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시대의 쌍두마차로 평가받고 있는 방송과 통신의 「진검 승부」가 구체화되고 있다.
90년대 초 정보통신 대국인 미국을 중심으로 불어오던 방송과 통신업계간 신경전이 이제 점차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샅바싸움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국내의 경우도 서서히 이같은 양상이 펼쳐지고 있다.
아직까지는 한마디로 기세싸움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는 정도지만 멀티미디어시대가 단순한 밑그림에서 점차 현실화할 경우 양측은 물고 물리는 대접전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21세기 멀티미디어시대에는 서로가 상대의 영역을 노리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미래학자들이 분석하는 21세기 멀티미디어시대는 이제까지 서로의 영역만 지켜왔던 관례가 무너지는 것으로 압축되고 있다. 멀티미디어의 3대 축인 음성과 영상, 데이터들이 정보통신 기술발전에 따라 한묶음으로 가입자들에게 제공되는 원스톱서비스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이이 따라 양측은 상대의 영역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고 그동안에도 물밑조사작업과 실질투자를 꾸준히 벌여온 것이 사실이다.
먼저 미국의 경우를 살펴보면 전화, 케이블, TV산업의 완전한 융합을 꿈꾸며 사업자간 실질적인 움직임이 전개되고 있다. 비록 90년 초에 예상했던 「방송과 통신의 완전한 융합」이란 수렴이론이 다소 기세가 꺾였지만 수렴이론이 멀티미디어시대의 대세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미국은 지난 96년까지만 해도 방송과 통신업계 모두 상대의 영역에 먼저 진출하기 위해 의욕적인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지만 지금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의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우선 자체영역을 공고히 하고 상대영역에 진출한다는 것이 최근의 흐름이다. 그러나 1보 후퇴의 목적이 상대영역에의 진출을 염두에 두고 있어 양측의 접전이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는 예측할 수 없다.
이같은 경향은 지역전화사업자들의 움직임에서 먼저 포착되고 있다.
96년까지만 해도 미국내 지역전화사업자들인 베이비 벨사들은 방송과 통신의 융합에 대비하기 위해 영상전송사업 진출을 구체화했었다. 이를 위해 베이비 벨사들은 광대역망과 대규모 가입자를 확보한 케이블서비스 업체들과의 접촉을 강화했고 이들간의 M&A는 미국내 미디어업계의 화두로 등장했었다.
그러나 97년들어 베이비 벨사들은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한 케이블산업과의 전략적 동맹을 일단 미뤄놓은 상태. 그 대신 자신들간의 합병을 강화하고 있다. 댈러스 지역의 SBC와 서부지역의 통신사업자인 팩텔사의 결합, 벨애틀랜틱과 나이넥스의 합병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M&A의 주역들은 무선케이블TV사업의 철회, 케이블TV서비스 회사의 매각, 양방향TV 네트워크의 매각 등을 추진했다.
통신영역진출과 관련해 케이블TV계의 선두주자인 타임워너도 보조를 같이했다.
올랜도에서 실시한 풀서비스 네트워크(FSN)는 가장 야심찬 양방향 TV실험이었으나 기술이 뛰따르지 못한데다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96년 여름 이를 완전히 취소했다.
그러나 주목되는 것인 타임워너나 TCI 등 케이블서비스업체들이 인터넷 등 부분적인 통신영역 진출은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통신사업자들도 여전히 영상전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미국의 방송과 통신사업 전개가 원래의 분리된 형태를 계속 유지하면서도 물밑에서는 상호영역진출에 대한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하고 있는 것이다.
벨애틀랜틱의 한 관계자는 『결국 기술은 발전할 것이고 각 사업자들은 여전히 텔레커뮤니케이션, 정보서비스, 오락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원스톱서비스 공급자가 되려는 야망을 가질 것』이라고 전제하며 『이 때문에 영상전송분야는 계속적인 관심과 투자가 이뤄질 분야』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술이 마침내 전화산업과 케이블을 경쟁할 수 있게 할 만큼 발전하고 시장분할에 대한 위협이 다시 등장할 때 방송과 통신은 드디어 융합의 길을 걸을 것이라는 데는 전문가들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96년 이후 방송과 통신의 융합이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되면서 급속히 진전되는 양상이다.
최근들어 통신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통신산업계의 움직임이 다소 주춤하는 양상이지만 케이블업계의 움직임은 본격화하고 있다.
먼저 통신업계의 방송진출은 한국통신으로 대별되고 있다.
원스톱서비스 공급자로의 도약을 꿈꾸며 「SWAN2 프로젝트」를 발표하기도 했던 한국통신은 최근 민영화과정에서 기간통신사업 이외의 프로젝트를 축소시켜 나가고 있다. SWAN2 프로젝트의 일시유보 및 케이블TV 전송망사업의 축소를 추진했다.
그러나 99년 이후 이의 재활성화를 추진할 계획이며 멀티미디어 콘텐츠 확보를 위한 위성방송 등 방송산업 진출은 계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한국통신과는 달리 SK텔레콤과 데이콤 등 민간통신사업자들은 방송산업 진출을 구체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SK텔레콤은 무선케이블TV 기술을 통해 케이블TV 전송망사업에 뛰어들었으며 그룹계열사를 통해 케이블TV 프로그램 공급사업에 진출한 상태이다.
데이콤 역시 위성을 통한 방송 및 부가통신서비스 제공을 위해 지난해 DSM이란 자회사를 설립했으며 무선케이블TV망 구축을 통한 부가통신시장 선점전략도 구체화하고 있다.
방송계의 대응전략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케이블TV산업의 부가통신전략이 우선 손꼽힌다.
한국전력망을 활용하고 있는 케이블TV 종합유선방송국(SO)이 먼저 두루넷과의 연계를 통한 인터넷 및 양방향 게임, 교육정보화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
한국통신의 케이블TV 전송망을 활용하고 있는 SO들도 기존망 기술하에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에 자체 유선망을 확보하고 있는 중계유선방송사업자들도 인터넷 사용서비스를 올해 중 대거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지상파방송 및 위성방송사업자들도 법제도만 신속히 보완될 경우 통신사업 진출 움직임을 구체화한다는 계획이다.
인터넷방송, FM다중방송을 통한 부가통신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지상파 방송사업자들은 통신사업진출을 장기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동시에 앞으로 디지털 위성방송, 디지털 지상파방송 기술이 접목될 경우 통신사업을 방송사업과 연계시켜 본격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방송과 통신의 차세대 미디어전쟁은 기술발전과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중론이다.
광대역망을 확보한 케이블 서비스업자들에서는 양방향 기술의 구현이 관건이며 협대역망을 확보한 전화사업자들의 경우는 콘텐츠 확보 및 광대역화가 핵심이다. 또한 상호영역 진출을 위한 규모의 경제 실현도 승패를 결정짓는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원스톱서비스 공급자로의 발돋움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본력과 기술력이 관건이어서 이에 대한 이니셔티브를 쥐지 못한다면 방송사업자건 통신사업자간 차세대 미디어전쟁의 종속변수로 전락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다.
【장길수·조시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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