향기기들을 지칭할 때도 그는 「이것」이나 「저것」이라는 표현 대신 「얘」나 「이 놈」이라는 호칭을 쓴다. 『다른 사람하고 일하고 나면 꼭 화가 난 것처럼 말을 안듣는다』며 이씨는 음향기기 하나 하나마다 애정어린 푸념까지 늘어놓았다.
매니아들 중에는 자신의 작업도구들을 마치 애완동물처럼 다루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씨가 음향작업실에 쏟아 붓는 애정은 보다 각별하다. 작업실의 기본 설계부터 기기 구입에 이르기까지 이 곳 구석구석에 그의 애정과 정열이 녹아있기 때문이다.
지난 91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쇼비(尙美)대학에서 음향예술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96년 11월 귀국하자마자 한국소프트웨어센터에 입사했다. 입사 후 지난 97년 2월까지 그가 한 일은 벤처기업들의 음향작업을 지원할 음향작업실을 꾸미는 일. 음향예술 전문가다운 장인정신으로 그는 첨단 음향장비들로 작업실 곳곳을 채웠다.
디지털 전용과 아나로그/디지털 혼용 두 곳으로 나뉘어진 작업실에는 야마하의 디지털 콘솔을 비롯, 아멕(AMEK)의 아나로그 콘솔, 이뮤(EMU)의 사운드모듈 등 다양한 음향기기들로 가득하다.
작업실 구성을 위해 기기구입비로만 2억여원이 소요됐다. 음향데이터를 편집 녹음하는 프로툴스는 소트트웨어만 2천만원이며 영 아멕사의 아나로그콘솔 「안젤라Ⅱ」는 8천만원, 전세계 매니아들이 즐겨 사용한다는 영창악기의 「K-2500」 키보드는 3백만원이다.
이 장비들을 활용해 그가 음악과 음향을 만들어준 회사만도 1백여개사. 정확한 작품수는 기억하기조차 힘들다.
『사람들이 음향제작에 대한 인식이 부족할 때가 가장 안타깝습니다. 비용이나 시간 모든 측면에서 사람들은 지극히 인색합니다. 잘 몰라서 그러는 것도 있겠지만 음향 자체를 단순 조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는 작업실 자체가 중소업체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음향제작비도 최소의 실비만을 받지만 그것도 힘겨운 업체들에게는 직접 제작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한다. 그에게 사후작업 컨설팅을 받은 업체도 여럿이며 일부는 그의 개인장비를 대여해 쓰기도 했다.
그는 요즘 DVD와 같이 새로운 미디어를 지원하는 또 다른 작업실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에 빠져있다.
프로 못지 않은 경력과 전문지식이 있지만 아직은 아마츄어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의 예술혼을 완성시키기에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욕심 때문이다.
<김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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