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I-전자산업 10대 이슈] 반도체 먹구름 걷히나

국제통화기금(IMF)사태가 돌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반도체 업계의 98년 시장 전망은 대체로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국내외 메모리 반도체 업계를 약 2년여간 압박해온 메모리 반도체 가격급락현상이 회복 국면으로 접어들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다 반도체 수요가 늘어날 만한 호재들이 상당부분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각 반도체 전문 시장 조사기관들이 내놓는 예상 수치들도 이같은 국내 반도체 업계의 희망적 전망을 강력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반도체부문의 전문 시장조사 단체인 ICEC(Intergrated Circuit Engineering Corporation)가 최근 발표한 「MOS 메모리 시장 전망」은 국내 반도체산업이 제2의 호황을 기대할 만한 전망치를 내놓고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시장이 올해를 기점으로 오는 2002년까지 매년 20% 이상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게 이 자료의 요지.

특히 국내 반도체업계의 주력 제품인 D램 분야는 급속한 가격 하락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고성능화와 인터넷 등 네트워크의 급속한 보급에 힘입어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우선 ICEC는 세계 MOS 메모리 시장규모가 96년 33%, 97년 -14% 등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 98년부터 오는 2002년까지 매년 22~32%의 고성장을 거듭할 것으로 진단하고 있다.

메모리시장의 이같은 성장에 힘입어 세계 전체 반도체시장에서 메모리 제품이 차지하는 비중도 97년 25%에서 오는 2002년까지 30% 정도로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특히 국내 반도체업계의 주력 상품인 D램시장의 경우 97년 2백14억8천5백만달러 규모에서 98년 2백77억5천만달러로 30% 가까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ICEC는 국내 반도체산업 경기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D램 가격과 관련해 더욱 희망적인 관측을 내놓고 있다.

우선 주력 상품인 16MD램의 경우 최근 현물시장 가격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평균 가격이 98년 6달러51센트, 99년 5달러80센트, 2000년 5달러25센트로 안정화할 것으로 예측했다.

64MD램은 반도체업체의 양산과 세대교체 추진에 따라 98년 26달러에서 99년 16달러, 2000년 10달러, 2002년 6달러75센트로 시장 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반도체경기 선행지표인 세계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가동률이 호전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도 반도체 업계로서는 반가운 소식이다.

이같은 지표들은 무엇보다도 반도체 산업의 회생을 위한 외적 요인은 충분하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전망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대만 등 후발국들이 국내 반도체업체들의 아성으로 굳어진 D램 시장에 눈독을 들이면서 시장 자체의 공급 제어력이 상실된 것이 첫 번째 변수다. 업체간 합의에 의해 공급량을 조절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는 의미다.

이는 지난해보다 더 심각한 저가 경쟁의 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미 2년전부터 미국의 마이크론사와의 저가 경쟁으로 힘이 빠질대로 빠진 상황에서 적자를 감수하며 대량 물량작전에 나서는 대만업체의 공세를 어느 선에서 방어하느냐가 국내 반도체 산업의 사활을 가름하는 선택이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 국내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16MD램 가격의 바닥이 어느 선에서 형성될 것인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 하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는 문제가 64MD램으로의 세대 교체 속도.

이미 16MD램 장비에 대한 감가상각이 거의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는 메이저 업체들이 후발 업체들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64MD 램으로의 조기 세대 교체를 단행할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와 NEC등 64MD램 생산시설 투자를 주도했던 일부 업체들에서는 벌써부터 이같은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어 주목된다.

이와 관련, 국내 반도체 시장 전문조사업체인 세미피아컨설팅그룹의 황대욱 사장은 『98년 세계 반도체시장은 장기적으로 64M제품의 양산 기술을 확보한 소수의 선두업체들이 물량공세에 나설 것으로 예상되며 이에 따라 상당수 후발업체들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상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일본의 NEC를 비롯한 선두업체들이 98년 초부터 64MD램 제품을 한꺼번에 방출, 16MD램의 시장거래가격을 완전히 떨어뜨리는 전략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이럴 경우, 64MD램 시장에 아직까지 진입하지 못한 업체와 제품 소형화(슈링크)기술을 원만히 진행시키지 못한 기업들은 메모리시장에서 완전히 탈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특히 16MD램의 가격이 하락하고 있는 현상이 지속될 경우, 이같은 세대 교체 추진은 훨씬 앞당겨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되지 않고 있다.

98년 메모리반도체 시장에서 예상되는 또하나의 흐름은 대부분의 공급업체들이 비교적 가격이 높은 싱크로너스 D램의 생산 비중을 키울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PC의 멀티미디어화와 새로운 운용체계의 등장으로 고속 메모리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DDR SD램이나 램버스D램 등의 신규격 고속 메모리 제품이 업계 표준으로 채택되는 움직임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 경우 역시, 벌써부터 투자를 선행한 분야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전반적인 판세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조건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반도체 업체들이 98년도 사업에 불안감을 나타내고 있는 것은 IMF 사태로 예상되는 투자 분위기 냉각이다.

원화가치 절하에 따르는 투자비 부담 확대, 국가 및 기업의 국제 신용도 하락, IMF의 긴축 요구 등으로 사실상 시설투자의 70% 이상이 소요되는 외국 자본 차입이 불투명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반도체 3사가 올해 설비 투자 규모를 동결 내지는 감축키로 내부 방침을 결정한 것이 국내 반도체 산업을 위기로 몰고갈 지도 모른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 미국 IBM사와 손잡고 제4의 한국 반도체사업의 추진해온 동부그룹의 진입 성공 여부와 반도체 일관가공(FAB)사업에 뛰어든 아남산업의 행보가 관련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러 가지 불안 요인에도 불구하고 98년과 99년의 국내 반도체 산업은 지난 2년에 비해 훨씬 높은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 확실하다고 반도체 업계는 입을 모은다.

문제는 차세대 제품인 2백56MD램 이후의 시장에 대비한 시설 투자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할 경우,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세계 시장에서의 입지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최근의 반도체 산업 위기가 반도체 산업 자체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은 극히 다행스런 부분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국내 D램 산업은 시장 측면이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적정 수준의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분야이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국가 신용도가 회복될 경우, 급속히 제자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998년은 그런 의미에서 한국 수출산업의 얼굴로 자리매김해온 반도체 산업에 시련과 기회를 동시에 가져다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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