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218)

뿌아아아-.

길게 길게 이어지고 있는 디주리두 소리를 들으며 사내는 리모컨의 버튼을 조작했다. 천정의 화면에 광화문 네거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맨홀. 아직도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지만 불길은 솟구치지 않았다. 소방관들도 맨홀 속으로 물을 쏟아 붓지 않고 있었다. 소방차들이 차지하고 있던 광화문 네거리 한복판으로 이제 통신케이블을 가득 실은 복구차량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사내는 리모컨을 조작하여 시청 쪽과 종로 쪽으로 카메라의 위치를 조정했다. 불길은 솟아오르지 않고 있었지만 건너 맨홀 속으로 소방관들이 관창을 들이대고 물을 쏟아 붓고 있었다. 시청 쪽과 종로 쪽으로도 통신복구 차량이 몰려들어 큰 타래의 케이블을 도로 한복판으로 열지어 내려놓고 있었다.

「괜찮아, 모든 진행 프로그램에는 문제가 없어.」 사내는 복구에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직도 맨홀 속에는 뜨거운 열기가 그냥 남아 있을 것이고, 그 동안 쏟아 부은 물로 인하여 맨홀 속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사내는 이리저리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는 여유있게 다시 리모컨을 조작해 화면을 바꾸었다. 모니터에 광화문 네거리 맨홀의 상황이 사라지고 대신 침팬지 여러 마리가 나타났다.

암컷 침팬지 한 마리가 휘파람을 계속 불어제치며 수컷 침팬지에게 추파를 던지는 모습이 화면으로 비춰지기 시작했다.

격앙된 나머지 울음에 가까운 괴성을 질러대기도 하며, 수컷 침팬지의 꽁무니를 줄기차게 따라다니고 있었다. 가끔씩 수컷의 엉덩이를 만지고 달아나기도 하면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줄 것을 요청하는 듯했다.

침팬지.

유인원들이 가장 인간을 닮았다고 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아마도 그들의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 즉 감정표현 때문일 것이다.

다른 동물들도 나름대로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을 습득하고 있지만 야유나 슬픔 등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침팬지뿐이다. 특히 침팬지가 섹스 때에 보여주는 감정 표현과 체위 구사는 그 어떤 동물과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자연스럽다. 평상시 하는 짓들을 눈여겨 보아도 놀라울 정도로 감정을 표현하지만, 특히 섹스 때에 숨을 헐떡이며 비명을 지르고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는 것을 보면 외형적인 요소와는 별도로 섹스과정에서도 인간과 흡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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