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벼랑에선 부품업계 다시 한번 뛰자 (4);장인정신

『산업이 고도화되고 장치산업화해도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응용하는 것은 사람입니다.

때문에 한 기업이 기술적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선 오랜 경험과 노하우를 터득한 개발자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러나 요즘 엔지니어들은 「몸값」 높이기에만 급급, 자고나면 회사가 바뀌고 이에따라 멀쩡한 업체가 하루아침에 개발에 큰 구멍이 생기기 일쑤입니다.』

인천 소재 중소 회로부품업체인 K사의 L사장은 『동고동락을 약속했던 핵심 개발직원이 최근 승진과 함께 파격적인 봉급인상이라는 경쟁업체의 회유를 뿌리치지 못하고 이직함으로써 막바지에 접어든 개발프로젝트가 전면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며 요즘 부품업계 기술자들의 실종된 「장인정신」을 개탄했다.

90년대 들어 반도체, 컴퓨터, 소프트웨어, 정보통신 등 일부 첨단 유망업종이 많은 공학도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전문인력의 편중현상이 심화돼 중소 일반 부품업체들은 심각한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병역특례제도에 따라 젊고 유능한 개발자들을 채용, 키워보고 싶지만 의무복무기간인 5년 후엔 대부분이 회사를 옮기는 것이 관례처럼 돼있다.

몸담았던 회사를 떠나는 엔지니어들은 대개 다른 회사로 스카우트되는 경우지만 그중 상당수는 경쟁사를 창업, 어제의 동지가 순식간에 적으로 바뀌는 게 보통이다.

최근엔 특히 개발자들이 그룹단위로 퇴사하는 사례가 빈발, 기존 업체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고 있으며 퇴사시 갖고 나온 기술로 유사 제품을 만들어 특허침해 등 각종 소송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철새 엔지니어들의 영향으로 수십년간 한 우물을 파온 선발업체들은 「사관학교」라는 별로 달갑지 않은 닉네임까지 얻고 있다. 실제로 전지부문에서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로케트전기 출신이 전지업계 곳곳에 배치돼 있으며, PCB(대덕산업), 콘덴서(삼화콘덴서), 스위치(경인전자), 수정진동자(싸니전기) 등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같은 부품업계 엔지니어들의 높은 이직과 창업은 부품산업의 저변확대와 시장활성화에 적지않은 기여를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노동집약형이었던 일반 부품산업이 빠르게 기술집약 및 자본집약화 한다는 점에서 기술개발의 중심에 선 엔지니어들의 이동은 기술축적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심각한 문제점을 양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기술력 하나만으로 생존경쟁에 뛰어든 벤처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는 데다 IMF체제에 따른 고환율 및 고금리 시대에 부응하고 현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남보다 뛰어난 기술력과 개발자들의 철저한 장인정신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사람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수불가결하다.

우선 기업 스스로 개발 엔지니어들이 철저한 프로의식과 장인장신을 갖도록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스톡옵션, 인센티브제도 등을 도입, 위축된 개발자들에게 자긍심과 주인의식을 심어주고 능력위주의 인사 등 인력관리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인력관리 정책도 현실에 맞게 재조정돼야 한다. 각종 인력육성프로그램을 통한 전문인력의 대량 배출도 중요하지만 이들이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보완장치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 업계 관계자들은 현 병역특례제도의 맹점과 시류에 편승한 극소수 유망업종의 인력을 양성하는 정부정책의 개편을 꼬집고 있다.

개발자 스스로의 마인드 전환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직위에 얽매이지 않고 수십년간 장기근속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세계 일류상품을 만들어내는 일본, 대만 등 선진국의 개발자들처럼은 못된다 해도 오랜 노력 끝에 획기적인 기술과 히트상품을 개발할 때 회사가 살고 내가 산다는 장인정신의 복원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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