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품산업은 기본적으로 원가절감을 통해 먹고 사는 업종이다. 품질좋은 제품을 경쟁업체보다 싸게 공급하지 않고는 살아남을 수 있는 재간이 없는 게 부품업계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거세지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세트업체는 부품업체에 끊임없는 원가절감을 요구하는 것이 관례고 부품업계 역시 생존을 위해 제품의 생산성 향상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게 마련이다. 부품업계는 세트업체와 사활을 같이하는 게 보통이다. 세트업체가 존재하지 않는 한 부품업계의 생존은 무의미하다.
더욱이 국내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세트업체와 부품업계의 관계는 대부분 수직적이다. 특히 요즘처럼 자금사정이 어려운 시기에는 대부분의 부담을 부품업체에 떠넘기는 게 세트업체들의 「버릇」이다.
때문에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경제환경은 그렇지 않아도 존립기반이 허약한 국내 전자, 정보통신 부품업계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국내 대기업에 부품을 공급하는 한 중소업체 사장의 하소연.
『부품업체가 조금이라도 재미를 본다는 소문이 퍼지면 당장 부품가를 내리라는 요구가 세트업체로부터 내려옵니다. 반면 세트업체가 잘 나가던 시절에 세트업체가 자발적으로 부품가격을 올려주거나 결제조건을 개선해 줬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일례로 지난해말 고환율이 장기화하자 세트업체들이 달러를 기준으로 하던 거래 관행에서 벗어나 고정환율을 적용한 원화 결제방식으로 전환, 환차손을 부품업체들에 전가해버렸다. 결제 조건도 점점 악화되고 있다.
이런 저런 여건 때문에 국내 전자 부품업계는 고사직전이다.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절감은 이미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조리 삭감하고 있다.
그렇다고 생산성 향상을 통한 원가절감에 무관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다만 원가절감을 추진하는 접근 방법의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세트업체와 부품업체가 공동체 의식을 통해 원가 절감의 방안을 찾아가야 한다는 지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산업의 전통적인 원가절감 방식이 원가 절감을 추진하는 국내 전자업계 전반에 타산지석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3대 재벌그룹이 주도하는 메모리 반도체 산업은 이른바 「수율」이라고 일컬어지는 생산성 향상이 생명이다. 웨이퍼 한 장당 만들어낼 수 있는 D램의 숫자가 바로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도체업계의 원가절감 노력은 관련업종인 재료 및 장비업체들과 공동으로 추진되는 게 일반적이다.
특히 반도체 장비업체들은 대개 소자업체들의 생산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게 보통이다. 생산 과정을 이해하지 않고는 라인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비의 성능을 개선하고 프로세스를 바꿔나가는 일은 소자업체나 장비업체 독자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는 것을 모두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같은 협력체제를 통한 원가절감 및 생산성 향상 노력은 기본적으로 각 업체가 가진 업무의 비효율과 거품을 제거하는 일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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