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기초과학의 광장 "고등과학원"

崔石植 과기처 기술인력국장

서울의 동숭동에 있는 「대학로」는 그 이름만 들어도 왠지 가슴이 설렌다. 발랄하고 신선한 젊음이 그곳 광장에 있기 때문이다. 학문의 세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광장이 있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연구실에서 연구하다가 가슴이 답답할 때 잠깐 들러 학문적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곳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문연구의 길이 막혔을 때 찾아가면 항상 자문을 해줄 수 있는 석학교수들이 모여있는 곳 말이다.

사실 1920, 30년대의 미국은 기초과학분야에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하여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바로 그때 루이스 뱀버거와 그의 여동생은 백화점을 팔아 마련한 돈의 용처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중 당시 미국으로서는 새롭고 모험적인 「순수학문분야의 첨단교육과 개척」을 위해 사용하도록 그 돈을 기증했다. 그렇게 해서 1930년에 설립된 기관이 바로 프린스턴대학의 고등연구원이다.

이 연구원이 초기에 주력하였던 핵심적인 일은 유럽의 뛰어난 과학자들을 초빙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인 학자의 한 사람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다. 아인슈타인은 1933년 10월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원의 종신교수가 됐다. 그때로부터 세계의 수많은 학자들이 아인슈타인과 학문을 토론하기 위해 그곳에 모여들었다.

우리나라의 고 이태규 박사도 1939년부터 2년간 이곳에서 연구하였는데, 『매일 아침 산책하는 아인슈타인을 만나 인사만 나누어도 큰 영광이었고, 나도 공부하여 저렇게 되어야지』라고 다짐했다고 회고한 바 있다. 지금도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방문연구원 등의 이름으로 이곳을 찾고 있다.

다른 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많다. 덴마크의 닐스보어 연구소가 그렇다. 세계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그곳에 가서 논문을 발표하는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할 정도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1년 전에 그런 몸짓이 시작되었다. 우선 수학과 물리학분야를 개설한 고등과학원이 바로 그곳이다. 이곳은 서울대학교의 자연과학대학이나 과학기술원(KAIST)의 자연과학부와 경합하지 않는다. 전국의 대학에 설치돼 있는 17개 우수과학연구센터(SRC)의 기능을 대체하지도 않는다. 다른 기관에 배분될 재원을 잠식하는 곳은 더욱 아니다. 옥상옥의 기관도 정말 아니다. 대학이나 SRC와 같은 기존 기관을 도와주고 보완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된 기관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리도록 세워진 기관이다.

그래서 벌써부터 학자들의 기대가 크다. 어떤 기업에서는 50억원을 선뜻 내놓았다.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메달을 수상한 젤마노프 교수도 1년에 3개월 이상 이곳에 와서 연구한다.

그러나 아직은 국민의 박수소리가 작게 들린다. 눈을 딱 감고 지원해야 되는 기초이론 연구소인데도, 조그만 액수의 씀씀이에까지 눈을 부릅뜨는 사람이 있다. 당장 쓰임새 있는 기술이 나오지 않는 곳이라면서 고개를 돌리는 기업도 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우리의 문제다. 우리나라의 미래가 걱정되기 때문에 기초과학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우리들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우리의 미래를 진정으로 걱정한다면 고등과학원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정성을 모아주어야 한다. 꿈을 마음껏 펼 수 있도록 자리를 깔아주어야 한다. 밝은 미래는 오늘을 밝게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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