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기업이 차세대 이동통신(IMT-2000) 개발전략을 북미방식과 일본방식을 동시에 개발하는 방향으로 수정한 것은 기술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일환인 것으로 풀이된다.
올해 초 93개 기업의 컨소시엄으로 출범한 차세대이동통신개발협의회는 미국 퀄컴사가 주도하는 북미방식의 코드분할다중접속(CDMA)기술 외에 일본 NTT도코모사가 제안한 방식을 동시에 개발키로 최근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강대국들의 표준 주도권 다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한 쪽으로만 줄서기를 강행할 경우에 따르는 위험요인을 사전에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게 협의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차세대 이동통신을 둘러싼 표준경쟁이 퀄컴, 루슨트테크놀로지, 모토롤러, 노텔 등의 북미진영과 NTT도코모, 에릭슨, 노키아 등 일, EU진영의 편싸움으로 비화되고 있어 더 늦기 전에 대처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개발에서 북미식이나 일본식이나 광대역 CDMA기술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는 차이점이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북미식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이용해 기지국의 시각을 일치시키는 「동기식」인 반면 일본은 GPS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파수 대역폭에서도 북미진영은 3.75㎒ 대역폭을 제안하고 있는 반면 NTT도코모는 5㎒ 대역을 제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북미기업들은 CDMA 이동전화에서 상용화된 IS-95표준을 IMT-2000까지 계속 끌고갈 생각인 반면 일본, EU진영은 이를 견제하고 새로운 표준을 마련하길 원하는 것이다.
차세대 이동통신기술의 개발과 표준화에 공동 대처하기 위해 설립된 차세대이동통신개발협의회는 지금까지 북미방식을 따라왔다. 앞으로는 일본식을 병행하기로 했지만 기업들은 개별적으로 이미 비동기식 기술개발을 병행해왔다. SK텔레콤은 이미 2년 전에 NTT도코모와 차세대 이동통신 기술개발에 공동 보조를 취하기로 하고 밀접한 관계를 맺어 왔으며 한국통신, 데이콤도 비동기식으로 기술을 개발해 왔다. 제조업체들이야 두 말할 것도 없다.
협의회가 비동기식 기술개발 프로젝트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모금한 6백30억원 외에 또다시 2백억∼3백억원의 자금을 모아야 한다. 그러나 몇백억원을 더 들여서라도 위험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협의회의 전략수정 배경에는 뿐만 아니라 그동안 CDMA기술 상용화를 위해 막대한 로열티를 지불한 퀄컴사에 앞으로도 계속 끌려다닐 수 없다는 절박함도 작용하고 있다.
기껏 기술을 개발해 놓아도 지적재산권 협상에서 굴복해온 선례를 볼 때 동기식, 비동기식의 병행 개발이 로열티를 줄이는 데 얼마나 보탬이 될지는 몰라도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는 심정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협의회의 전략수정은 기술종속국의 애환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한국정부와 기업은 기회있을 때마다 CDMA분야에서만큼은 우리나라가 선도적인 지위를 점하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강대국 눈치보기에 바쁜 것이다. CDMA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다고 자랑해온 정부도 아직 상용화되지도 않은 일본의 CDMA기술을 수용해야 하는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선진국들의 지적재산권 강화 움직임 속에서 국내기업들이 그동안 축적한 CDMA기술의 노하우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주목된다.
<최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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