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 방송 대중화 시대 개막

직장인 김모씨(30)는 회사 내에서 야구 전문가로 통한다. 메이저 리그에 진출한 박찬호가 선풍을 일으키면서 박의 경기가 있던 다음날이면 저마다 남다른 내용을 설명하려고 경쟁이 벌어지지만 그는 늘 좌종을 압도한다. 그는 박찬호의 경기내용만을 줄줄 외고 있는 다른 동료들과는 달리 다음날 등판한 일본인 투수 노모의 경기까지 상세히 알려 준다. 심지어 뉴욕 양키스에 입단한 일본인 이라부의 투구내용도 심심치 않게 전달하고 일본에 진출한 선동렬의 경기모습을 "중계"하기도 한다. 자연히 동료들 간에 그의 인기는 높아질 수밖에 없고 김씨는 야구 이야기만 나오면 어깨가 으쓱해진다.

그의 비밀은 위성방송. 그는 집에서 중계유선방송국을 통해 NHK 1, 2와 홍콩의 스타 스포츠 및 뮤직방송을 시청한다. 한국방송이 박찬호 선발경기를 중계하듯 일본 NHK 역시 노모와 이라부의 등판 경기를 위성 중계한다. 노모는 일정상 박찬호 다음날 등판하기 때문에 잘만 하면 이튿날 새벽 그 경기를 시청하고 출근할 수 있다. 선동렬 경기도 마찬가지. NHK가 주니치 경기를 중계하는 날이면 그의 투구모습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잡을 수 있다.

위성방송이 드디어 대중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그간 엄청난 설치비용 때문에 어학공부나 특수한 목적으로만 접근해야 했던 위성방송이 최근 붐을 일으키고 있는 위성 과외방송에 힘입어 급속히 일반화되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위성방송이 일부 부유층이나 특수층의 전유물이 아닌 전 국민의 방송이 되고 있다.

현재 위성방송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은 대략 3가지. 2백만 가구를 넘어선 케이블TV 가입자는 대부분 위성방송을 수신한다. 지역 종합유선방송국(SO)들이 국내 위성방송과 일본 및 홍콩의 5, 6개 채널을 함께 서비스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용은 가입비만 5만원이 넘는다.

이보다 더 많은 가구가 중계 유선방송국이 제공하는 위성방송을 시청한다. 집집마다 뾰족히 솟아 있던 TV수신 안테나를 몰아낸 중계 유선방송국들은 웬만하면 국내 지상파뿐 아니라 KBS1, 2 위성방송과 NHK, 스타TV의 채널도 4, 5개씩 제공한다. 비용이 한 달에 일만원 미만으로 저렴하기 때문에 소비자 선호도가 높다.

2, 3년 전까지만 해도 위성방송 수신의 유일한 선택이었던 접시 안테나와 세트톱박스 등 개별 수신장치를 보유한 가구는 이제 완전히 군소 모델로 전락(?)했다. 물론 이런 가구는 중국의 CCTV를 비롯, 아시아권에서 서비스되는 웬만한 위성방송은 모두 수신이 가능, 채널 선택폭이 훨씬 넓은 장점이 있다.

이런 추세에 기름을 부은 것이 위성방송 과외다. 특히 수능시험이 위성과외 내용 중에서 일정 부분 출제될 것이라는 입소문이 돌면서 그간 위성방송을 외면했던 사각지대의 가구들이 이를 수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라 온 나라가 떠들썩할 정도다.

실제로 한국케이블TV협회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위성과외가 시작되기 전에 비해 과외 이후 케이블TV의 가입자가 무려 4백19%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SO당 하루 평균 2백13가구가 가입하던 것에 비해 무려 9백35가구로 늘어난 수치다.

이 결과는 과외방송전 이에 대비해 가입 신청의사를 보인 가구수가 평균 1백% 정도 증가했던 점과 비교하면 막상 과외방송이 시작되고 난 후 예상 외의 폭발적인 신장세를 기록한 것으로 그 관심도를 짐작할 수 있다.

지역별 증가추세 역시 인천의 5백48%를 비롯, 서울 4백80%, 광주 4백7%, 대구 3백52% 등 전국적으로 고른 현상을 보였다. 이들 가구는 케이블TV의 신규 수요자이지만 해외 위성방송도 동시에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국내 공중파 못지 않은 위성방송 시청자가 생기는 것이다.

위성방송이 대중화됨에 따라 이를 겨냥한 가전업계의 경쟁 역시 치열하다. 삼성전자, 세진컴퓨터랜드 등 PC업체들은 위성수신이 가능한 신제품을 선보이고 공급이 포화상태에 다다른 VCR업체들은 구간 반복기능 등 학습기능을 강조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위성방송이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위성방송 시청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일본이나 홍콩의 무분별한 상업 프로그램들이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유입되는 것을 염려하고 있지만 아직은 사회적으로 득실의 우열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케이블TV 가입가구나 중계유선 방송국을 통한 시청이 압도적인 상황에서 이들이 서비스하는 채널은 교양, 스포츠채널 위주이고 특별히 음란, 폭력 등 사회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NHK만 해도 뉴스나 교양프로그램 못지 않게 일본 전통극 및 오락 프로그램이 많고 스타TV의 음악 프로그램도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 내용을 쉽게 발견할 수 있어 특히 모방심리가 강한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차피 위성방송은 국경 없는 전파의 특성으로 인해 계속 확대되고 주요 국가들이 이를 자국의 문화수출 무기로 인식하고 있는 만큼 언제까지 회피할 수만은 없다. 우리도 이 경쟁에 하루빨리 뛰어들어 시장을 지키고 한국을 해외에 알리는 입장의 전환이 시급하다. 스타TV에 생활용품을 광고하는 프로그램에는 2, 3년 전만 해도 한국 판매처가 제외됐으나 이제는 웬만한 통신판매 상품에는 한국 판매처가 명기될 정도다.

이런 점에서 최근 (주)대우가 국제방송교류재단과 협력, 아시아 전역을 대상으로 한 위성방송 사업에 나선다고 발표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대우는 SIS-TV를 설립, 연내에 시험방송을 마치고 내년초부터 본격 방송에 돌입할 예정이며 오락, 교양 프로그램 등을 포괄하는 종합채널을 지향하고 있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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