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특집I-전자산업 10대 이슈] 「노아의 방주」를 띄워라

98년은 전자, 정보통신업계에 선택과 결단의 해다. 강도 높은 긴축과 구조조정을 축으로 하는 국제통화기금(IMF)식 위기관리의 충격과 고통을 이겨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회원국답게 세계 전자, 정보통신 대국으로 도약하느냐, 아니면 충격을 감내하지 못해 주저앉느냐하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 전자, 정보통신업계가 어떤 선택과 결단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IMF 권유 외에도 세계적 무한경쟁시대의 가속화로 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 국내 통신시장은 새해 사실상 완전 개방되는데다 국내 가전 및 산전업체들의 내수시장 보호막으로 여겨던 수입선다변화제도마저 조기 폐지될 조짐이다. 금융구조 개편과 함께 기업 경영환경이나 금융 전산환경도 급격히 변할 것으로 예측된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이 세계 전자상거래시장의 주도권 잡기에 나서면서 통상압력까지 거세질 것으로 예상되고 세계적인 전자업체들간 반도체시장 선점경쟁과 차세대 미디어개발 경쟁도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휴대통신시대 개막에 이어 이동컴퓨팅시대가 도래할 것이란 낙관적인 전망이 있기도 하다.

전체적인 분위기가 이렇다보니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계의 경영 청사진도 푸른 빛이 돌지 않고 다소 잿빛이다. 사업 계획도 호황기 때의 야심찬 투자나 공격 경영과는 거리가 있다. 하나같이 사업 구조 혁신과 견실경영을 사업기조로 책정해 놓고 있다.

새해를 맞는 전자, 정보통신업계는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분위기다. 총체적 난국을 헤쳐나갈 대안으로 여러가지 있지만 모두들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여기에 「한강의 기적」을 낳게한 원동력이었던 「하면 된다」는 도전 의지로 가득차 있고 또 헌신적인 고통분담까지 마다하지 않는 양상이다.

「하면된다」는 도전의지는 수출 총력체제에 집결시키고 있으며 헌신적인 고통분담은 거품빼기로 이어지고 있다. 거품빼기는 IMF한파가 몰고온 자금난, 실적악화, 구조조정 압력, 경영체제 개편 등 4중고를 넘기 위한 것인 만큼 강도가 어느 때보다도 높다.

감량을 기조로 한 구조조정은 전체적으로 볼 때 산업의 구조고도화와 직결되고 있다. 이 문제는 특정 기업의 문제라기 보다 우리나라 전자, 정보통신산업 전체에 해당하는 문제이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내놓은 「국내 전자산업의 구조 고도화」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전자산업에서 하이테크 분야의 비중은 경쟁국에 비해 턱없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전자산업조사기관인 EAT사의 분석 자료를 보면 96년말 현재 세계 전자산업의 분야별 생산비중은 컴퓨터 30%, 통신기기 21%, 전자응용기기 13% 등 산업용 전자기기 비중이 64%에 달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자기기 생산비중은 29%로 세계 평균에 크게 뒤처지고 있다. 미국(73%), 일본(56%), 싱가포르(62%), 대만(68%)과의 격차도 뚜렷하다. 특히 생산 비중이 16%에 불과한 컴퓨터 산업은 모니터 등 주변기기가 80%이상 차지하고 있다. 반면 칩세트 마더보드 등 핵심부품 생산 비중은 극도로 취약해 시너지 효과를 전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점차 시장 규모가 줄고 있는 가전기기 생산 비중은 우리나라가 18%로 세계 평균(8%)뿐 아니라 2∼8% 수준인 선진국에 비해서도 2배 가까이 높다. 게다가 국내업체들이 최근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는 통신기기와 정보가전분야도 부품 국산화율이 갈수록 낮아져 로열티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만큼 한계사업 철수가 시급하고 고부가가치 제품으로의 사업구조를 재편해야한는 실정이다.특히 이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 제고와 생존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전자, 정보통신업계는 현재의 금융위기가 실물경제까지 파급될 것으로 예상, 중저가 절약형 제품개발, 모델 수 단순화와 함께 부진사업 철수를 가속화한다는 계획이다. 또 인력, 투자, 경비 등을 축소하고 수출부문과 해외경영에 총력을 다한다는 전략이다. 첨단 고부가가치 제품은 국내에서, 범용제품은 해외에서 생산하는 이원화 전략을 적극 추진할 태세다.

올해는 민간 부문의 소비가 둔화될 것이 분명하다는 판단에 따라 한계 사업의 철수, 수출에의 사세 집중, 인력 및 조직 등 기업 지배구조의 개선 등 능동적인 사업구조 조정 이외에도 외국자본 유입에 따른 적대적 기업인수, 합병 등과 같은 외적인 요인에 의한 산업 전체의 새판짜기 바람이 한바탕 밀어 닦칠 전망이다.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앞다퉈 참여했던 이동통신사업을 비롯한 통신부문에서도 인수합병(M&A)바람이 불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던 정보통신 시장도 공공 및 민간부문의 정보화 관련 투자가 위축되면서 컴퓨터와 SI, SW업계간 사업 구조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확장일로에 있던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계는 기업의 분할 매각, 부실기업의 도산, 국내, 외 기업간 M&A 등 적극적인 구조조정에 대비한 움직임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는 한계사업 철수, 핵심분야 집중이라는 큰틀 아래서 업체간의 우호적인 협력이 점쳐지고 있다. 특히 황금알에 비유돼 국내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진출한 통신분야는 국내 기업간 우호적인 M&A는 물론 외국통신업체들의 적대적 M&A의 표적이돼 그 어느 부문보다도 구조조정의 태풍에 휘말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자금조달을 마치고 해외공장 건설에 나서고 있는 반도체업계는 비메모리 분야로의 사업전환이 불가피하다. 여기에 현지 생산의 강화, 조직슬림화 등도 필요한 상태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내 반도체업계는 공급 과잉으로 인한 가격하락과 IMF긴급자금지원 여파로 인한 설비투자 축소가 불가피하다. 때문에 반도체업계의 자구 노력은 어느 업계보다 강할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는 특히 자동차와 더불어 미국과 일본의 견제가 가장 심한 산업이어서 이를 피하는 형태로 재편이 이루어질 것이라는게 업계의 공통된 분석이다.

긴축재정에 따른 민간부문의 수요 둔화로 상당한 고전이 예상되고 있는 가전업계는 내수부문보다는 해외 현지공장의 생산품목 조정과 권역별 생산체제 구축에 초점을 맞추어 경쟁력 우위기반 마련에 나서고 있다. 가전 3사를 중심으로 한 대기업들은 컬러TV, VCR,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전자레인지, 청소기 등 7대 제품을 제외한 소형가전 및 음향기기 사업 등 한계사업 정리를 본격화할 움직임이다.

IMF체제에서 이같은 구조조정은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계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측면에서 업계 모두가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업계는 향후 2~3년간이 국내 전자, 정보통신업계의 미래를 담보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작업이 성장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살아남는게 목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인력, 투자, 경비, 조직, 급여를 줄이는 소위 「5감」경영도 같은 맥락이다.

국내 경제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에 직면하면서 이같은 구조조정은 당연하다. 특히 그동안 외형상 매출 부풀리기에 급급해온 국내 기업들에게는 이러한 조치가 보다 실질적인 수익성 제고를 담보하고 있다는 점에서 위기에서 탈출할 경우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있는 회사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이같은 움직임이 IMF시대에 나타나는 소비침체, 투자축소와 함께 고환율, 고금리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시장 여건 악화로 인한 재고증가, 공급과잉 등에 따른 가동률 하락이 초래되고 이는 기업경영 악화로 이어져 국내외 기업간 인수 및 합병작업이 어느정도 시간을 두고 진행될 지가 관건이다. 현재의 급격한 경영환경 악화와 이로인한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은 자칫 우리나라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경쟁력을 무너뜨리는 악영향을 가져다 줄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따라서 개별 기업의 구조조정은 물론 국내 전자, 정보통신산업 전체의 재편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현재 강요되고 있는 구조조정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성장산업으로의 단순한 업종 변경만으로 진행돼서는 안되며 지금 영위하고 있는 업종에서 리엔지니어닝, 리스트럭처링 등 다양한 경영기법의 도입도 시도해볼만 하다.

구조조정은 이제 국내 전자정보통신업계의 운명을 좌우하는 바이블로 떠오르고 있다.

【정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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