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추적 행망PC 불법유통 (4);문제점 (하)

행망용 PC의 불법유통이 야기하는 문제점은 비단 컴퓨터 유통질서 문란에 그치지 않는다. 정부의 물품조달체계에 커다란 구멍이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현재 정부 및 정부투자기관의 물품구매는 대부분 조달청에서 관장하고 있다. 조달청은 해마다 관수용 물자 조달업체를 선정하고 1조원에 달하는 물량을 1차 구매해 이를 필요로 하는 정부기관 및 투자기관에 조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조달청은 각 납품업체 선정시 최저낙찰제를 중심으로 제한적 최저낙찰제 등을 부분적으로 도입해 운용함으로써 물자 및 용역서비스 구매시 시중에 비해 파격적인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정부의 조달관리체계 허술은 조달품목이 다양하고 1조원에 이르는 천문학적인 액수규모에 이르고 있는데다 가격이 제조원가에 준해 형성돼 있는 만큼 조달물품이 시중에 유입될 경우 그 폐해는 국가경제 전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최근 정부의 조달체계는 문민정부 이후 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에 따라 조달청의 직접 개입을 점차 축소시키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정부는 수요기관과 업체와의 자율폭을 넓혀주는 대신 외부감사 등을 통한 철저한 감시로 불법소지를 없애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이를 시행하고 있다.

여기에 편승해 일부 조달품목이 시중에 편법으로 흘러들어오게 됐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행망용 PC로 나타난 셈이다.

현재 조달청의 물자조달은 2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선 조달청은 수요기관으로부터 물품주문 요청이 들어오면 최저낙찰제와 자격심사를 통해 조달업체를 선정하고 예산을 책정해 이들 업체로부터 직접 물품을 구매해 다시 수요기관에 인도하는 방식이 있다.

조달청은 조달업체 선정서부터 물품공급 계약, 대금인도까지 총체적이고 종합적인으로 관리를 맡는 방식으로 현재 대부분의 물품조달에 활용하고 있다. 관련업계에서는 이 방식이 조달청이 종합 관리함으로써 조달품목의 시중 불법유통 소지가 비교적 적다는 주장이다.

또다른 하나는 문민정부 이후 규제혁파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제3자 단가계약서를 통한 조달방식.

조달청이 납품업체를 선정하고 이들 업체와 관수용 제품 공급계약을 체결하면 이후에 조달청의 직접 개입 없이 제품물량 주문 및 공급을 수요기관과 납품업체가 직접 행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조달품목의 시중유입은 두번째 방식에서 주로 야기되고 있다.

행망용 PC의 경우 95년 말에 제3자 단가계약서를 통한 정부의 조달체계 변동으로 조달청의 직접관리가 간접관리 방식으로 전환됨에 따라 시중 불법유통의 소지가 열린 셈이 됐다. 여기에 최근 중소 컴퓨터업체들이 행망PC 공급경쟁에 참여하고 덤핑투찰 등이 횡행하는 등 공급경쟁이 가열되면서 급기야 올해 들어 행망용 PC가 시중에 대량 불법유입되게 됐다.

문제는 제3자 단가계약서를 통한 정부의 조달방식 사례가 점차 늘어날 것이라는 데 있다. 정부는 수요기관 및 납품업체의 납기일자 축소, 조달체계의 간소화 등의 이점으로 직접조달 방식보다는 제3자 단가계약서를 통한 간접관리를 점차 늘려나갈 방침을 세워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업계에서는 정부의 철저한 조달체계 관리가 전제된다면 규제혁파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제3자 단가계약서 방식이 바람직하지만 조달관리체계에 허점이라도 발생하면 자칫 국내 유통시장 기반파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조달청의 한 관계자는 『최근 행망PC의 시중유입은 수요기관 및 납품업체는 물론 PC물량 규모가 갈수록 거대화하고 있는 데다 과잉공급경쟁으로 제조원가 수준 이하의 가격이 형성된 데서 비롯되고 있다』며 『앞으로 수요기관 및 납품업체의 거래에 대해 철저한 관리체계를 확립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신영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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