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통상팀 鄭忠基 부장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무역기구(WTO)에 미국을 상대로 우리정부가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지금까지 외국정부가 우리나라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제소해 열린 WTO협상이 몇 차례 있었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타국의 불공정 무역관행, 그것도 미국을 상대로 제소해 조목조목 누가 옳은지를 따져보자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국측도 적잖이 당황했으리라 쉽게 짐작이 간다.
아무튼 냉전종식과 더불어 현재 각국간에 경제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상황에서 반덤핑규제에 대해 무분별하고 자의적인 전횡을 일삼은 미국에 당당히 도전하고 나선 것은 우리나라의 달라진 위상을 나타내주는 것으로 보여 환영한다.
더욱이 이번 한국산 컬러TV 반덤핑규제건은 제3국으로부터 적극적인 동조와 초미의 관심을 이끌기에 충분한 사안이다.
우리 회사는 그동안 미국의 반덤핑조치를 종결시키기 위해 지난 13년 이상을 미국법규가 정한 행정심사, 사법절차(CIT, CAFC) 등에 많은 시간, 인력, 비용의 소모를 감수하면서 모든 노력을 다했다.
삼성전자는 미국의 연례 반덤핑조사에서 85부터 91년까지 6년 동안 미소덤핑마진(0.5%)판정을 받았다. 91년 이후에는 한국에서의 직접수출을 중단해 12년 이상 덤핑행위가 없었는데도 미국은 삼성의 덤핑 철회신청을 번번이 기각했다. 새로이 멕시코와 태국의 현지공장에 대해 WTO에 근거규정조차 없는 우회덤핑조사를 개시, 한국기업의 부담뿐만 아니라 관계국가들의 국제적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
또 신청 11개월 만인 96년 6월 개시한 상황변화 재심에서조차 자국법상 규정한 2백70일의 기한을 훨씬 넘겨 현재까지 아무런 판정도 하지 않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8월7일 제네바에서 개최한 1차 한미 양자협의에서도 미국은 협의개최 직전까지 참석자조차 밝히지 않았고 협의에서 법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회피해 협의에 임하는 미국정부의 성의를 의심케 하고 있다.
이번 우리정부의 WTO 제소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마지막 유일한 시도다. 통상산업부 등 정부 관계자들은 WTO 규정과 사례에 대한 연구 등 힘에 부칠 협상을 주도하기 위해 지난 수개월 동안 밤낮없이 준비해왔다.
성공적이라는 판단을 유보하더라도 1차협상에서 기대 이상의 수확을 거둔 것으로 본다. 우리정부의 치밀한 준비를 통한 질문과 공격으로 미국측이 현재 진행중인 우회덤핑 조사와 상황변화 재심에 대해 「매우 가까운」 시일 안에 최종 결과를 주기로 한 것은 큰 수확이라 하겠다.
이제 1차 양자협의를 끝내고 앞으로 남은 양자협의 과정과 정식 패널설치 등의 WTO절차를 통해 우리의 목표를 관철시키기 위해 몇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첫째, 1차 양자협의 때에도 멕시코와 태국의 지원이 큰 힘이 됐듯이 미국의 전횡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관련국가의 힘을 집결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번 기회에 일본, 대만과의 연계가능성을 짚어보고 협력방안을 찾아보는 것이 중요하리라고 본다.
둘째, 여러 부처가 이 문제에 관련돼 자칫 표적이 흐려질 가능성에 대해 일말의 우려가 있으나 이 점을 각 부처에서 현명히 대처해나갈 것으로 확신한다.
셋째, 앞으로 다뤄지게 될 세부적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관리 외에도 실무에 밝은 외부 전문가를 잘 활용해야 할 것으로 본다.
마지막으로 민관협력을 통해 WTO 제소과정에서 있을 수 있는 미국정부의 직간접적 압력도 이겨내야 할 것이다.
아무쪼록 이번 WTO 제소가 민관협력을 통한 통상대응의 시범 케이스가 되고 앞으로 닥칠 모든 통상파고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간의 협력관계를 다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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