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을 장악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이것은 비단 경제계에서만 통용되는 얘기는 아니다.하루가 멀다하고 신기술이 등장하는 네트워크 분야에서도 표준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네트워크 분야의 표준은 프로토콜, 장비 등에 관한 일종의 규약으로 제품의 기초를 이룬다.여기에는 PC로부터 생성된 데이터를 네트워크에 적합한 데이터로 변경시키는 과정, 방법 등이 규정돼 있다.
네트워크 제품 공급업체들이 표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것은 표준이 사업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열쇠가 되기 때문이다. 한 업체가 보유한 기술이 표준으로 정착될 경우 해당 업체는 전세계에 걸쳐 영향력을 발휘하며 성공을 보장받는다.표준에 부합되지 않은 기술, 제품을 보유한 업체는 반대로 쇠락의 길을 걷게 된다.
표준을 장악하려는 업체들의 노력이 갈수록 강화되는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다.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시스템즈 등 업체들이 인터넷 관련 표준화기구인 인터넷엔지니어링태스크포스(IETF)에까지 수십명의 인원을 파견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이들은 「힘이 곧 표준」이라는 논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기술발전 상황이나 사용자들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으며 경쟁업체들의 역량을 차단하는 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일단 자사 기술이 표준으로 확정될 경우 전세계 네트워크를 지배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과거의 표준화 작업은 연구소나 교육기관 주도로 진행됐다. 각국 정부가 개입돼 있어 공정성 측면에서 인정을 받았다.
미 국립표준협회(ANSI), 전기전자전문가협회(IEEE), IETF, 국제표준화기구(ISO), 유럽통신표준협회(ETSI), ITU-T 등은 대표적인 연구소, 정부 주도의 표준화기구로 네트워크 세계의 표준을 만들어왔다.
그러나 최근 들어 ATM포럼, 기가비트이더넷연합, 프레임릴레이포럼 등 네트워크업체들의 연합단체가 표준 제정분야에서 실세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1~2년새에 회원수를 거의 배 가까이 늘리며 업체들로부터 지지를 얻어내고 있다.
여기서 합의된 표준안은 공식기구인 표준화기구로부터 쉽게 인정을 받는다. 업체 연합이 실질적인 표준화 단체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다.
업체 연합은 모든 사항을 다수결로 결정한다. 따라서 지지세력을 많이 갖고 있는 업체가 표준화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서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각 업체들은 서로의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자금, 인원 등 제반 자원을 막대하게 퍼붓고 있는 실정이다.
업체 중심의 표준화 작업은 장, 단점을 갖고 있다.
우선 장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이 제품을 만들어내는 업체들답게 현실적인 표준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표준화기구의 표준제정이 다소 비현실적이고 시간이 지체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상당한 이점이다. 의사결정이 빠르다는 것도 장점이다. 꼭 필요하고 구현가능한 부분을 주로 표준에 포함시키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반면 단점으로는 폐쇄적인 운영행태를 꼽을수 있다.ATM포럼의 경우 투표권은 주요 업체들에게만 있으며 그나마 일정한 액수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체 연합에 참여한 모든 업체들이 표준화의 주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라는 얘기다. 이것은 몇몇 업체들만이 선두그룹에서 표준을 주무르고 있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
네트워크 업체들이 치열한 표준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과는 달리 사용자들은 표준화에 대해 다소 방관적인 입장에 서있다. 그러나 무관심해서는 안된다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지난해부터 붐을 일으키고 있는 ATM 네트워크를 구축할 것인가, 아니면 내년초 나올 기가비트이더넷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표준화 동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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