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정한 암호는 특별한 사항이 아닌 바에야 쉽게 변경하지 않는다. 암호를 활용하는 곳이 많을수록 개인에게 그 암호는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현미는 그 동안 기억하고 있던 혜경의 생일 네 자리를 눌렀다.
딸깍.
그랬다. 혜경의 오피스텔은 그렇게 작은 소리 하나로 열렸다.
어쩔 것인가. 현미는 잠시 망설였다. 실내의 상황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일말의 불안감도 떨칠 수 없었다.
현미는 오피스텔의 문을 빠끔히 열었다.
뿌아아아아아- 소리였다.
통나무가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에 놀랐지만 그 소리는 이 방이 혜경의 방이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소리였다.
디주리두 소리.
지난 여름 호주를 방문하고 난 후 혜경은 하나의 테이프를 현미에게 들려주었다. 호주 원주민들의 소리라고 했다. 디주리두. 실제로 보진 못했지만 긴 통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것을 입술에 대고 분다는 악기 소리였다.
별 특별한 의미는 없었다. 현미는 그 소리를 처음 듣는 순간 별다른 느낌을 가지진 않았다. 하지만 혜경은 그 소리에 매우 심취되어 있었다. 디주리두 소리에 관련된 많은 사연이 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미는 그때 느낄 수 있었다.
혜경의 또다른 남자였다. 그때도 혜경은 승민과 교제를 하고 있던 때였다. 눈빛이 그랬다. 디주리두 소리를 들을 때마다 혜경의 눈빛이 흔들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뿌아아아아아- 디주리두 소리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현미는 현관문을 조금 더 열고 혜경씨, 하고 불러보았다. 여전히 인기척은 없다. 현미는 현관문을 조금 더 열고 실내로 들어섰다. 들어서면서 혜경씨, 혜경씨를 몇번 반복했지만 그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이미 현미는 알고 있었다.
독수리.
현미가 실내에서 처음으로 목격한 것은 독수리 그림이었다. 인간에게 불을 훔쳐다준 죄로 고통받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이 자라기를 기다리는 독수리 그림.
매우 컸다.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이 세밀하게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그 그림 밑에 자리한 촛불의 흔적이 그 독수리보다 더 먼저, 더 강하게 현미의 시선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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