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98 영상산업 쟁점 (6);음반 가격정찰제

국내 음반업계 최대의 관심거리인 「재판매가격유지(가격정찰)제」가 지난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약 4천억원 규모인 국내 음반시장의 질서를 크게 변화시킬만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음반경기의 위축과 함께 직배사 및 도, 소매상들의 반대와 낮은 참여율,시행초기의 혼선까지 겹쳐 이 제도의 정착은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가격정찰제는 음반거래질서정상화추진위원회(회장 박경춘),한국영상음반협회(회장 임정수),전국음반도매상협회(회장 이광용)의 주도 아래 대일레코드,원음사 등 일부 도매업체들과 지구레코드,아세아레코드,라인음향 등의 제작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 시행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는 중대형 도, 소매업체의 참여율이 낮고,상당수의 제작사들이 외면하고 있어 당초 취지인 「음반소비자가격 안정,유통마진의 통일,시장정상화」를 실현하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분석된다. 음반직배사들은 물론이고 신나라레코드물류, 웅진미디어, 탑뮤직 등 중대형 도매업체,타워레코드를 비롯한 대형 소매점,영세 소매업체들의 모임인 전국소매상연합회 등 음반유통 핵심업체들이 가격정찰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일부 도매업체는 겉으로는 가격정찰제에 따라 물품을 공급하면서도 뒤에서는 기존 유통관행인 「음성적인 가격할인」(일명 Back DC)을 고수,제도의 취지를 무색케 하고 있다. 이들은 또한 가격정찰제의 1월1일자 시행을 강행하면서 기존 공급물품에 대한 정리를 마무리하지 않아 오히려 가격혼선을 부추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1일을 전후해 같은 회사,같은 음반의 가격에 편차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공급자가 반품이나 가격조정을 통해 이를 해결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는 경기 한파에 따라 회사의 존립여부가 불투명한 일부 도매업체들이 반품을 받아주거나,가격을 조정할 만큼의 역량이 없는데서 비롯된 것으로 원활한 가격정찰제 실현의 큰 장애물이 되고 있다. 더구나 제도 시행을 이끌 것으로 기대됐던 D레코드, M사, K레코드 등 중견 도매업체들이 각각 부도,폐업함에 따라 업계 일각에서는 『가격정찰제는 물건너 갔다』는 자조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들어 음반유통계에 생존을 위한 현금결제 및 반품기조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유통질서가 무너지고 있는 등 가격정찰제는 시류를 떠난 느낌이다』고 말했다.

가격정찰제는 국내 음반업계의 숙원사업이자 유통 선진화의 교두보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시행주체들이 업계 전반에 걸친 의견조율이나 가격에 대한 사전정비없이 성급하게 시행하고 강압적으로 동참을 요구,불신을 조장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몇몇 도매상들이 가격정찰제를 이용해 시장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 한다』는 불평도 들린다.

업계 관계자들은 『가격정찰제는 거래 당사자간 합의계약를 통해 이루어지며,참가 및 탈퇴는 해당업체의 자유의사에 맡겨야 하는데도 이를 주도하는 도매상들의 일부는 이같은 기본원칙을 무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격정찰제를 이끌고 있는 관련단체 및 참가업체들이 업계에 만연해 있는 「반대」기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지 주목된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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