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특강] 나노과학과 기술발전

河貞淑

◇8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화학과 졸업

◇89년 미국 브라운대 화학 박사

◇89∼91년 미국 시카고대 박사후 연구원

◇91년∼현재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기초기술연구부 선임연구원

갈수록 늘어나는 정보통신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차세대 정보통신분야는 테라(10¹²)급으로 초고속이면서 대용량의 정보저장, 처리, 전달, 가공기술이 필요하다. 특히 대용량 정보저장을 위해서는 현재 메가(10)급인 저장능력을 기가(10), 테라급으로 향상시켜야 하는데 이의 실현을 위한 기술중 하나가 시스템 구성의 최소 단위인 단위소자의 축소화다. 수 테라급의 집적을 위해 단위소자의 활동영역이 나노미터 크기 정도로 축소돼야 한다. 이러한 나노미터 영역의 초미세 구조 제작기술과 이 구조에서 일어나는 여러가지 새로운 현상을 규명하는 것이 나노과학과 기술이다.

1959년 말 미국의 세계적 물리학자인 파인만 교수가 『There is plenty of Room at the Bottom (바닥에는 아직도 많은 공간이 있다)』 이라는 예언적 논고에서 1백개 정도의 원자로 구성된 미세구조에 수 비트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게 돼 전세계에 있는 모든 책들의 정보를 2백분의 1인치 크기의 정육면체 한개 속에 기록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러한 꿈같은 이야기를 현실화할 수 있는 연구결과들이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다. 그 중 주사관통현미경(STM:Scanning Tunneling Microscope)과 원자간력현미경(AFM:Atomic Force Microscope)같은 탐침 현미경의 개발은 가장 획기적인 발전이다. 이 현미경들을 표면의 원자 및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 조명은 물론 보다 적극적으로 물질을 나노미터 크기, 나아가 원자수준에서 조작하고 변형시키는 데 이용할 수 있다는 최근의 연구결과는 매우 고무적이다.

미국 IBM연구소의 아이글러 박사팀은 지난 90년 액체헬륨온도인 4K에서 니켈표면 위의 제논(Xe)원자들을 STM의 탐침으로 하나씩 움직여 원하는 위치에 배열하는데 성공, 최초의 원자조작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 이후 아브리스 박사팀이 상온에서의 실리콘원자 탈착, 흡착 등 몇몇 시스템에서의 원자조작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 결과들이 발표됐다. 또 취리히의 IBM연구소에서는 최근 STM의 탐침으로 상온에서 개별 분자를 조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원자, 분자 차원이 아닌 나노미터 규모에서는 즉각적인 기술적 응용을 기대할 수 있다. 이미 STM의 저에너지 전자빔을 이용한 리소그래피의 가능성이 실험적으로 증명됐다. 기존의 고에너지 전자빔을 이용하는 리소그래피 방법에 비해 STM을 이용하면 전자의 후방산란과 이차 전자의 발생에 따른 문제들이 줄어들 수 있다. 현재까지 해상도가 10나노미터 정도, 노출 속도가 기존의 전자빔 리소그라피 방법에 상응하는 결과가 얻어지고 있다. 특히 나노미터 크기의 탐침 어레이 제작기술의 획기적인 발전으로 속도향상과 함께 STM 등을 나노 기술에 적극 활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또 STM의 전자빔은 얇은 금속선이나 나노미터 크기의 자석들을 국부적으로 증착하는 데도 이용되고 있다.

나노 구조 형성의 또다른 접근방법은 자연현상을 이용하는 것으로 분자들의 자기정렬(Self Assembly)에 의존한다. 이 방법은 일단 적당한 분자들이 합성되면 자기정렬은 자발적이어서 실험하는 사람의 작업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매우 간단하면서도 시간이 적게 걸린다는 장점을 갖는다. 이렇게 자기정렬된 구조들은 특히 결함이 적다. 이는 형성된 구조 자체가 평형상태에 있으므로 자발적으로 결함을 수선하는 본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자기정렬에 유기분자가 사용된다면 화학합성에 대한 기존의 방대한 지식을 이용해 이 분자들을 일부 변경, 새로운 기능을 부여하고 그들의 특성을 주문생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소자의 크기가 점차 축소돼 나노미터 스케일의 구조가 만들어지면 고전물리학만으로는 여러가지 현상의 설명이 불가능하게 되고 양자역학적인 개념의 도입이 필요하게 된다. 이러한 양자역학적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소자의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 분야는 크게 양자광학 소자와 양자전자 소자로 구분할 수 있다. 양자광학소자 분야는 양자우물, 양자선, 양자점 구조를 이용, 광소자의 효율증진을 위한 반도체 레이저와 반도체 광검출기의 개발에 중점을 두고 있다. 양자전자소자 분야에서는 양자우물에서의 전자 관통, 저차원에 구속된 전자의 특성, 탄동적 전자의 특성, 전자의 파동성을 이용하는 소자의 개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초미세구조의 소자 개발 연구는 양자소자의 유력한 구도로서 단전자 소자의 동작이 시현됐으며 원자 스위치 소자도 제안돼 실용화연구가 진행중이다. 그러나 나노 전자소자 연구는 아직도 개념적이며 실험실 수준이어서 실용화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최근 이러한 나노전자 소자의 개념적이고 물리적인 한계를 극복하여 실용화를 가능하게 할 괄목할 만한 연구개발 결과들이 개발됐다.

종래의 자외선-가시광선 리소그라피는 0.1마이크론(1백나노미터) 이하의 구조를 만드는 데는 사용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하버드대학의 화이트사이드 교수와 미네소타대학의 추 교수는 자기정렬하는 분자층을 이용해 훨씬 저비용의 간단한 방법으로 이 한계를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이는 나노 공정의 산업적 응용을 가속화할 수 있으리라 기대된다. 최근에는 3차원의 나노 구조도 상대적으로 매우 쉽게 제작할 수 있으며 고집적 자기물질 저장매체의 나노 공정에도 이 방법을 응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사의 나노전자팀에서는 마이크로칩의 중간에 나노미터 스케일의 양자소자를 끼워넣는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는 1980년대 미국 AT&T벨연구소의 카파소 박사에 의해 제안된 혼성논리(Hybrid Logic)로 종래의 마이크로 전자공학의 장점과 신뢰도를 유지하면서 칩의 논리 집적도를 엄청나게 증가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갖는 전이단계로 훨씬 더 집적도가 향상된 전자 컴퓨터의 출현을 가속화하는 아이디어가 된다. 미국 코넬대학의 맥도널드 교수는 마이크로-STM 어레이를 초고집적도의 데이터 저장과 나노 구조들의 대량 생산에 응용하는 데 연구의 초점을 두고 있다. 궁극적으로 근접 탐침 어레이들을 포함하고 있는 마이크로칩이 현재의 컴퓨터칩과 같이 대량 생산된다면 이들이 모든 책상용 워크스테이션에 부착돼 있는 장식품으로 사용되는 것을 상상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대량의 나노 구조들과 나노 소자들이 널리 사용될 것을 전망할 수 있다.

초미세(Ultra Small), 초저전력(Ultra Low Power), 초고속(Ultra Fast) 전자컴퓨터 개발을 위한 여러가지 연구프로젝트의 성립은 최근의 가장 혁신적이고 중요한 나노전자 공학과 나노컴퓨팅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나노기술의 실용화를 위해 극복해야 할 난제 상술한 바와 같은 최근의 획기적인 연구성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실용적으로 널리 사용될 나노전자 소자와 컴퓨터의 개발을 저해하는 어렵고도 주요한 장애요인들이 많이 남아있다. 나노 전자소자의 집적도를 향상시키고 동작온도를 극저온에서 상온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자들을 단분자 스케일로 만드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는 전류나 신호를 통하게 하고 조절하는 데 필요한 고유한 물리적 특성을 갖는 단 분자들을 디자인하고 합성하는 방법을 통해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러한 방법을 종종 분자 전자공학(Molecular Electronics)이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최근 동작하는 분자전선의 합성과 시험결과가 발표되었지만 이제까지 분자 트랜지스터와 분자양자점과 같은 동작하는 나노미터 스케일의 분자전자 스위칭과 증폭소자들은 제작된 바 없다. 분자트랜지스터와 분자 전선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는 잘 알고 있지만 이러한 요소들을 조립해 작동하는 논리구조를 제작하는 데는 아직도 엄청난 장애요소들이 존재한다. 소자를 조립하는 한가지 가능한 방법은 STM을 이용해 분자요소들을 배열하는 것이며, 또 한가지 가능한 방법은 어레이들을 자기정렬과정을 통해 더 커다란 전자소자로 조립하는 것이 될 것으로 여겨진다.

나노전자 논리소자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면 다음단계로 이들을 조립해서 유용하게 이용하고자 하는 구조는 테라비트의 메모리 어레이나 칩이 될 것이다. 이는 컴퓨터 정보시스템에 많은 양의 정보저장을 빨리 그리고 기계부품을 전혀 움직이지 않고 수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영화 한편을 칩 하나에 저장하는 것과 같은 응용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마이크로 전자공학과 나노 전자공학 논리를 혼성하는 방법으로 테라비트 메모리를 만드려는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STM과 같은 거대 탐침을 이용하여 나노 구조나 소자들을 기계적으로 조립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작업이며 이는 에트로피 측면에서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이유로 몇몇의 연구그룹에서는 마이크로 STM과 AFM을 미세전자기계시스템(Microelectromechanical System)에 이용, 나노미터 스케일의 구조들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조작하고자 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아직은 이런 마이크로 STM과 AFM이 실용적인 나노공정에 이용된 바 없지만 이는 매우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나노 전자공학이 실용적이며 경제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나노미터 스케일의 구조들이 지금보다 수백억배 이상 빠르게 공정돼야 한다. 따라서 이런 나노구조를 마이크로 STM과 AFM으로 한번에 하나씩 만드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그러므로 나노 전자부품들을 기계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마이크로 크기의 나노조작기(Nanomanipulator)들을 병렬적으로 이용해 나노소자들을 대량 생산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마지막으로 나노미터 스케일의 전자소자를 공정하는 데 존재하는 모든 걸림돌을 해결한다 해도 사상 유례가 없이 고밀도로 패킹이 돼있는 수백만조개의 전자요소를 갖는 소형의 컴퓨터를 제작하는 데는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먼저 제기되는 이슈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부연결 문제이다. 나노컴퓨터는 매우 좁은 공간에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저장하고 또 극도로 빠르게 정보를 만들어낼 것으로 예측된다. 또 컴퓨터의 많은 요소들을 조절하고 조정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메커니즘이 요구된다. 이는 컴퓨터 구성요소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외부 환경과의 사이에 엄청난 수의 연결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입출력과 조절을 위한 새로운 전략이 요구되며 아직도 이 분야에는 해결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다.

이미 미국, 일본, 유럽연합 등의 선진국에서는 90년부터 나노급 전자소자 연구를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정부, 국책연구소, 대학, 산업체 등에서 대규모로 참여하고 있으며 일본의 나노테크놀로지 연구는 매우 활발해 원자 및 분자 조작기술 사업을 비롯해 많은 프로젝트들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유럽연합에서도 공동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 나노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나 최근 「미래원천기술사업」과 「창의적연구진흥사업」의 주요 프로젝트로 나노과학 분야가 선정돼 이 분야의 연구 활성화가 기대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기초기술연구부, 서울대,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연세대 등에서 나노과학 및 기술분야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1950년대 말 파인만 교수가 조명했던 예측이 점점 현실화하고 있다. 향후 10년간 더욱 획기적인 과학, 기술의 발전은 물질을 원자 그리고 나노미터 크기에서 정확하게 조절하는 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며, 이는 우리 생활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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