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맨홀 (174)

은옥은 시계를 보았다.

18:00.

아직도 위성은 자세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5도.

한 번에 5도씩 위성체의 방향을 수정하고 있지만, 위성체를 한 바퀴 회전시키기 위해서는 6시간이라는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다.

위성통신뿐만 아니라 위성방송도 함께 죽어 있는 상황이다. 위성체를 한 바퀴 회전시킨다고 해도 위성체를 지구 방향으로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회전축이 태양전지를 축으로 하는 방향이 아니면 위성체는 지구를 발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간은 더욱 지연될 것이고, 어쩌면 1호 위성과 2호 위성은 우주의 쓰레기로 변하게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위성의 자세를 잡는 데는 또 다른 위험성이 있다.

지상에서 커맨드를 통하여 위성의 자세를 잡는 동안 처음 위성체의 자세를 흐트러뜨린 신호가 위성체의 추력기를 동작시키게 되면 자세를 잡는 데 아주 어렵게 된다. 기준점이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은옥은 그것을 차단하기 위해 신호의 패스워드를 수정한 것이었다.

『이 과장, 텔레메터링 신호는 잘 수신되고 있습니까?』

『네, 박사님. 패스워드 수정 후에도 신호는 잘 수신되고 있습니다.』

『신호 분석 결과는 어떻습니까?』

『아직 위성체의 방향을 알려주는 데이터는 없습니다.』

은옥은 위성의 발사현장을 떠올렸다. 불꽃을 달고 하늘로 치솟던 우리의 위성. 한민족의 위상을 지상 3만6천㎞까지 끌어올린 위성이었지만, 지금은 위성체의 자세가 틀어져 어쩔 도리 없이 통신과 방송회선에 장애가 발생한 것이었다.

은옥은 좀더 많은 자료가 확보되어 있었으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도 빠르고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경우와 비슷한 사례만 있어도 좀더 손쉽게 위성체의 자세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술력, 그것은 곧 힘이었다. 나라의 힘이었다.

은옥이 위성사업 감리와 교육 훈련에 참여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자료를 확보하는 일이었다. 위성제작사인 록히드 마틴사에서는 위성사업을 위해 미 정부로부터 승인을 받은 기술이전 관리계획을 내세워 위성체 제작과 공정에 관련된 자료의 제공을 철저하게 막았다.

분야별 기술훈련뿐 아니라 연구와 위성의 직접적인 운용에 필요한 기술의 관련자료 확보 요청에 대해서도 폐쇄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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