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가정용 전자제품 브랜드 중에 한국산 상표가 단 하나도 없다는 소식은 최근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전자제품의 수출경기와 함께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홈퍼니싱뉴스(HFN)」와 마케팅 조사기관인 NPD그룹이 최근 연간 가구소득 2만5천달러 이상의 여성소비자 1천5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미국의 유명브랜드 인지도 조사에서 미국산 제품의 선호도가 압도적으로 높았으며 그 다음은 일본제품으로 나타났다. 반면에 한국산 전자제품은 단 한 품목도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1백대 제품에 꼽히지 못했다.
이같은 결과는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의 미국시장을 겨냥한 이미지 제고노력에 비춰 볼 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가전업체들은 지금까지 회사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데 상당한 투자를 해 왔다. 과거의 저급 이미지를 씻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온 게 사실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3사를 비롯해 많은 전자업체들은 그동안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에 의존해오던 대미 수출 마케팅전략을 자가브랜드 방식으로 전환하고 해외 광고비를 대대적으로 늘리는 등 브랜드세일 비중을 높이고 있다.
LG전자는 미국 PGA투어 골프대회에 그룹 이름으로 협찬해 자사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스포츠 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 업체의 경우는 미국의 유명 브랜드를 인수해 자사 브랜드의 이미지 제고에 나서기도 했다.
그 결과 지난 90년 초까지만 해도 56억달러에 불과했던 대미 전자제품 수출이 연평균 13%의 신장세를 보이면서 지난해 말에는 1백17억 달러에 이르렀다. 또 미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TV 및 세탁기 등 일부 국산 가전제품의 성능이 일본 및 미국의 최고제품을 1백으로 볼 때 평균 90 수준에 이른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실제로 최근들어서는 품질이나 기능 면에서 세계 정상급을 능가하는 모델이 하나 둘 등장하고 있으며 미국내에서 한국산 전자제품의 시장점유율이 제품에 따라 적게는 6∼7%대에서 많게는 10%대로 해마다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미국 소비자들이 좋아하는 브랜드로 국산 전자제품이 한 품목도 뽑히지 못한 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을 단순히 「호감가는 디자인」을 개발하는 것에 두지 않았나 싶다. 또 기업명 로고 브랜드네임 등이 너무 오래 되거나 지나치게 「한국적」이어서 외국인들의 뇌리에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브랜드의 육성을 위한 마케팅보다는 당장의 제품판매에 치중하는 전자업체들의 근시안적 자세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출범과 함께 세계시장의 단일화가 가속화하면서 브랜드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이 미국시장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할 일은 시장점유보다 브랜드 인지도 제고다. 물론 일류상표를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미국 소비자들이 국산 브랜드를 선호하도록 만드는 데는 제품개발 전략을 히트상품 위주로 바꾸는 게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해외에 디자인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현지밀착형 마케팅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특히 각 지역의 고객욕구와 기후조건 등을 면밀히 고려한 현지형 제품개발에 주력하고 현지의 마케팅 인력을 활용하는 방안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다 품질안정과 생산성 향상을 통해 기본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략적 제휴의 선별적 활용을 통해 미국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혀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제품의 브랜드 네이밍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람들은 이름이 좋아야 출세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미국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국제적인 브랜드를 만드는 데 소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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