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도전과 기술개발로 놀랄 만한 성과를 일궈낸 벤처 중소기업을 꼽는다면 반도체 장비업체인 주성엔지니어링(대표 황철주)이 그 대표적인 사례에 속할 것이다.
지난 93년 5월, ASM한국지사에 근무하던 황철주 사장은 창업자금 5천만원으로 당시 대기업들조차 엄두를 못내던 반도체용 전공정 장비 시장에 뛰어들었다.
세계적인 장비업체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무기로 대부분의 전공정 장비 시장을 석권하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자본금 5천만원의 중소업체가 이 시장에 과감히 도전장을 낸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모험 그 자체였다.
『사실, 처음 회사를 설립하고 전공정 장비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주위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더군요.』
하지만 황 사장은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한 회사를 불과 창업 4년만에 자본금 11억원, 매출액 4백50억원, 연건평 8백여평 규모에 종업원 1백여명이 일하는 견실한 중소업체로 성장시켰다.
이러한 주성의 저돌적인 도전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황 사장을 필두로 한 이 회사 연구인력들의 끈질긴 개발노력 때문이지만 삼성전자와 같은 국내 소자 업체들의 전폭적인 기술지원도 큰 몫을 담당했다.
그리고 자본이 모자라 개발비가 부족할 때 아무런 조건없이 돈을 빌려주고 수시로 해외 시장동향과 외국 기술 정보를 일깨워준 동종업계 선배들의 따뜻한 배려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고마움이라고 황 사장은 회고한다.
이러한 각고의 노력 끝에 주성은 창업 3년만인 지난해 「유레카2000」이라는 이름의 저압화학증착장비(LPCVD)를 선보인다.
웨이퍼를 낱장 처리하는 매엽방식의 이 장비는 온벽(Warm Wall)타입의 체임버와 저항가열방식의 기판을 이용, 웨이퍼에 폴리실리콘 또는 나이트라이드 등과 같은 각종 화학물질을 증착시키는 반도체 제조용 전공정 장비다.
그동안 국내 반도체 장비업체들 가운데 대부분이 후공정 분야에 국한돼 있던 상황속에서 조그만 한 중소업체가 장비 가격만도 30억원을 호가하는 전공정용 핵심장비를 개발했다는 사실은 한마디로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주성은 장비개발과는 다른 또 하나의 벽을 넘어야만 했다. 반도체장비는 개발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만들어진 장비가 소자업체의 성능시험을 거쳐 실제 양산라인에 채택되느냐가 성공여부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국내 장비업체들이 전공정 분야에 도전해 결정적인 좌절을 겪게 되는 것도 연구용에서 양산용 제품으로 옮겨가는 바로 이 과정에서였다.
그래서 주성이 장비를 개발하고 최초로 삼성전자에 이를 시험공급했을 때만해도 과연 국산 전공정 장비가 양산라인에 채택될 수 있을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유레카2000」의 양산 시험 결과는 기대 이상의 대성공을 거뒀다.
주성이 개발한 장비는 삼성전자에 이어 곧바로 LG반도체와 현대전자의 양산라인에도 채택되기 시작했고 최근 대만 소자 업체에 수출까지 했다.
CVD나 에처와 같은 반도체 전공정용 핵심장비 분야에서 국내 업체가 개발한 제품 가운데 연구용이 아닌 양산용으로 채택된 사례는 주성의 「유레카2000」이 처음이다.
더욱이 제품출시 1년만에 ASM, 고쿠사이, 어넬바 등과 같은 세계 유명 LPCVD 생산업체들을 제치고 이 분야 국내 수요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다른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유레카2000」을 새로운 반도체 증착 형태인 반구형 결정 실리콘(HSG:Hemi Spherical Grain)방식에 대응토록 한 것이 국내는 물론 해외시장 선점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커패시터(Capacitor) 내의 폴리실리콘막(전극)을 돌기 형태로 만들어 주는 HSG방식 증착 공정은 기존의 평탄화된 상태보다 고유전체의 주입면적을 최대화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어 최근 들어 이러한 HSG 공정 도입 사례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주성의 「유레카2000」은 국경을 넘어 해외시장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지난 10월 대만지역 M소자업체에 3백만달러어치 상당의 LPCVD 장비를 수출한 데 이어 오는 연말에는 삼성전자 오스틴 공장과 LG반도체 영국 공장에도 장비를 공급한다.
또한 내년까지 대만지역에 총 5천만달러어치 이상의 장비를 추가 수출키로 잠정 합의했고 국내 소자업체의 미국 및 유럽 공장 추가 제품공급도 현재 추진중이다.
이를 통해 주성은 내년부터 수출을 통한 매출비중을 내수보다 더 크게 할 방침이다.
이러한 LPCVD 분야에서의 시장 성공은 곧바로 회사 매출로 이어졌다. 4억∼5억원 수준이던 주성의 매출은 「유레카2000」을 개발한 지난해 83억원에 이어 올해는 4백50억원을 바라보게 됐다. 1년만에 매출이 5배 이상 늘어난 셈이다.
그 결과, 지난 6월에는 수원 아파트형 공장에서 나와 경기도 광주군에 사무실과 공장을 새로 지어 회사를 옮겼다. 또 내년에는 광주공장 인근 1천평 부지에 50억원을 투자해 제2공장도 건설할 계획이다.
향후 목표도 야심차다. 수출이 본격화하는 내년에는 1천4백억원 매출을 올리고 오는 2001년에는 1조5천억원(15억달러)을 달성, 세계 10위의 반도체 장비 업체로 발돋움한다는 것이 주성의 계획이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반도체용 전공정 시장은 제조공정의 흐름을 정확히 예측하고 이에 필요한 제품을 가장 알맞은 시기에 개발,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경쟁사들보다 뒤처지거나 앞서도 곤란한 것이 이 분야 시장의 특성입니다.』
이러한 황 사장의 말처럼 반도체 장비 시장 가운데 특히 전공정 분야는 소자 생산업체의 빠른 공정 변화에 대응하는 업체만이 살아 남는다.
주성엔지니어링이 현재와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반도체 시장 특성을 십분 활용했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같은 특성은 향후의 조그만 실수나 방심이 그동안 주성이 일궈낸 나름의 성과들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주성은 현재의 성공에 만족하지 않고 과거보다 더 많은 준비를 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년까지 플라즈마화학증착장비(PECVD)와 유기금속화학증착장비(MOCVD)를 개발, 양산용으로 선보일 계획이다. 그리고 3백㎜ 웨이퍼용 LPCVD 장비의 개발도 현재 추진중이다.
화학증착장비(CVD) 전문 업체로 오는 2001년까지 세계 10위의 반도체 장비 업체에 진입하겠다는 주성의 목표가 그리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단 한번 반짝하고 마는 별이 아니라 널리 두루 빛나는 진정한 周星으로 올라서기 위한 주성엔지니어링의 힘찬 발걸음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주상돈 기자>
주성엔지니어링이 걸어온 길
93년 5월 회사설립
95년 6월 수원시 팔달구 아파트형 공장 입주
96년 6월 삼성전자와 장비 공동개발 협약
96년 10월 HSG 공정용 LPCVD 개발
96년 12월 양산용 장비 개발완료
97년 6월 경기도 광주 신공장 완공
97년 8월 고유전막 CVD 개발
97년 9월 3백㎜ 웨이퍼 장비용 체임버 개발
97년 10월 미국 오스틴에 지점 설립
[인터뷰] 주성엔지니어링 황철주 사장
『국내 중소 업체가 반도체 전공정 분야에 도전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라는게 제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도체 전공장 분야 만큼은 막강한 자본력을 지닌 외국 업체들의 독무대로 여겨왔다. 엄청난 개발비 부담과 사업 성공 확률을 따져본다면 그리 틀린 생각만은 아니다.
하지만 주성엔지니어링을 이끄는 황철주 사장의 생각은 이와 사뭇 다르다.
『막상 이 분야에 뛰어들어 보니 생각한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났습니다. 대부분의 관련 기술들이 이미 규격화되어있고 국내 소자업체가 지닌 공정 기술의 노하우도 세계적인 수준이었습니다. 이 두가지가 많은 힘이되었지요』
도전을 해보기도 전에 생각만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포기해 버리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경계해야할 가장 무서운 적이라는게 황사장의 생각이다. 주성엔지니어링이 세계적인 다른 장비 업체들보다 한 발 앞서 HSG 공정용 LPCVD를 개발하고 이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도전 정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짐작케 한다.
그래서 황사장은 앞으로 화학증착장비(CVD) 분야에 끊임없이 도전해볼 생각이다.
『반도체 제조 공정은 빠르게 변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핵심 장비를 만들어야 하는 우리가 이러한 시장 변화에 따라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곧 도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황사장의 말처럼 주성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끝없는 도전을 회사가 살아 남을 수 있은 유일한 생존 수단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주성과 같은 회사를 벤처기업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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