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 디지털TV 안방주인 넘본다

『안방극장도 디지털이다(가제목)』.

정보통신 및 멀티미디어 분야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미국 MIT대학 미디어래브(Media Lab)의 니콜라스 니그로폰테 소장은 「디지털이다(Being Digital)」라는 저서에서 0과 1의 비트를 바탕으로 한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삶의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것이라는 디지털 혁명을 예고한 바 있다.

그의 예언이 적중이라도 하듯이 전세계적으로 디지털이란 말이 전자, 정보통신 등 첨단분야에서는 새로운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국내 소비자들도 아날로그 휴대폰을 디지털 제품으로 바꾸고 있으며 가전업체들은 디지털 다기능 디스크(DVD)플레이어, 디지털 캠코더, 디지털 카메라 등 디지털이란 수식어가 붙은 가전제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디지털 기술에 대해 충분히 알지는 못하지만 「최첨단」 또는 「차세대 기술」을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소비자들도 디지털시대의 의미를 보다 실감할 수 있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지난 수십년간 안방극장 역할을 해온 TV도 디지털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편집자>

전자산업 전반에 걸쳐 디지털 물결이 쇄도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는 그동안 세계 전역에서 물밑연구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돼온 디지털TV가 수면위로 부상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이정표를 남긴 한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지난해 11월말 미국의 가전, 컴퓨터, 방송업계가 그동안 논란을 벌여온 차세대 디지털TV의 규격에 대해 극적으로 합의함으로써 안방극장의 디지털시대를 여는 물꼬를 텄다. 이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가 내년부터 디지털 시험방송을 시작으로 오는 2006년에는 아날로그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디지털시대에 진입한다는 일정을 밝힘으로써 디지털TV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세계 최대의 시장인 미국에 불어닥친 디지털TV 열풍은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유럽 등 전세계 전자시장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와 업체에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이미 지난 90년대 착수된 고선명(HD)TV 개발계획과 95년부터 진행되고 있는 HDTV용 핵심 주문형반도체(ASIC) 개발계획과 별도로 올 2월 정보통신부는 당초 계획을 앞당겨 오는 2000년부터 지상파 디지털TV 및 라디오 방송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데 이어 통상산업부 역시 가전업계와 공동으로 디지털TV의 핵심부품을 서둘러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3월에는 학계, 가전업계, 방송사가 주축이 되어 민간차원으로 지상파 디지털방송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또 이와는 별도로 차세대 TV의 하나로 미국에서 제시되고 있는 PC-TV개발에도 정부와 전자업계가 공동으로 나서기로 한 바 있다.

아날로그 방식의 HDTV개발에 미국보다 먼저 나섰던 일본과 유럽도 화질을 개선시키는 것만으로는 차세대 TV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대세를 인정하고 서둘러 디지털TV 상용화를 위해 방향타를 급선회하고 있다.

지난 1920년대 등장한 흑백TV로부터 시작되어 지난 50년대 컬러TV가 등장하면서 새로 태어났던 TV는 이제 지난 70년간 껴입었던 아날로그라는 코트를 벗고 디지털TV로 다시 한번 탄생하는 전환점에 서 있는 셈이다.

TV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지각변동의 파장과 영향은 흑백TV에서 컬러TV로 넘어가는 것과 비교할 바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치된 지적이다. 물론 컬러TV의 등장이 관련업계에 미친 파급효과도 엄청난 것이었지만 일방적인 영상수신기로서 TV의 개념까진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업화에서 정보화시대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등장하고 있는 디지털TV는 전통적인 TV의 개념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는 점에서 디지털TV는 전자업계, 방송 및 통신업계, 소비자 모두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식되고 있다.

물론 이 패러다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그 누구도 정확하게 말할 수 없는 시점이다. 왜냐하면 디지털TV는 차세대 TV에 총론이지 구체적인 각론이 아니기 때문이다. 최근 세계 각국의 가전, 컴퓨터업체들이 시도하고 있는 다양한 노력들에도 불구하고 차세대 TV로서 디지털TV는 이제 겨우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드러난 윤곽을 살펴보면 디지털TV는 영상과 음성만을 일방적으로 수신하는 수신기가 아니다. 영상과 음성은 물론 문자, 그래픽, 사진 등 다양한 콘텐츠를 수용함과 동시에 시청자가 송신자가 될 수 있는 양방향 멀티미디어이다.

디지털 TV시대의 시청자는 지상파, 케이블, 위성을 통해 기존의 TV와 비교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와 오락물을 입수할 수 있음은 물론 홈쇼핑, 홈뱅킹, 재택진료, 각종 예약 등 다양한 서비스를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한 디지털TV는 홈오토메이션 시스템과 연계되어 가정내의 각종 전기, 전자제품을 제어하는 컨트롤 센터 역할도 추가될 것이다. 즉 차세대 TV로서 디지털TV는 가정내 양방향 정보단말기로 정의되고 있다.

디지털TV에 담긴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가지는 가전, 컴퓨터 및 반도체,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체라는 것이다. 멀티미디어로서 디지털TV에는 컴퓨터의 윈도나 도스와 같은 운용체계(OS)는 물론 중앙처리장치(CPU) 프로세서와 자체기억장치로서 메모리도 탑재된다. 네트워크기능을 구현하기 위해선 모뎀과 같은 접속장치가 장착될 것이며 DVDR(Digital Versatile Disk Recordable)이나 프린터와 연결될 전망이다. 또 디지털TV는 기존의 컬러 브라운관 대신 액정표시장치(LCD)나 플라즈마디스플레이패널(PDP)을 채용한 초박형 벽걸이TV 형태를 갖춤으로써 외관상으로도 크게 달라진 모습으로 시청자들 앞에 다가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러한 밑그림은 디지털TV는 더 이상 TV가 가전산업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디지털TV는 가전업체와 컴퓨터업체가 모두 군침을 흘릴 수 있는 무주공산에 있는 황금시장이다.

멀티미디어로서의 디지털TV는 가전업계의 영상기술과 컴퓨터 및 정보통신 업계의 멀티미디어 및 네트워크 기술 등 방대한 요소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디지털TV에 희망을 걸고 있는 전자업체와 국가들은 각각 자신들이 우위를 점하고 있는 기술이 디지털TV의 표준규격을 설정하는데 최대한 많이 반영되도록 총성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조만간 상용모델이 등장할 것으로 보이는 디지털TV를 둘러싼 전쟁의 양상은 우선 가전업계와 컴퓨터업계의 주도권 쟁탈전이다. 가전업계는 화질에 초점을 맞추고 누구나 사용하기 쉬운 차세대 가전제품으로서 디지털TV를 그리고 있고 컴퓨터업계는 가전업계에 대해 절대적인 강세를 보이고 있는 소프트웨어 기술과 멀티미디어 기술을 바탕으로 지능형 디지털TV를 제시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의 게이트웨이 2000사나 뫼비우스 등이 선보이고 있는 「PC-TV」나 올 초 마이크로소프트, 컴팩, 인텔 등이 연합전선을 형성해 선보이고 있는 「PC씨어터」, 선마이크로시스템스나 오라클 등이 선보이고 있는 「네트워크 컴퓨터(NC)」 등은 컴퓨터업계가 제안하고 있는 디지털TV 후보들이다.

이에 맞서 한국과 일본의 가전업체들이 주로 선보이고 있는 내장형 인터넷TV는 TV에 컴퓨터 및 통신기술을 접목하기 위한 가전업계의 노력을 대변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업체들간의 주도권 싸움은 가전산업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한국 및 일본의 입장과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산업을 국가기간산업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는 미국, 또 미국 산업계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하는 유럽국가들의 입장이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확대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가전업체나 컴퓨터업체 역시 누구 하나 디지털TV와 관련된 모든 솔류션을 갖고 있지 않은 만큼 핵심적인 기술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경쟁상대와도 전략적으로 제휴하거나 비장의 기술을 확보한 벤처기업을 합병하는 전략을 통해 생존능력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이미 지분을 확보하고 있었던 웹TV사를 올해 4억2천5백만달러를 주고 전격적으로 인수한데 이어 미국의 5대 케이블회사 가운데 하나인 컴캐스트사에 무려 10억달러를 투자함으로써 차세대 TV시장에 대한 야심을 표면화시켰다. 또한 선마이크로시스템스도 디지털 정보가전분야에 첨단기술을 확보하고 있는 디버사를 인수, 자신이 확보하고 있는 네트워크기술과 프로그램밍 언어인 자바(Java)기술을 접목시켜 차세대 가전시장에서 입지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LG전자도 올 초 미국 실리콘밸리 의 벤처기업인 캐치TV사에 지분참여함으로써 이 회사가 확보하고 있는 인터넷 서비스 기술을 공유하기로 한 바 있다.

이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디지털TV는 가전, 컴퓨터 및 반도체, 통신업계 등 전자산업 전반에 걸쳐 엄청난 황금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기대되는 21세기 개봉작이란 점을 입증해 주고 있다.

하지만 디지털TV가 단순간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 기존의 아날로그 TV와 10여년 정도 공존하면서 서서히 자리바꿈을 해나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이에 따라 여러 가지 과도기 상품과 기술들도 선보일 것이다.

국내, 외에서 디지털방송이 시작되는 오는 2000년을 전후해 등장할 디지털TV가 과연 컬러TV를 처음 안방에 들여놨을 때만큼 놀라움으로 가득찬 시대를 전개하는 견인차로 작용할 것은 자명하다.

<가전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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