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선다변화조치의 조기 폐지 문제가 판매부진 및 한계사업 정리 등으로 뒤숭숭한 가전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지금까지 국제통화기금(IMF)의 수입선다변화조치 조기 폐지 요구를 정부가 수용했다는 소식 외에는 그 시기나 폐지 폭에 대한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고 있어 가전업계는 구체적인 대응방안도 마련하지 못한 채 상황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오는 99년 말까지 단계적으로 수입선다변화조치를 폐지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국내 가전업계가 대응해왔기 때문에 큰 피해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수입선다변화 대상품목 중 핵심이 대부분 일반가전제품이며 국내 가전업계가 주도적으로 육성하고 있는 제품이라는 점에서 업계가 받는 타격이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수입선다변화조치의 조기 폐지가 가시화할 경우 가장 큰 피해가 우려되는 품목은 TV, 오디오 등 AV제품과 중견전문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는 소형가전제품. 올 상반기 미국에서 생산된 소니TV가 대량수입돼 국내 시장을 뒤흔들어놓았다는 사실은 이를 입증해주는 좋은 사례다. 국내 소비자들 대부분이 일본산 TV나 캠코더, 오디오 제품을 선호, 일본산 제품이 비관세로 대거 유입돼 국산제품과 비슷한 가격에 판매된다면 29인치 이상 대형TV시장에서 국산제품의 입지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실판매의 최일선에 있는 유통점들이 자신들의 유통력을 키우기 위해 앞다퉈 이들 일산 제품을 취급할 것으로 예상돼 현재 불법 유입돼 판매되고 있는 대형 일본산TV의 시장점유율은 단기간에 10%를 웃돌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전망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3사가 더욱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품목은 내년부터 시장이 형성될 것으로 예상되는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 업계 일각에서는 소프트웨어 공급이 달려 하드웨어업체들이 제대로 판촉조차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 소프트웨어가 공급되면 단기적으로는 시장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다소 희망적인 의견도 제시하고 있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는 국내 DVD산업의 싹을 잘라버리는 등 그 어느 제품보다 큰 타격이 우려되고 있다.
국내 DVD시장이 활성화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로 10개에 불과한 소프트웨어 부족 문제가 꼽히고 있지만 일본의 경우 이미 수백개의 소프트웨어가 나와 DVD산업의 확대를 부추기고 있다.
결국 일본 DVD소프트웨어가 대거 유입되고 이를 보기 위해 국내 소비자들이 일본산 DVD플레이어를 구입, 초기시장을 이들 일산제품이 장악할 것이 분명해 국내 DVD 관련 산업은 태동조차 어렵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들 대형제품 외에도 가전업계는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은 일본 조지루시나 마루가나, 타이거 등의 전기밥솥이 대거 유입되면 국산제품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처럼 수입선다변화조치의 조기 폐지는 가전산업 전반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지만 더 큰 문제는 수입선다변화 조기 폐지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야 할 것인지 정부 및 관련업계가 체계적인 대응책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이미 수입선다변화조치의 조기 폐지에 대해 IMF와 합의가 이루어졌다면 그 내용을 공개하고 국내 업계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업계에서는 정부로부터 공식적인 내용을 통보받지 못한 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내용을 취합해 대책마련에 부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IMF경제라는 큰 흐름속에서 수입선다변화조치의 조기 해제 문제는 극히 사소한 것 아니냐는 잘못된 시각으로 명분은 물론 실리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가전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입선다변화 조기 폐지 문제가 금융기관 통폐합 등 IMF의 강도 높은 조치에 묻혀 아무런 대책없이 흘러갈 것이 가장 우려된다』며 『수입선다변화조치가 조기에 해제될 수밖에 없다면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규제가 아닌 민간자율단체의 규제를 신설하는 등 국내 산업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장치는 미리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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