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경영의 세계화 전략

미디어분야에서 시작된 국경없는 지구촌시대가 경제와 기업부문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시장은 원대한 포부와 비전을 갖고 마케팅전략에 임하고 있는 다국적기업의 전장으로 변해가고 있다.

우리 기업들도 세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업에 따라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고도 있다. 우리도 이제는 내로라 하는 다국적 기업들과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명실상부한 경영의 세계화를 이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세계적인 타기업이 흉내낼 수 없는 독특한 철학과 비전을 제시해 소비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지난 추석 직전에 마련한 세계적 반도체, 통신기업인 모토롤러의 반도체사업본부가 마련한 「호라이즌 97」이라는 프레스 브리핑 프로그램이 다국적기업의 특성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모토롤라는 이 자리에서 자사의 반도체 기술 및 시장전략이 어떤 철학적 토대 위에서, 또 어떤 비전으로 만들어졌는지를 전세계 언론에 설명한 것이다.

이같은 홍보형태는 비단 모토롤러만의 것은 아니다. IBM, HP 등 국내에서도 낯익은 대표적인 다국적 기업들이 너나없이 한줄의 기사, 제품 하나의 판매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사의 비전이 얼마나 미래지향적이며 든든한 철학적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인지, 자사의 기술이 미래의 니드를 어떻게 앞당겨 실현하려는 것인지를 설득하려는 데 목표를 둔 고도의 홍보 테크닉을 보여준다.

소비자들에게 정보를 걸러 전해주는 이같은 홍보는 언뜻 대가를 바라지 않는 기업의 대언론 서비스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결국 자사의 기술력에 대한 뿌리깊은 신뢰를 심어주는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미래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가진 기업, 그같은 전망 위에 기술력을 갖춘 기업의 이미지는 결코 단시일에 쌓이는 것은 아니다.

국내 대기업들도 이제는 세계시장에서 주목받을 만한 수준으로 올라서고 있다. 일부는 이미 세계적 미디어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대상으로 성장했으며 또한 다국적 기업들로부터도 협력을 염두에 둔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기술력이 그만큼 인정받는다기보다 대량생산으로 세계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됐다는 수준의 평가와 기대는 아닌지 겸허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보다 먼저 과연 얼마나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 위에 기술의 미래를 전망하고 기술개발의 방향을 잡아나가는 것인지부터 반성해 볼 필요도 있다. 남들은 좀더 높은 위치에서 열 걸음 앞을 내다보고 방향을 잡는데 우리는 앞 사람 발꿈치만 쫓아가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운 예도 종종 있다. 그래 가지고서는 어느 기업의 광고문안처럼 결코 1등은 될 수 없을 것이다. 막대한 투자를 하고도 높은 부가가치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결국 낮은 투자효율로 마냥 뒤따라가는 처지를 면하기는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우리 기업이 어느 한 분야에서라도 세계 제1을 꿈꾸는 단계에 이르렀다면 이는 동시에 기업이 장단기적인 미래의 비전을 모색해야 할 시기가 됐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조직이 장기적 비전을 창출해 내려면 창의성 있는 구성원들이 요구된다는 뜻도 된다.

다국적 기업들은 그 내막이야 어떻든 자사가 그만한 통찰력 위에 기술을 개발해 나가고 있다는 점을 이슬비에 가랑이 젖도록 서서히, 그러나 꾸준히 인식시켜 나감으로써 자사의 기술력이 신뢰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 점이 세계시장에서 그들의 기술적 우위를 당연시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인인 것이다.

아직은 판매자 중심시장인 주문형반도체(ASIC)의 마케팅 전략이라면 국내 기업의 홍보관행상 굳이 돈들여 홍보할 필요도 없을지 모르나 저들은 광고가 아니라 단지 기자들에게 자사 기술의 철학적 바탕을 이해시키고자 적잖은 돈과 시간을 들이고 있다. 눈에 뜨이는 성과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효과를 기대하는 저들에게서 국내 기업들이 배울 점은 결코 적지 않을 듯하다. 적어도 이제 세계적 기업으로 발돋움할 야심이 있는 기업이라면 더욱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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