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라는 이름이 국내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로 기록되고 있는 「C브레인」이 세상에 등장한 지난 88년. 불과 10년 전이지만 꽤 능숙한 컴퓨터 사용자들조차 컴퓨터 바이러스가 하드웨어에 기생하는 생물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 시절이었다.
학생신분인 그는 용돈을 아껴 당시로서는 미국인들조차 구하기 힘든 관련 연구서적들을 사모았고 바이러스 샘플수집에 나서는 등 성과가 드러나지 않는 외길을 걷었다. 외로운 길을 걸으면서 그가 89년 개발한 것이 바로 오늘날 「V3」시리즈의 원조인 「백신」이다.
세계 최고의 백신소프트웨어를 개발하겠다는 자신의 이상이 명성만으로는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95년 3월 주식회사 형태로 설립한 조직이 바로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다. 그러나 안철수씨가 처음부터 주식회사 형태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94년부터 안철수씨는 갈수록 지능화하고 수적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증가하는 바이러스에 대해 개인적인 대응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판단, 바이러스를 포함한 포괄적인 컴퓨터 보안관련 연구를 위한 비영리 연구단체 설립을 전국에 호소하고 나섰다.
그러나 안철수씨의 뜻을 수용하겠다는 기관이나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V3」의 상용화에 관심이 있었던 한글과컴퓨터가 자본을 투자함으로써 안철수씨를 대표(소장)로 하는 주식회사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창업 후 안연구소는 한글과컴퓨터에 「V3」 마케팅과 영업을 일임하고 새로운 백신개발에 전념해 국내 최고의 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어 민간기업으로서 재정적인 자립이 필요했던 만큼 안연구소는 그동안 공개소프트웨어로 배포하던 「V3」를 「V3+」로 개명하고 셰어웨어로 전환하면서 연구소 운영을 시작했다.
그러나 공익을 표방하고 기업을 시작한 만큼 개인 사용자들에게는 사실상 무료로 제품을 공개해왔고 기업을 대상으로 한 사이트 라이선스 판매 등을 통해 연구소를 꾸려오면서 명실공히 국내 PC사용자들의 든든한 방패막이로 성장하게 된다.
96년 1월 안연구소는 설립 이후 최초의 상용제품이라 할 수 있는 「V3프로 97」을 발표했다. 이 제품의 발표는 안연구소가 세계적인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소프트웨어 개발회사로 거듭나게 되는 발판을 마련해준다.
도스와 16비트 윈도 및 32비트 윈도95를 통합 지원하는 「V3프로 97」은 그해 6월 신소프트웨어상품대상을 수상하고 기술력을 공인받게 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 제품이 의미를갖는 것은 그동안 「V3」시리즈 소프트웨어 개발을 전담하던 안철수 소장이 직접 참여하지 않은 가운데 연구소 개발진들에 의해 개발된 제품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해동안 국내에서 발견되는 컴퓨터 바이러스는 96년을 기점으로 2백여종을 넘어섰다. 올해는 잠시 주춤하고는 있지만 상반기에만 1백16종의 바이러스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들 바이러스는 발견 즉시 안연구소에서 수집 분석해 한달에 두번씩 치료기능이 가미된 「V3+」의 업그레이드판에 추가해 PC통신 등을 통해 일반에 공급된다. 현재는 「V3+ 버전 968」까지 나와 있는데 968은 치료 가능한 바이러스의 숫자를 뜻한다.
바이러스의 상담과 계도활동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벌이던 안연구소는 97년 들어 대대적인 변신을 꾀하게 된다. 이름에서 풍기는 것만큼이나 공공 이미지 위주의 활동을 벌이던 안연구소가 스스로 벤처기업임을 표방하고 나선 것이다.
설립 당시부터 주식회사라는 사실보다 연구소라는 이미지를 강조해왔고 사실상 공익활동에 주력해온 안연구소는 지난 3월 한글과컴퓨터가 갖고 있던 지분 49% 중 절반을 삼성SDS가 인수케 하고 한글과컴퓨터가 갖고 있던 제품판권도 인수해 자체 마케팅 조직을 신설했다.
이같은 변화는 사실 안연구소 외부로부터 다가왔다. 지난해 대표적인 대만 백신업체인 트렌드마이크로, 「노턴 앤티바이러스」로 잘 알려진 미국 시만텍이 국내 입성을 마쳤다. 여기에 세계 최대의 백신업체로 알려진 맥아피마저 국내 진출을 공식화했다.
바이러스 백신소프트웨어가 시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이들 외국업체는 백신을 통해 세계적인 소프트웨어업체로 성장했고 이제 국내시장 공략을 위해 경쟁적으로 진출한 것이다.
안연구소는 우선 제품 다양화에 착수했다. 최초의 서버용 백신인 「V3넷」을 발표하고 네트워크 보안업체인 아이에스에스와 인터넷 및 인트라넷용 백신 「바이러스월」의 공동개발에 착수하는 등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올 9월 윈도NT용 「V3NT」를 발표한 데 이어 10월에는 「바이러스월」의 개발을 완료하면서 종합솔루션업체로서의 위상을 정립하고 나섰다.
국내 백신기술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는 안연구소는 이제 다시 한번 변신을 꾀한다. 올 연말이면 가칭 DNA사가 설립되기 때문이다. 안연구소는 최근 미국 네트워크어소시에이츠(구 맥아피)사와 제품 마케팅을 전담하는 합작법인 설립에 합의했다. 이에 따라 현재의 마케팅 조직을 모두 신설법인으로 이관하고 안연구소는 모기업으로서 연구와 개발만을 전담하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네트워크어소시에이츠는 안연구소와의 협의에서 백신만큼은 안연구소에 양보해야 했다. 국내에서만큼은 안연구소의 위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10년을 한 우물만 파온 전문기술이라면 결국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다는 신념 하에 오늘도 27명의 연구소 직원들은 바이러스와의 힘겨운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김상범 기자】
[인터뷰] 안연구소 안철수 소장
『올림픽 개최로 온나라가 들떠 있던 88년 세계 최초의 컴퓨터 바이러스 「C브레인」이 발견됐죠. 당시 의과대학원 박사과정에 재학중이었는데 바이러스라고 하길래 의학도로서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국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소프트웨어의 대명사 「V3」시리즈 개발자 안철수씨는 바이러스 연구에 몰두하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한다. 컴퓨터의 정상적인 작동을 방해하고 데이터를 파괴하는 프로그램을 생물학적 바이러스의 일종으로 착각, 해결책을 찾다가 마침내 95년 3월 국내 바이러스 연구의 산실인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안연구소)를 설립하게 됐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이에 대해 안 소장은 『백신소프트웨어를 혼자 개발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느꼈고 결국 조직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을 했지요. 개인이익을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닌 만큼 처음엔 비영리 공익단체로 출발하기를 원했지만 여건상 주식회사로 출범하게 됐습니다』라고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바로 이런 배경 때문에 안연구소는 설립초기부터 각종 운영자금을 스스로 조달해야만 했다. 설립 후 1년이 지나면서 민간기업들을 대상으로 제품판매에 나섰던 것은 재정자립을 위한 자구책이었다고 안 소장은 밝혔다. 사실 안 소장은 주식회사 안연구소 사장보다는 말 그대로 연구소 소장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다.
스스로 사업가로서의 자질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안 소장은 『모든 일을 신중히 생각하고 다른 의견들을 충분히 듣고 난 후에 결정한다』며 겸손한 자세를 잊지 않았다.
30대 후반에 들어선 안 소장은 학문에 대한 열정도 대단하다. 안연구소 설립과 동시에 시작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유학생활이 올 여름 공학석사학위 취득으로 열매를 맺었다.
『장기적인 연구소 운영 측면에서 좀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라고 말하는 안 소장은『내 역할은 연구소의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며 그러기 위해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고 강조한다.
안연구소의 비전에 대한 안 소장의 생각은 의외로 단순하다. 『한가지씩 전문기술 축적에 힘쓰겠습니다. 무리한 사업다각화나 급진적인 발전은 결코 원치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는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지요. 다만 자신있는 영역에서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는 것이 안연구소의 비전』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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