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I-전자산업 10대 이슈] 수출만이 살 길이다

「살 길은 수출밖에 없다.」

국제통화기금(IMF)한파와 유례없는 환율급등으로 내수시장 침체가 예상되는 새해를 맞는 전자, 정보통신업계의 화두다. 전자, 정보통신업계는 올해 내수를 최악으로 보고 수출에 총력을 기울일 태세다.

올해 사업전략의 첫머리를 아예 「수출 40% 확대」 「수출 생존전략」으로 잡은 업체도 있다. 수출확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의 과제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은 앞으로 5년내 생산제품의 50%를 수출하지 않는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는 시장이 좁아 세계를 상대로 개방을 강조해야 하는 입장이고 국내에서도 해외기업들과 동일한 조건에서 경쟁을 하는 것이 불가피한 만큼 생산제품의 절반정도를 해외시장에서 소화해 체력을 유지하지 못하면 패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수출은 우리나라 최대의 외화획득 수단이자 경제의 근간이다. 특히 전자, 정보통신산업 자체가 수출을 전제로 발전됐기 때문에 대외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반도체 등 주력산업에서 수출이 안되면 당장 산업활동이 위축되고 이는 경제위기로 이어지는 것이다. 반도체 수출이 위축됐던 지난해 이미 경험했던 사항이다. 그만큼 경제위기의 돌파구는 수출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는 튼튼한 수출기반을 가지고 있고 올해 해외시장 전망도 좋은 편이다. 무엇보다 가격하락으로 고전해왔던 반도체 수출이 16MD램과 64MD램의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활기를 띠고 있다. 세계적으로 제2의 반도체 호황기가 예상되는 가운데 올 3∼4월부터는 본격적인 수요진작과 함께 수출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리 기업들의 반도체에 대한 연구개발(R&D)투자도 매출액의 13%로 선진국의 10% 미만에 비해 높은 수준이어서 기술우위 확보를 낙관하고 있다.

각 경제연구기관이 제시하는 수출전망도 밝다. 산업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IMF 자금지원 하의 산업별 영향과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자, 정보통신 수출은 환율급등과 반도체 수출 증가에 힘입어 지난해에 비해 증가율이 다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반도체는 수출증가율이 지난해 1.3%에서 올해 19.8%로 크게 높아지고 가전제품은 지난해 마이너스 14.7%에서 1.0% 증가세로 반전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밖에 일반 전자부품과 통신기기, 컴퓨터 등도 증가율이 다소 둔화될 뿐 10∼16% 증가세는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한국무역협회도 「98년 무역환경과 수출입 전망」에서 올해 수출이 전년보다 5.3% 증가하는 반면 수입은 1.7% 감소해 수출입규모가 비슷한 수준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백억달러의 무역수지가 개선된 데 이어 올해에도 90억달러 정도 개선돼 89년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한 이후 9년 만에 무역적자국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보고서는 수출의 경우 환율상승에 따라 가격경쟁력이 급속히 개선되는데도 무역금융경색과 일본 및 동남아시장의 경기둔화로 큰 폭의 수출증가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했다.

전자, 정보통신 제품 가운데 가장 높은 수출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반도체는 올해 두자릿수 성장세가 확실한 상태다. 올 1, Mbps분기에 16MD램에서 64MD램으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져 반도체의 평균 수출단가가 높아지고 반도체 자체 수요도 크게 늘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또 아남산업의 디지털신호처리(DSP)칩 일관공정이 가동돼 전량 미국으로 수출되고 있는 것도 수출증대의 한 요인이다. 반도체 수요의 경기사이클도 상승곡선에 들어선 상태다. 구조적으로는 공급초과 상태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수요확대로 인해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반도체 수출은 가격경쟁력에서 결정된다고 할 정도로 경쟁이 치열한 제품이다. 따라서 우리업계가 원화의 가치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요인을 어느 정도 활용하느냐가 수출확대의 관건이 될 수 있다. 또 투자위축으로 99년 이후 맞게 될 호황기를 놓치지 않도록 정부와 금융기관의 지속적인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IMF의 입김에 의해 정부의 반도체 관련 지원시책이 축소되거나 폐지돼서는 안된다는 것이 업계의 입장이다.

컴퓨터 수출환경도 밝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 컴퓨터 및 주변기기 시장이 회복기에 들어선데다 중반기 윈도98의 출시로 고급기종을 중심으로 신규 및 대체수요가 일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컴퓨터의 수출지역도 외환위기를 겪고 있는 동남아의 경우 다소 부진세를 나타내지만 우리나라 컴퓨터 총수출의 70%를 차지하는 미국과 EU는 원화가치 하락에 따른 가격경쟁력 향상으로 노트북PC를 중심으로 한 수출확대가 기대되고 있다. 특히 대용량 HDD, 모니터, 프린터 등 주변기기 수출도 늘어 전년대비 20%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 전자부품은 세계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세와 미국, EU 등 선진국의 정보산업 관련 수요확대로 인해 지속적으로 증대할 전망이다. 저항기, 스위치 등 노동집약적인 수동 및 기구부품들은 중국 등 후발경쟁국들이 저가제품에서 고급제품에 이르기까지 생산을 확대함에 따라 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따라서 일반 전자부품업체들이 대외경쟁력을 어느 정도 높이느냐가 수출확대의 관건이다. 그런 만큼 해외 전자산업에 대한 조사활동을 강화해 품목별 시장정보를 정확히 파악, 해외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정보를 바탕으로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글로벌 경영을 확대하고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호협력을 강화해야 함은 물론이다.

가전부문의 수출전망은 그리 밝지만은 않다. 컬러TV, VCR 등 수출 주력상품의 해외생산체제가 갖추어졌기 때문에 원화의 평가절하에도 불구하고 수출확대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해외생산 비중이 아직 낮고 전체 가전제품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로 확대된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백색가전제품은 업체들의 신시장 개척전략에 힘입어 호조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가전부문 수출확대의 관건은 무엇보다 디지털 제품에 대한 상품화다. 현재 세계적으로 디지털제품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기 때문이다.

통신기기 부문은 낙관적이다. 세계무역기구(WTO) 기본통신협정 및 정보기술협정(ITA) 발효로 세계시장이 개방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원화의 평가절하에 따른 우리 제품의 가격경쟁력 강화가 강점으로 작용할 게 분명하다. 내수시장 침체에 따라 업체들도 기술력과 가격경쟁력을 강점으로 해외시장 공략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우리나라가 세계처음으로 상용화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시스템이 세계 곳곳으로 수출되는 등 수출 유망품목으로 부상하고 있다.

물론 악재도 많다. 동남아 및 러시아의 경제침체로 이들 국가에 주로 수출돼온 전전자교환기는 수출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통신부문은 산업에 미치는 중요성이 클 뿐 아니라 개발에 막대한 투자가 요구되고 있어 우리나라가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

전자, 정보통신의 수출은 그동안 성장을 거듭하면서 우리 경제를 지탱하는 기둥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성장 일변도의 수출확대는 저부가제품 수출 중심, 지역편중, 핵심부품의 수입의존, 글로벌 마케팅능력 부족 등 구조적인 문제점을 만들어낸 것도 부인할 수 없다. 따라서 21세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출구조를 근본부터 뜯어 고치는 일대 변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우리나라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수출구조는 일본과 달리 특정상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그것도 여전히 범용상품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한국무역협회가 최근 한, 일 10대 수출상품을 비교 분석한 결과 대표적 수출상품인 반도체의 경우 우리나라는 메모리가 90%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고부가가치제품인 비메모리가 60%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컴퓨터의 경우 우리나라는 모니터 등 입, 출력장치가 80%를 차지한 반면 일본은 입, 출력장치(42%)외에 고부가가치 품목인 기억장치(33%), 휴대형컴퓨터(12%) 등이 고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해외시장에서 한국상품이 품질에서는 미국, 유럽, 일본 등에 밀리고, 가격에서는 중국 등 후발개도국에 추격을 당해 설자리를 점점 잃고 있는 것도 문제다. 한국무역협회 뉴욕지부가 최근 미국 현지 바이어 3백5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상품의 인지도 및 경쟁력조사에서도 한국상품은 일본에 대해서는 품질에서, 멕시코, 중국에 대해서는 가격에서 각각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같은 샌드위치 신세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수출품목과 수출산업의 저변의 확대가 시급히 요청되고 있다.

반도체 등 수출 주력품목은 해외경기나 수급동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고 이같은 간판품목 위주의 수출전략은 흔히 선진국과 통상마찰을 일으키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다품종 소량체제로 수출전선을 재정비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민화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IMF 구제금융 신청 이후 한국 경제성장의 신화는 끝났다는 패배주의가 우리나라 전체에 퍼지고 있으나 혼돈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생기듯 현 상황이 오히려 21세기 선진 한국을 위한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자, 정보통신제품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우수한 제품을 개발하거나 해외 마케팅능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수출업체들의 생명선인 자금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땅에 떨어진 국가신뢰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 공통된 지적이다.

【김병억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