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기용품 안전관리법 개정에 부처

정부는 전자, 전기용품에 대한 형식승인제도와 관련된 업무를 민간에 이양한다. 또 컬러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에 품질인증마크인 안전마크를 도입하고 이 마크가 없는 제품은 제조, 수입, 유통이 금지된다.

통상산업부는 이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전기용품 안전관리법 개정안」을 마련, 내년 상반기부터 시행키로 했다.

이번 정부의 조치는 일단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전자, 전기 용품을 안정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운영돼 왔던 형식승인제도 관련업무를 24년 만에 마침내 민간으로 이양했다는 점은 높이 살 만하다. 그동안 형식승인 인증제도는 관주도로 운영되면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관련 정책을 입안, 결정하는 주무부서는 통상산업부였으며 실무집행은 국립기술품질원이 맡았다. 또 시험기관이 따로 있어 결국 형식승인업무는 옥상옥이었다. 그러다 보니 업무처리가 지체되고 경직돼 관련업체들로부터 많은 불만을 사왔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형식승인 업무를 민간단체가 맡고 있다. 관보다는 민이 맡는 것이 더 낫기 때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제 정부는 형식승인 업무를 민간에 이양하면서 그동안 문제점으로 지적돼왔던 것을 해결하는 데 힘써야 하겠다.

무엇보다도 먼저 해결해야 할 점은 형식승인의 내실을 기해야 하는 것이다. 현재 전기용품 안전관리법에는 사용빈도나 위험도 등에 따라 대상기기를 1, 2종으로 구분하고 이를 품목을 추가하거나 삭제할 때 고시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고시되지 않은 품목은 형식승인의 그물에서 빠져나간다.

전기용품을 사용할 때 감전이나 화재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품목은 법에 정한 안전기준을 통과해야 한다는 게 형식승인 제도의 취지다. 따라서 국민들이 안심하고 전기용품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대상품목 선정기준을 시대에 맞도록 고쳐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루가 멀다하고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마당에 형식승인 대상품목을 나열식으로 지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상품목을 일일이 나열하는 것보다 용품을 사용전압에 따라 위험성을 분류해서 승인받도록 하는 포괄식으로 바꿈으로써 그물망을 좁힐 필요가 있다. 그것은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이 채택하고 있는 방식이다. 위험성이 작은 기기들은 굳이 까다롭게 형식승인을 받아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시험이 정확하게 이뤄져야 하는 것도 민간기관에 이양되는 데 따른 과제다. 현재 관주도로 시험소를 운영하다 보니 형식승인 검사비용이 터무니 없이 낮다. 선진국의 10분의 1밖에 안된다. 이는 언뜻 보기에는 형식승인을 받아야 하는 업체에게는 득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시험소는 격무에 시달려야 하고 좋은 시험장비를 도입하는 것도 어렵다. 국민들은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또 외국 업체들이 쉽게 한국에서 형식승인을 받음으로써 한국시장에 단기간에 제품을 풀어 놓는다. 우리가 수출할 때 외국의 안전규격 때문에 수출 못하겠다고 푸념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국 값싸고 부실한 형식승인은 관련업체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형식승인 검사비용을 현실화하는 것은 실보다는 득이 많다.

그동안 형식승인과 관련해 운영돼온 조직이 크고 또 인력들이 많아 이번 제도 개선으로 작지 않은 혼란이 예상된다. 24년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를 털어내는 것도 작지 않은 일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바로 잡는데 부작용이 크면 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미국의 UL마크처럼 제조업체가 안전마크를 획득하지 못하면 제품의 생산, 유통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이번에 정부가 형식승인 자체를 안전마크로 변경하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에 따른 것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점도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내년 상반기부터 개정된 전기용품 안전관리법을 시행하기에 앞서 선진 각국의 선례를 살피고 업계의 여론을 수렴, 시행령과 시행규칙에 반영해야 하겠다. 제도 개정과 이번 형식승인 기관의 민간 이양에 따른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숙제인 것이다.

이번 형식승인 개정이 원활하게 이루어져 이를 거울 삼아 장기적으로는 난마처럼 얽혀 있는 각종 규격(인증) 체제를 정비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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