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가전제품 생산현장 혁신할 가상 생산기법

대표적인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가 지난 95년부터 판매하는 「보잉 777」은 항공기의 제작 역사에 신기원을 이룬 항고기로 제품이다.

「보잉 777」는 설계에서 제조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과정을 컴퓨터를 이용한 3차원 설계 영상으로 설계해 만든 첫 항공기다. 3차원 영상설계 기법은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는데 이 항공기는 실제 조립 단계에서 거의 재설계와 재작업을 거치지 않았다.

무려 4백만개의 부품이 필요한 이 항공기를 개발 착수 5년 만에 판매할 수 있던 것은 이같은 첨단 기술 덕분이다. 그것도 항공 당국의 까다로운 안전 규정을 모두 지키면서, 또 충분한 이윤을 남기면서다.

자동차 회사인 크라이슬러는 최근 3차원 입체영상설계 프로그램을 이용해 자동차를 생산하고 있다.

크라이슬러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은 단순히 제작전의 자동차 모습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고 있다. 색칠하는 로봇이 자동차 몸체를 가장 효율적으로 도는 움직임을 비롯해 △부품의 공급속도 △공정상의 예상되는 병목현상 △작업자에 예상되는 신체적 문제점 등을 제조 과정에서 생길 문저점을 미리 보여주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을 이용해 크라이슬러는 제품의 개념을 잡는 데서부터 판매에 이르는 기간을 종전보다 절반 이상 줄였다.

두 사례는 최근 항공과 자동차 산업에 도입된 가상생산기법의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 기법이 이제 가전산업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국내외 가전업체들은 최근 가상생산기법을 제품 설계와 제조 현장에 접목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수많은 모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적 물적 낭비 요소를 제거하려면 가상생산기법을 서둘러 도입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다.

특히 날로 다양해지는 소비자 욕구와 이에 따른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가 확산되면서 지금과 같은 제품 개발 전략을 갖고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판단은 가상 생산기법에 눈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설계-시제품 생산-문제점 보완과 재설계-재생산 등의 과정을 거치는 지금까지의 제품개발 방식은 막대한 시간과 비용의 낭비를 불러오고 있다. 더욱이 갈수록 가전시장이 전반적으로 공급 포화의 상태에 접어들면서 이같은 낭비는 고스란히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가전업체들이 그 대안으로 바로 가상 생산기법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기법은 시제품을 만들기 전에 고객의 잠재욕구를 파악해 제품설계에 반영할 수 있다. 설계변경시 뒤따를 공정 변경과 같은 비용과 시간의 낭비도 해결한다. 나아가 라인을 신설하기 전에 시뮬레이션으로 공정 설계의 문제점을 찾아낼 수 있다.

20세기 대량생산체제의 도입 이후 가장 혁신적인 변화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는다.

특히 제품 설계자들의 생각과 실제 생산이라는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가상 생산기법의 가장 또 다른 장점이다. 제품 설계자들은 사양 변경과 같은 문제를 걱정하지 않고도 마음대로 자신의 이상을 펼쳐볼 수 있다.

또 디지털화한 데이터는 작업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공동작업을 가능케 한다.

삼성전자 청소기 개발팀의 이진곤 과장은 『가상 생산기법을 도입하면 검증 단계가 짧아져 제품개발의 기간을 크게 단축한다. 데이터를 공유해 멀리 떨어진 설계자들도 공동으로 작업할 수 있으며 궁극적으로 재택근무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가전업계에 도입되는 가상 생산기법은 아직 제품설계에 적용되는 등 초보적인 수준이다. 이러한 사정은 외국 가전업체들도 마찬가지다. 본격적인 가상 생산 체제에 들어가기까지 데이터의 부족과 표준화 미비 등 보완할 문제가 수두룩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렇지만 최근 가전업체마다 자사 실정에 맞는 공용 프로그램의 개발과 데이터 축적에 나서고 있으며 특히 경영진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 가상생산기법이 앞으로 가전업계에 빠른 시일안에 정착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신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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