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램 가격 하락은 지난해에 이어 올 상반기에도 국내 반도체산업 전반에 먹구름을 드리웠다. 올상반기 반도체 총수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 줄어든 81억달러 정도. 또 조립을 제외한 일관가공물량만 보면 45억달러로 35% 이상 감소했다. 주력제품인 16MD램의 수출을 보면 상황은 한층 심각해 전년동기보다 무려 48%나 줄어든 23억달러로 집계됐다.
이같은 현상은 말할 것도 없이 주력제품인 16MD램 가격의 하락폭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평균단가가 30달러에 육박했던 지난해 상반기와 8달러를 밑도는 올 상반기와의 가격차는 무려 4배에 이른다. 하지만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수요는 평균 40%이상 수준으로 꾸준히 늘어 16MD램의 경우 올해 20억개를 돌파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하락으로 인한 고통이 우리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고 업계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최대 경쟁국인 일본, 미국은 물론 신흥 경쟁국으로 부상하는 대만도 혹독한 시련으로 자기 페이스를 찾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실제로 모토롤러가 D램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공식발표한 것이나 일부 대만업체들이 당초 투자계획을 지연하거나 수정하는 것도 이같은 시장상황이 가져다준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현재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상황에서 국내 반도체업계가 얼마나 항구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시장을 주도해 나가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올들어 각사가 자구방안으로 활발히 추진하고 있는 시스템IC,임베디드메모리,미디어프로세서 등의 비메모리부문 강화 노력은 매우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여기에다 통산산업부,정보통신부,과기처 등 관계기관들의 체계적인 지원도 한몫하고 있어 올해는 국내반도체 산업의 체질개선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화합물 반도체시장 활기도 국내 반도체산업에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모습중의 하나다. 정보통신기기의 생산이 활발해지면서 이의 핵심칩인 화합물반도체 생산이 한화 등 일부 대그룹은 물론 전문업체들에 의해 본격화되고 있다. 그간 시장미비와 기술력 부족 등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전무하다시피했던 화합물반도체의 국산화가 올들어 본격적으로 시도된다는 사실은 ASIC 등 일부 제품에 편향돼온 국내 비메모리산업 저변확대에도 크게 기여할 것으로 업계는 기대하고 있다.
장비업체들의 국산화 노력도 눈여겨 봐야할 대목이다. 그중에서도 그간 미, 일 선진업체들의 성역으로 인식돼온 전공정장비의 국산화 시도는 그 의미가 각별하다. 전공정장비는 장비 무기화의 첨병역할을 할 정도로 소자업체에 주는 영향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주성엔지니어링,청송시스템,아펙스,지니텍 등 전공정 장비전문업체는 물론 미래산업,케이씨텍,아토,한양기공 등 기존 후공정 및 유틸리티업체들까지 가세해 국내 반도체산업을 한차원 끌어올리는 데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재료산업의 고품질 대응노력도 주목거리다. 64MD램에 대응 가능한 웨이퍼 생산이 최근 포스코휼스와 실트론 등 국내 2개사에 의해 본격화되고 있고 리드프레임시장도 성우전자 등 대그룹 계열사가 신규참여해 국산대체는 물론 수출시장에서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할 채비를 갖춰나가고 있다. 또한 차세대 반도체의 핵심재료인 DUV용 포토레지스트의 국산화도 급진전되고 있고 전문업체들의 대대적인 생산능력 확충에 힘입어 황산, 불산, IPA 등의 주요 케미컬분야도 본격적인 국산대체기에 접어드는 추세다.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우선 올들어 세계적으로 AMD와 사이릭스 등 호환칩 업체들의 약진으로 인텔의 독주에 제동이 걸림에 따라 국내 반도체업체들에게도 새로운 기회가 생길 것으로 분석된다. 무엇보다 이를 계기로 DEC과 손잡고 알파칩 양산에 나서는 삼성전자의 발걸음에 한층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이며 또한 자바칩 시장 선점을 노리는 LG반도체도 인터넷 이용확산에 힙입어 행보를 보다 빨리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은 갈수록 PC와 워크스테이션 등 중형 컴퓨터간의 영역이 엷어진데다 임베디드화 추세도 가속화되고 있어 국내 업체들간에도 이제 한번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이 팽배해지고 있다.
국내 반도체산업의 미래를 담보해 주는 것 중 가장 중요한 변수는 3백㎜시대에 대한 대응력이다. 이미 세계 각국의 주요 선발 반도체업체들은 향후 반도체시장을 이끌고 갈 3백㎜ 웨이퍼 시대에 대응,최소한 후발업체로 뒤쳐지지는 않는다는 전략아래 파일럿 라인 건설을 비롯한 양산라인 조기구축에 앞다퉈 나서고 있다.
이처럼 세계 반도체업체들이 3백㎜ 위에파 가공시설의 조기구축에 적극 나서는 것은 향후 한층 치열해질 가격 싸움을 위해서는 제조원가 절감이 필수적인데 3백㎜(12인치) 웨이퍼의 경우 기존 2백㎜(8인치)웨이퍼 때보다 단위당 2.25배 이상 칩을 더 생산할 수 있는등 생산성 향상면에서 크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반도체 3사도 선두진영에서 뒤쳐지지는 않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RS팀을 주축으로 이미 주요 단위공정별 장비평가를 거의 완료하고 늦어도 98년 하반기까지 0.25미크론급의 초미세 가공능력을 갖춘 파일럿 라인을 구축한 후 2000년부터 기흥 9라인에서 본격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다.
R3팀을 중심으로 3백㎜ 시장 대응에 나서온 현대전자는 국내에는 더이상 2백㎜ 생산라인은 짓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우고 연내에 이천공장 운동장 부지에 신규라인 착공에 들어가 98년 하반기까지 월 5천장 규모의 0.25미크론급 파일럿 라인을 건설하고 바로 옆에 양산라인을 구축해 99년말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갈 계획이다.
LG반도체도 청주 C1공장에 0.25미크론급 가공능력을 갖춘 파일럿 라인을 연말까지 완공하고 양산도 삼성,현대와 엇비슷한 시기에 들어간다는 전략이다. 현재 계획대로라면 국내 반도체 3사의 3백㎜ 대응 수준은 인텔,TI나 NEC,히다치 등 미, 일 선발업체와 비교해 손색이 없고 D램시장에서 한국 따라잡기에 나선 대만과는 약 1년 이상의 격차를 둘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특허 및 반덤핑혐의 등의 무역분쟁은 수출의존도가 90% 이상인 국내반도체 산업이 안고 있는 가장 큰 숙제다. 올들어서만도 美샌디스크社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플래시메모리 제조기술에 대한 특허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작년말 TI와의 힘겨운 싸움을 해결하니까 금방 상대만 바뀐 셈이다. 특허문제는 국내 반도체업계에는 그야말로 산넘어 산인 격이다.
수출시장에서 국내업체의 또 하나의 골치거리는 반덤핑 혐의 문제다. 올 초에는 마이크론社가 국내 반도체 3사를 상대로 D램에 이어 S램도 덤핑혐의를 걸었다. D램에 이어 차세대 수출주력상품으로 부상할만한 플래시메모리와 S램 등의 수출예봉을 사전에 무력화시키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여기에다 미국정부는 이미 덤핑혐의가 벗겨진 현대전자와 LG반도체를 「또 다시 덤핑할 우려가 있다」는 억지성 단서조항을 달아 덤핑족쇄를 좀처럼 풀지 않고 있다. 이에 우리정부와 업계는 반도체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을 WTO에 제소하는 등 무역장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 관심을 끈다.
향후 국내 반도체산업의 전망을 얘기할때 D램 가격문제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변수는 대만의 잠재력이다. 지난해 D램 시장에 본격 뛰어든 대만의 영향력은 예상외로 컸다. 세계시장에서 대만의 시장점유율은 차치하고라도 한, 일 위주로 형성된 D램 공급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심리적 효과가 D램 가격하락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는 것에 대부분의 업계전문가들은 공감하고 있다.
실제로 대만이 96년에 생산한 16MD램은 8천만개 정도로 전체 세계시장에서의 점유율은 7%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97년에는 1억8천만개로 9% 정도로 올라가고 98년에는 3억개로 16% 수준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직까지 자기브랜드보다는 일본 등 기술협력업체에 대한 OEM물량이 절반 정도를 차지하고 있지만 생산능력 확충 속도는 우려할만 하다. 그중에서도 난야,뱅가드,TI에이서,모젤바이텔릭 등은 16MD램에 이어 64MD램 시장에도 조기참여해 D램업체로서의 입지를 굳힌다는 전략을 펼치고 있어 주목된다.
국내에서도 반도체시장의 저변은 더욱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동부그룹이 IBM과 손잡고 D램시장 참여를 준비하고 있어 올해말 기준으로 국내 반도체일관가공(FAB)업체는 아남(DSP),한화(화합물) 등을 포함해 총 8개 업체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처럼 올해를 기점으로 수조원의 대규모투자가 소요되는 반도체 FAB시장에 그룹사들의 신규진입이 잇따르는 것은 부가가치나 시장잠재력면에서 반도체만한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국내 그룹사들은 최근의 일시적인 가격하락만 지나면 반도체를 그룹의 주력사업으로 육성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특히 소자업체의 증가는 반도체산업 전반에 저변확대를 가져와 대외 경쟁력면에서나 장비, 재료 등 주변산업의 국산화 제고면에서도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D램 가격 폭락과 대만를 비롯한 신흥 경쟁국의 추격 등의 시장환경변화에 대응해 추진되고 있는 국내 반도체산업의 구조조정은 이렇듯 비메모리 분야로의 품목다각화 그리고 그룹사들의 신규진입 등 양적으로는 물론 질적 측면에서 모두 활발히 진행되고 있어 그 결과가 자못 기대된다.
<김경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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